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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첨지의 설득에 변정호는 그와 손을 잡을 것을 약조했지만 일은 수월하게 풀려가지 않았다. 그들의 예상보다 일찍 후금의 군대가 맹약을 맺은 후 철수해 갔고, 조정의 분위기는 내부의 반란을 의심해 점점 더 경직되어 갔다. 그 와중에 변정호는 두청으로 이름을 바꾸고 승려로 위장한 두억일을 만났고, 평양에서 남 몰래 장정들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치는 이진걸도 만났다. 변정호는 평구로를 소개시켜 주었고 안첨지는 몇몇 장정들을 평구로에게 보내어 검술을 익히게 하였다.

“그래서 윤계남이도 그쪽으로 가게 된 것입네까?”

장판수의 물음에 평구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계남이는 이를 몰랐다. 보통 검술을 익히는 자들에게는 이런 전후사정을 얘기해 주지 않는다. 방해가 되는 자들을 죽이게 하는 등 빠져 나올 수 없는 짐을 지운 후에야 이러한 일들을 얘기해 주며 정식으로 그 패거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윤계남은 그들이 그런 일을 맡기기 전에 내가 서둘러 떠나보냈다. 귀한 인재가 그런 패거리에 휩쓸려 다니는 게 못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변정호 역시 점점 그들 패거리를 멀리하게 되었고 후에는 종적마저 묘연해저 버렸다.”

평구로의 애기는 끝났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짱대가 불쑥 말을 꺼냈다.

“변정호라는 분이 그 후에 뭘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만.”

뜬금없는 말에 장판수가 짱대를 흘겨보았다.

“나도 니가 왜 여기까지 따라와 고생하는지 짐작이 간다우. 본시 한양 장터에서 놀던 놈은 아니지?”

짱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의주 부윤(임경업)께서 절 한양으로 보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첫째는 도성 안 민심을 살펴보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계화란 여인의 뒤를 캐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장판수도 짐작하지 못한 일이라 깜짝 놀라 되물었다.

“나와 차선달을 지켜보라는 것이 아니고?”

“물론 그 일도 있었습니다만 이를 특별히 지시받은 것은 아닙니다. 의주에 와서는 부윤께서 심양까지 장초관님을 따라 다니라는 명을 내린 바는 있습니다.”

“그랬었군… 그런데 계화의 뒤를 캐어보라니 그게 무슨 소리네?”

짱대는 장판수의 말에 평구로를 쳐다보며 답했다.

“아까 말씀 중에 나온 변정호라는 이가 계화에게 여진의 글과 말을 가르친 바가 있습니다.”

짱대는 한양에서 계화를 궁중의 무수리로 들여보낸 바 있는 김아지를 찾아내었다. 김아지는 오랜 피난 생활에서 뒤늦게 궁말로 돌아와 쓰러져 가는 집에 살고 있었다. 김아지는 계화의 얘기를 듣자마자 눈물을 쏟아내며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였다.

“이 못난 사람이 아이 하나를 헛된 일에 부리기 위해 궁중으로 들여보낸 게 평생 한이오. 변가 그 늙은이가 내게 평생의 짐을 안겨주었구려. 이 나이에 못할 말이 뭐가 있겠소. 어차피 늙어 죽을 목숨 그 아이의 소식을 가지고 왔으니 다 말해 주리다.”

이름을 숨기고 ‘뫼영감’이라고만 일컬었던 변정호는, 잔병치례가 잦아 인해 일찌감치 궁에서 나와 생활하고 있던 김아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남정네이기도 했다.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오. 그러기 위해서는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오.”

변정호는 실의에 잠겨있던 김아지를 너무나 간단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고, 궁 안의 몇몇 내관과 별감을 포섭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변정호는 김아지를 떠났고 그 후에 계화와 편지를 보내어 온 것이었다.

“그 무심한 놈 편지를 구경 해보소! 내 아직도 지니고 있소!”

짱대는 김아지가 내어놓은 언문편지를 읽어 보았다.

‘그간 잘 지내었소? 난 산속에 은거해 살고 있소. 부모를 잃은 아이를 거두어 키웠으나 자라면서 아이의 장례가 걱정되는바 생각나는 이가 달리 없어 보내었소, 부디 이 아이를 불쌍히 여겨 거두고 궁 안에서 일 할 수 있도록 해주오. 내 밑에서 여러 글을 가르쳐 본 바 부지런하고 영리한 아이니, 궁 안으로 들여보내어도 수월히 일을 할 것이고 그대가 먹고 사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기오. 이만 줄이오. 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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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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