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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관련해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는 '인권은 개인적 차원의 권리'일 것이라는 관념이다. 이러한 관념에 따르면, 민족자결권 같은 민족 단위의 권리는 인권 개념에 포함 시킬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같은 관념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오류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늘날 국제인권규약에서 민족자결권을 인권의 범주에 포함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연합(UN) 헌장의 인권 조항이나 세계인권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반면에, 국제인권규약은 국제법적인 구속력이 있다. 그리고 국제인권규약은 (1)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소위 'A 규약') (2)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소위 'B 규약') (3)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선택의정서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1993년 1월 3일에 발효된 A 규약, 즉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f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제1조는 다음과 같이 민족자결권을 인권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모든 민족은 자결권을 가지며 자기의 정치적 지위를 자유로이 결정하고 자기의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발전을 자유로이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천연의 부와 자원을 자유로이 사용·처분할 수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의 생존수단을 박탈 당하지 않는다. 규약 당사국은 UN 헌장에 따라 자결권을 존중하고 그 실현을 촉진하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족 단위의 권리인 민족자결권이 국제인권규약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민족자결권이 개인적 차원의 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적으로는 인권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개인의 권리가 민족공동체 혹은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 온 역사적 경험을 볼 때에, 이 조항은 결국에는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날에는 개인의 권리가 계급적 차원(예컨대 노동자 계급)에서도 보호되고 있지만, 사회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개인의 권리는 현실적으로 민족공동체 혹은 국가에 의해 보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민족공동체나 국가의 자결권을 보호하는 것은 민족공동체 혹은 국가 그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결국에는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보호해 줄 수 없듯이,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은 노동자 계급 스스로가 보호할 수밖에 없듯이, 민족 구성원의 이익은 다른 민족이 아닌 그 민족 스스로에 의해 보호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수많은 침략국들이 피침략국의 인권 실태에 대해 시비를 걸었지만, 그것이 피침략국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침략 명분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국력이 강하든 약하든 간에,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방패막이는 민족공동체 혹은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민족자결권을 보호하는 것은 결국에는 각 민족에 속한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인권을 문제 삼는 미국은 "북한 민중의 개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민족자결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개인적 차원의 인권도 인권이고 민족자결권도 인권이라면, 국제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 2가지 모두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인권이 정치 권력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되듯이, 민족자결권 역시 다른 정치 권력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개인적 차원의 인권과 민족자결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에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를 판단할 때에는 합리적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어느 한 쪽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될 때에, 그 제한은 필요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가해져야 할 것이다.

만약 북한 민중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북한의 민족자결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면, 그러한 제한은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그리고 민족자결권을 최소한 침해하는 범위에서 가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북한 민중이 겪는 어려움이 다른 나라 민중도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라면, 북한 정권을 전복하거나 북한을 경제적으로 고립 시키려는 시도는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당연한 언급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하려면 그러한 주장을 하는 쪽에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는 검사가 피고의 유죄를 입증해야지 피고에게 무죄를 입증해 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런 합리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북한에 존재하는 감옥은 무조건 정치범수용소일 것'이라는 식으로 예단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합리적 태도가 아닐 것이다.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이 포함된 국제사회에서는 민족자결권도 엄연히 인권의 일종의 인정하고 있으며 거기에다가 국제법적 구속력까지 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이 국제사회의 모범적인 일원이라면 미국 역시 북한의 민족자결권을 인권의 하나로서 존중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인권을 운운하면서 북한의 민족자결권을 함부로 침해한다면, 그러한 행위 자체가 또 다른 인권침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언급이기는 하지만, 남의 나라의 인권을 문제 삼으려면 적어도 자기 나라 안에서는 별다른 인권 문제가 없어야 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 때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성경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장 3절)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가 운영하는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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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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