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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기야! 생일 축하해!"
"고마워! 이렇게 생일 선물까지."
"자기 만나서 난 참 행복해!"
"나두 마찬가지야!"
"고마워!"

아내의 생일날 주고받은 대화다. 군더더기 없는 대화에서 삶의 무게를 느끼기도 하지만 왠지 나이 들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눈만 껌뻑거려도 의사소통이 되는 편리함도 있지만, 서로에게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관계라는 것이 침묵을 더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차라리 잠자지 않고 떠들어대던 시절이 더 인간적인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어지럽게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설킨다.

▲ 언제나 웃어주던 아내
ⓒ 노태영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정말 시간이라는 놈은 빠르긴 빠르다. 100m 최고기록 보유자보다 더 빠른 것 같다. 같은 집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벌써 15번째 생일이다. 이렇게 빠르게 시간이 흐를 줄 알았었더라면 더 재미있고 더 보람되게 하루하루를 보낼 걸 하는 아쉬움이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러나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 동안 현진이와 서영이를 기르면서, 옆도 보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이 흑백영화가 되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세월의 무게에 힘듦과 괴로움이 당신의 무게를 느끼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월의 인정 없음이 만들어낸 흔적들이 아내의 맘과 몸에서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새치 수준을 넘어 염색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내의 머리를 볼 때마다 이렇게 우리도 허연 인생이 되어가는 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허리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운동이 아니면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이제는 아줌마의 티를 내지 않아도 아줌마의 티가 나는 아내의 생일이 나는 즐겁지만은 않다. 멋을 내야 멋이 나는 나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감기가 일주일 동안 아내를 침대에 눕혀놓는 것을 보고 나이에서 오는 중량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당신도 이제는 나이를 먹었구려. 하기야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오"라는 말이 입안에서 빙빙 돌다가 목구멍 속으로 뜨겁게 넘어간다.

"피곤해! 피곤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온 아내의 삶이였기에 미안하고 안쓰럽다. 옆에서 주부습진 걸린 불쌍한 남편이라고 불평도 해봤지만 아내의 힘든 하루와 비교가 될 수 없다. 한 시간이 넘는 통근 시간이 주는 육체적 피로감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이기에 더 미안할 뿐이다. 게다가 갈수록 깊이가 없어지고 참을성이 없어지는 학생들을 대하는 생활이 아내를 힘들게 하는 요즘은 교육현장이 야속하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교직생활에서 오는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우리 삶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 더 나아지는 날들을 기대하며 살아온 지난 15년이라는 시간들이 아쉽게만 느껴지는 것은 팍팍해지는 생활 때문이리라. 그래도 언제나 눈처럼 맑은 생각으로 우리가족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아내가 새삼 고맙게 다가온다. 행동 하나 하나에 묻어 있는 진실함에서 서로의 믿음은 커져만 가고 따스한 가슴에서 나오는 사랑은 우리가족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40번째의 생일을 맞이한 아내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하나있었다. 바로 핸드백이다. 모서리가 낡아 방바닥에 홀로서지 못하는 가방.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가방이 안쓰럽게 보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큰맘을 먹고 메이커 제품을 선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 의미 있는 생일선물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오마이뉴스>가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다. <오마이뉴스> 원고료를 청구하여 가방을 사자.

사실 그동안 아내는 나의 글 속에서 악역을 많이 맡았다. 집안 망신시킨다고 면박을 자주 받아오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2000원짜리 잉걸과 Ms, St로 모은 오마이뉴스 기사 원고료로 선물을 사주면 아내도 두 배로 감동을 할 것이리라. 몸과 맘으로 써온 글들의 대가(代價)로 아내의 선물을 살려는 마음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 당신은 뒷 바퀴 난 앞 바퀴 인생은 이렇게 굴러가는 거야.
ⓒ 노태영
며칠 전 감기 때문에 시름시름하던 아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 나이를 먹었구나. 맛도 없고 멋도 없는 나이를 아무 생각 없이 허겁지겁 먹었구나. 삶을 질근질근 씹어 먹어야 피가 되고 살이 되는데 우리는 너무 급하게 먹은 것은 아닌지. 나이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E-mail을 보냈다. 삶과 나이에 대한 최소한 예의를 표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잠시 허리 쉼을 하면서 인생을 쉬어가기 위해서.

"땀 흘리며 생각하며
열심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의욕이라는 놈과
인생이라는 놈은
당신 몰래 슬며시
당신 몸과 맘속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굳이 서둘러 몸과 마음을
복구작업 하지 마시고
바람과 눈과 시간에게 맡겨 놓으세요.
시간의 치유력은
그 어느 것보다도 분명하고 안전한 방법입니다.
집 안에 있는 작은 꽃들에게
눈길을 주는 것도 좋지만
저 멀리에서
시간도 잊고
세월도 넘어선 채로
무덤덤하게 서 있는
늘 푸른 소나무를 바라보세요.
겨울의 차가움도
눈 속의 답답함도
소나무에게는 자장가가 됩니다.
한번 지나간 감기 쓰나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이라는 '쓰나미'입니다.
이 놈은 인정도 사정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의 쓰나미를 겪은 사람들은
순명과 순응이라는 내적 치유력을
끊임없이 강화해 왔습니다.
괜히 불혹(不惑)이겠습니까?
순응하기 때문입니다.
순명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순응과 순명의 바다로
조용히 인생의 배를 저어 갑시다.
둘이서 하나 되어
손에 손잡고 갑시다.
아름다운 생각과
좋은 마음만 가지고서
사랑하며
섬기며
베풀면서 갑시다."


이 글을 보낸 뒤 내 자신이 느끼는 나이의 무게도 한층 무겁게 느껴졌다. 아내의 생일날 청승을 떤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점점 커져가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 있기에 마음의 평온함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요즘 뜸해진 사랑의 편지를 다시 재개해 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2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던 정열의 연애시절이 화려한 추억이 되어 눈앞에 어른거린다.

이제는 예전보다 더 성숙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가슴이 시리고 그리움이 걱정이 되었던 때보다 가슴에는 즐거움이 채워지고 그리움이 축복이 되는 사랑을 말이다. 언제나 아내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아내 뒤에서는 듬직한 배경그림이 되고 아내 옆에서는 둘도 없는 그림자가 되어 살아가리라. 마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사랑하며 내 삶이 아내의 삶이 되고 아내의 삶이 나의 삶이 되는 둘이 아닌 하나의 삶을 살리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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