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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아! 어떻게 해~ 우리 제주도 갈 수 있는 거야? 내일부터 대한항공노조 파업한대~~."
"걱정마~ 갈 수 있을꺼야! 제주도 안 되면 딴데 가면 되지, 뭐!"
"조금아까 남편에게 전화가 왔거든. 대한항공노조 파업하는데 갈 수 있냐구."
"나도 혹시나 해서 아까 여행사에 전화했는데, 갈 수 있대. 아니면 연락 준대"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걱정스런 목소리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 역시 걱정이 되어 낮에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여행사에선 갈 수는 있지만 출발, 도착시간이 좀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좀 바뀌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무사히 떠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렵게 계획한 여행인데 못 가게 되면 어쩌나 싶어 걱정하지 말라는 여행사의 말도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떠나기 하루 전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이 조금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는 원래 출발도 일찍 하고 도착도 이른 시간으로 했었다. 그런데, 반대로 되어 출발도 늦고, 도착도 늦게 됐다. 그나마 이렇게 밖에는 출발할 여건이 되지 않으니 이것저것 따질 수가 없었다.

여행 첫째 날

제주도행 오후 6시 비행기였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만나서 친구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친구도 나도 떠나기 전 집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할 일이 많았다기 보다 사실은 미리 나오는 것이 조금 미안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남편에게 용돈을 달라고 졸랐고, 남편은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용돈을 쥐어 주었다.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탔다. 친구와 함께 여행할 생각을 하니 마음에 제법 여유가 생겼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했고, 이미 기다리고 있던 친구를 만났다. 지난봄 여름이를 데리고 친구 집에 놀러가서 만났으니까, 8개월만인가 보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지만 우리는 늘 허물이 없다.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

시간이 되어 비행기를 타려고 짐 검사를 하는데, 친구에게 짐을 풀어보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친구가 '과일깎는 칼'을 가져온 것이다. 떠나기 전 우리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고 달랑 몸만 가자고 했었다. 먹고 싶은 거 다 사먹고 그러고 오자고 했었다. 그런데 친구는 가방 안에 쌀과 김치, 그리고 과일을 가득 넣어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면서 과일을 깎을 '칼'까지 챙긴 것이다. 역시 꼼꼼한 주부인 친구는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칼'을 부랴부랴 화물로 부치고서야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랜 만에 만나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넘었는데, 제주도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미리 예약해 놓은 렌트카를 받고, 우리의 첫 목적지인 '러브랜드'로 향했다. 자동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설치되어 있어서 길을 찾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다.

'러브랜드'는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야간개장을 하는 공원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마치 조각공원 같았다. 공원은 꽤 널찍했는데, 여기저기에 여자와 남자의 조화(?)로운 자태를 다양한 조각상으로 표현해 놓고 있었다. 더구나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까지 흐르고 있어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기엔 참 좋았다. 참고로, 여기는 미성년자입장불가 이다.

러브랜드를 나와서 숙소로 정해놓은 중문관광단지로 향했다. 가는 길에 흑돼지 집에 들러 흑돼지오겹살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도 두어 병 사서 들어갔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던 걸까. 우리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 김미영
여행 둘째 날

얼마만인지 모를 늦잠을 즐겼다.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특별한 '관광'이 아니었다. 굳이 목적을 들라면,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편안하게 쉬다 오는 것 정도가 아니었을까? 친구는 오는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 여미지 식물원의 바나나나무
ⓒ 김미영
"미영아 사실 제주도 아니었으면 못 갔을지도 몰라. 막상 가려고하니까 애들 두고 가기도 맘이 안 좋고 그렇더라구. 근데, 비행기표도 이미 예약했고... 그런데다 우리가 셋이 가는 것도 아니고 단둘이 가는 건데 내가 안가면 너도 못가고."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나보다 친구가 더 즐거워하고 있었다. 둘째 날부터 '다시 어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래도 직장생활을 하며 종종 출장도 가고 했는데, 친구는 아이 셋을 키우며 늘 집에만 있으니 조금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

▲ 여미지 식물원의 대형 선인장
ⓒ 김미영
우리는 둘째 날의 목적지를 '여미지 식물원'과 '한라산 산책', '서귀포 시장구경'으로 정했다. '여미지식물원'은 명성만큼 웅장했다. 다양한 식물들이 테마별로 나뉘어져 있었다. 나는 바나나 나무를 처음 본 것 같다. 바나나가 그렇게 열리는지 몰랐는데 너무 신기했다. 특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너무 멋있었다.

▲ 여미지식물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제주바다
ⓒ 김미영
시내로 나가기 전 잠시 한라산으로 차를 돌렸다. 한라산의 등반코스는 몇 가지가 되었는데, 우리는 그중 산책정도 코스인 왕복 한 시간짜리로 골랐다. 입구까지 가는데 벌써 길이 눈으로 꽁꽁 얼었다. 더구나 산중턱에 들어서니 눈이 많이 내리고 바람도 강하게 불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 도착하니 '입산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고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잠시 눈을 맞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 한라산 중턱.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흐려서 입산금지.
ⓒ 김미영

▲ 지나는 길에 감귤농장에 잠시 들렀습니다.
ⓒ 김미영
산에서 내려와 시장구경을 위해 시내로 나갔다. 시장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시장에 들어서니 '섬'이라 그런지, 해산물과 생선들이 많이 있었다. 어딜 가나 시장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시장을 한바퀴 쭉 둘러보고, 배가 고파져 분식집에 들어갔다. 우리가 맛있는 집에 잘 찾아갔나보다.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김치부침개 한 장과 김밥 한 줄, 만두, 삶은 달걀, 어묵, 떡볶이가 접시에 가득 담아져 나오는데 이렇게 해서 삼천 원이다. 여기에 천 원짜리 어묵 한 대접을 먹고 나니 너무 배가 불렀다.

▲ 너무너무 맛있었던 떡볶이와 어묵
ⓒ 김미영
여행 셋째 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우리는 숙소인 중문관광단지에서 "성산일출봉"을 들러, 제주도를 반바퀴 돌아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목적지가 한곳 뿐이어서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바다구경도 실컷 할 수 있었다. 나는 성산일출봉이 두 번째이다. 몇 년 전쯤 여름에 왔었는데 너무 멋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어, 겨울은 어떤 모습일지 자못 기대가 되었다.

▲ 성산일출봉의 멋진 모습
ⓒ 김미영
여행하는 삼일동안 제주도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금방 눈보라가 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해가 쨍쨍 나고 또 다시 한껏 어두워져 눈보라가 몰아치고, 성산일출봉에 도착했을 때도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고 눈까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았다. 올라갈까 말까를 잠시 망설였지만 눈보라가 몰아쳐도 올라가자고 결정했다.

▲ 성산일출봉 꼭대기에서 찍은 사진. 멀리 우도가 보입니다.
ⓒ 김미영
친구와 나는 바람을 안은 채 꼭대기로 올라갔다. 꼭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간 중간 내려다본 바다는 너무 시원했다. 보는 장소에 따라 바다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졌다. 드디어 꼭대기에 도착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니 왠지 눈물이 났다. 세상은 이토록 넓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심한 바람에도 꿋꿋하게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친구와 약속을 했다. 꼭 둘이서 여행을 또 하자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12월 여행이벤트 응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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