메뉴 건너뛰기

close

비류대왕의 태자와 쌍둥이 아들들이 걸대왕을 따라 일본 탈환 전쟁에 참전해 태자와 쌍둥이 형은 318년에 전사하고 쌍둥이 아우인 근초고 왕자가 일본 전역에 혁혁한 공을 세워 야마토타케루 즉 일본무존(日本武尊), 왜건명(倭建命)이라는 최고의 칭호를 얻었다. 비류대왕이 백제 태자로 다시 돌아가니 그를 기리는 백조릉이 일본 곳곳에 세워지고 근초고대왕의 아들들이 당연하게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 16세에 일본을 평정한 근초고대왕 야마토타케루
ⓒ 연종열
일본무존의 빈 고분 기록에 의하면 근초고대왕은 295년에 태어나 <삼국사기>에 붕어한 374년까지 80세를 살았다. 일본무존의 고분은 일본무존이 백제로 떠난 뒤에 만들어진 빈 고분으로서 인덕천황기에도 확인된다.

일본 교토(京都)의 히라노신사(平野神社)에는 제신(祭神)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祭神四座 八姓の祖神である。

 第一 今木神 〔いまき・景行天皇の子〕  日本武尊 源氏の神
 第二 久度神 〔くど・日本武尊の子〕   仲哀天皇 平氏の神
 第三 古開神 〔ふるあき・応神天皇の子〕 仁德天皇 高階氏の神
 第四 比売大神〔即ち〕          天照大神 大江氏の神
 第五 縣(あがた)社 天穂日命 中原・淸原・菅原・秋篠の四姓の祖神


즉 히라노신사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1신은 금목신이자 일본무존이고 제2신은 구도신(久度神)인데 일본무존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도신은 일본무존의 아들인데다가 또한 백제 상고왕尙古王(=近尙古王) 즉 근초고대왕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久度神は百濟の祖 尙古王の子仇首王(日本音くど)여기서 尙古王은 조고왕照古王, 즉 근초고대왕近肖古大王이다.

따라서 구도신, 근구수대왕을 낳은 일본무존은 당연히 백제 근초고대왕인 것이다. 일본에서도 현재 이들 히라노신사의 4신을 모두 백제왕으로 인정하고 있다.

日本京都にある "平野神社"は倭王が先祖たちのために祭祀をあげた所だ.. 927年完成された日本古代王室文献"神名帳"を見れば李Hiranoジェントルマンに対して "平野祭神は四座であり 四時祭式には 今木神, 仇度神, 古開神, 相展の 比賣神であり 4神が皆百濟王だ" やっぱり倭國は百濟王に祭祀を執り行なうので屬國イヨッネです~

일본, 히라노신사의 4신을 모두 백제왕으로 인정

한편 일본무존의 일본 정벌에 사용했던 주몽검(都牟劍=쿠사나기쯔루기)를 신(神)으로 모신 아뜨다신사(熱田神宮) 기록에 의하면 열전신궁의 말사인 소시모리사(末社曾志茂利社)에서는 거무리대신(居茂利大神)을 제사하는데 이는 스사노오의 별명이라고 전한다.

단 스사노오신 즉 초고대왕은 그 바로 옆의 남궁신사(南宮神社)에서 따로 모신다. 따라서 거무리대신은 스사노오, 즉 초고대왕의 별명이 아닐 것이다.

히라노신사의 금목신(今木神)과 아뜨다신사의 거무리(居茂利)대신은 그 표기가 유사한 것인데, 뒷부분 목(木)과 무리(茂利)는 우리말 물, 강을 나타낸다. 앞부분 今(이제 금)과 居(있을 거)의 훈을 취하면 일본말 '이사'가 되고, 이는 우리말의 숫자 '하나''一'를 의미한다. 따라서 합쳐서 '하나-물'을 우리말로 바꾸면 백제의 한수가 된다.

그래서 거무리대신과 금목신은 한산(漢山)으로 천도한 한성백제의 왕 근초고대왕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목(木)의 일본 발음 기き는 성(城)의 일본 발음 '기'이기도 하다. 즉 히라노신사의 제1신, 금목신은 백제 한성신(漢城神) 근초고대왕이다. 그가 바로 야마토타케루(日本武尊)이고 근구수대왕의 부왕이다.

히라노 신사의 제 2신 구도신은 근초고대왕의 아들로서 근구수대왕(近仇首大王)이자, 일본의 응신천황(應神天皇)이고, 오사카에는 구도신사(久度神社)가 따로 있기도 하다.

제 3신 고개신(古開神)은 후루아기ふるあき라고 하는데 근구수대왕의 아들로서 침류대왕(枕流大王)의 '류流'의 훈訓 '흐르'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된다. 후루는 강(降)의 발음이기도 한데 흘러내려왔다는 말이다. 즉 신공황후인 야가하에히메(矢河枝比賣)를 통해 강신(降神)하였으므로 후루왕이라고 했던 것이다.

제 4신 히메(比賣)신은 환무천황(桓武天皇737~806)의 어머니의 조상이다. 그런데 백제계 도래인 화씨(和氏)의 후예라고 한다.

桓武天皇とその生母の高野新笠が祀っていた神樣であった。高野新笠は和氏(やまとし)出身で、この和氏が百濟系渡來氏族であった。したがってこれら神樣は桓武天皇の母系に繫がっている。

이 히메신은 응신천황의 부인이 되고 침류왕을 낳았던 신공황후 야가하에히메(矢河枝比賣)를 의미한다.

일본에는 백제대왕을 모시는 신사가 참으로 많다

근초고대왕(재위 346~374)은 일본무존으로서 333년에 39세로 죽었다고 금탄원琴彈原의 백조릉에 기록되었는데, 이 333년은 근초고대왕이 39세로 일본 정벌 후에 백제로 돌아간 해이다.

<고사기>나 <일본서기>에서 일본무존은 갑자기 병이 들어 백조가 되어 날아갔다고 하였고 그래서 백조릉이란 곳이 일본의 여러 곳에 생겨났다. 물론 한반도를 바라보는 구주 서북 해안에도 있는데 그가 떠나간 마지막 장소에 세워진 고분이다. 근초고대왕의 일본 후비들 중에 가야계 수인천황의 딸인 후타지노이리히메(布多遅能伊理毘賣297~363)가 있어 중애천황(仲哀天皇328~379)을 낳았다.

근초고대왕, 일본무존은 태자도 아닌 세째 왕자로서 298년 숭신천황에게 죽임을 당한 책계대왕의 손자인 걸왕자가 일본 탈환 공격에 나서니 함께 참여하여서 구주를 먼저 공략한다.

구주는 이미 경행천황이 일부 점거하고 있었지만 구주를 통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초고대왕의 형이라는 오호우스(大碓命)은 295년에 근초고대왕과 쌍둥이로 태어나 318년에 24세로 죽었는데 숭신천황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것이다.

근초고대왕은 직접 구주 정벌을 완성하고 당시 재왕(齋王)이자 가야계 수인천황의 딸인 야먀토히메(倭比賣277~366)를 만나서 히미코 이래로 여제사장이 보관하던 주몽검을 건네받고 구주 정벌에 도움을 받는다. 부여계인 숭신천황에 대항하여 가야계와 백제계가 연합했던 것이다.

근초고대왕이 일본 본토 이즈모를 공략하고 다시 나라현을 공략하고 도쿄(東京)를 공략할 때에 야마토히메가 준 쿠사나기쯔루기(草雉儉)를 사용하였다. 이후에 동경은 근초고대왕의 장자인 호무야와케(品夜和氣命(311~374)가 물려받았다.

일본의 히라노신사(平野神社)는 백제 근초고대왕과 근구수대왕, 침류대왕, 그리고 근구수대왕비 신공황후를 모시는 백제인들의 신사였던 것이다. 한편 일본의 구도신사(久度神社)는 구도(久度)대신과 팔번(八幡)대신을 모시는데 지금 구도대신의 신분을 감추었지만 역시 근구수대왕이고, 팔번대신은 그 아들 침류왕이 가장 유력하다.

일본에 백제대왕을 모시는 신사는 참으로 많다. 한반도에는 전무하여 안타깝지만 일본에 백제대왕들의 고분이 남았으니 신사도 많을 수밖에 없다. 비조부신사(飛鳥部神社)는 백제 개로대왕의 동생으로서 일본 청령천황이 된 곤지대왕을 모시는 곳이다.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는 의자왕의 아들인 백제왕 선광(禪廣)과 스사노오, 즉 초고대왕을 모시는 곳이다. 또한 출운신사(出雲神社)는 스사노오였던 초고대왕, 대국주신사(大國主神社)는 대국주신이었던 구수대왕, 하압신사(下鴨神社) 등은 사대주신이었던 사반대왕을 모시는 곳이다. 고압신사(高鴨神社)는 구수대왕의 아들인 의덕천황을 모시는 곳이다. 그외에도 많이 있는데 차차 소개한다.

▲ 근초고대왕 후손 일본천황도
ⓒ 구자일
▲ 초고대왕 후손 일본천황도
ⓒ 구자일

덧붙이는 글 | 비류대왕의 태자와 쌍둥이 왕자 중의 형이 일본에서 전사하였다. 걸대왕과 함께 일본에 온 비류대왕의 아들들이 많았던 것이다. 따라써 <신찬성씨록>에는 비류대왕의 후손이 특히 많다. 춘야련(春野連) 면씨(面氏) 문사씨(汶斯氏) 강옥공(岡屋公) 등이 비류대왕 후손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