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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란 말은 '포르노그래피'의 약자로서 어원은 희랍어의 '포른'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포른'이란 말은 창녀나 작부를 뜻하는 말인데, 이 말에 그림을 뜻하는 '그래피(graphy)'가 붙어 '포르노그래피'가 된 것이다. 단어 자체로 해석하자면 창녀를 그린 그림, 혹은 창녀와 관계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포르노는 근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인간의 성행위를 조잡한 평면화로 표현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영화나 사진, 애니메이션 등 입체적인 단계로 화려하게 진화한 것이다. 더군다나 인터넷의 등장은 포르노를 하나의 문화코드로, 하나의 습관으로, 하나의 일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카마수트라>나 <소녀경>을 읽으며 내밀한 즐거움(?)을 맛보던 필자 세대의 낭만과 추억은 사라지고 말았다.

필자가 카마수트라와 소녀경을 처음 접한 시기는 고등학생 때였다. 반에서 제법 까부는 놈들이 들고 온 도색잡지들이 은밀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옆자리에 앉은 놈이 <카마수트라>와 <소녀경>이라는 요상한 책자를 건네주었다. 친구는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끝내주는 책'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카마수트라와 소녀경은 그의 말만큼 끝내주는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소 지겹기까지 하였다. 그때 나는 <소녀경>은 의학서에 가깝고, <카마수트라>는 <성생활 지침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소녀경과 카마수트라는 '포르노'가 아니었다. 오히려 안티 포르노에 가까웠다. 포르노는 성행위를 지독스럽게 말초적으로 그려내지만, 카마수트라는 하나의 기교로, 예술로, 철학으로 해석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말이다.

카마수트라는 고대 인도의 성애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 쓰인 연대는 약 4세기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바찌야나라는 브라만 출신의 철학자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혹자는 바찌야나 혼자서 쓴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브라만들이 집필에 참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카마수트라는 여타 고대 문헌의 형성과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아름다운 성의 고전, <카마수트라>
ⓒ 범우사
카마수트라의 형성 과정은 고대 인도의 다양한 문화,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의 삶이 윤회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인도인들은 남녀 간의 성행위도 단순한 쾌락이나 자손 번식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생의 목적을 다르마(윤리), 아르타(실리), 카마(성애)라는 3대 범주로 나눠 인식했다. 다르마가 인간다운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아르타는 생존 투쟁을 위한 처세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카마는 인생의 재생산을 위한 것으로 보았다. 힌두교의 이상적 삶이란 인생을 셋으로 나눠 소년기에는 아르타를 익히고, 청년기에는 카마를, 노년기에는 다르마를 익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합리적인 삶의 양식이지 않은가.

카마수트라는 카마(성애)와 수트라(경전)의 합성어로써, 성애에 관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전은 총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 총론에는 앞서 말한 인생의 3대 범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64종의 기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존경받는 여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64종의 기예를 반드시 익히라고 강조한다. 제2편은 남녀의 성교 혹은 성행위론을 다루고 있다. 남녀의 성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고, 성행위에 대한 다양한 기교와 체위 등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니, 어린 시절 필자에게 책을 건네 준 친구 놈이 '끝내주는 책'이라고 이야기한 이유에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제3편부터는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나온다. 아니 처녀와의 교섭을 다루는 3편은 그런대로 괜찮다. 그러나 4편에서 6편까지는 실망감을 넘어서서 매우 천박하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을 폄하하는 이야기들이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축첩이나 남의 아내 유혹하기, 유녀에게 돈을 뜯어내는 방법 등에 대한 기술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아스럽기만 하다. 그에 반해 제7편은 다소 흥미롭다. 사랑의 비법 혹은 비결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으며 생약을 이용하여 정력을 증진시키는 비법 등은 애교가 넘치기도 한다.

여성을 성의 도구로만 취급하는 '포르노그래피'의 가장 큰 해악은 생명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이다. 성을 생명의 재생산에 수반되는 쾌락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쾌락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기에 포르노는 천박하고 음탕하며 저질스럽다. 그러나 성과 사랑이 생명을 위한 소중한 방편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카마수트라는 이처럼 소중한 성과 사랑을 내밀하게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더 없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책이다.

카마수트라는 한편으로 보면 쉽고 재미있는 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 깔린 인도 철학의 오묘한 이치를 함께 생각한다면 아주 어려운 책이다. 결국 모든 철학의 근본에는 인간에 대한 문제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성과 사랑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뇌하고, 즐기고, 깊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수 천 년 전에 쓰인 '성애' 경전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인간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카마수트라

바츠야야나 지음, 송미영 옮김, 범우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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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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