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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원시적 고기잡이 '죽방렴(竹防簾)'으로 멸치를 잡으며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자주 갑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이곳 사람들은 봄, 가을에 멸치를 잡고 겨울에는 굴을 까며 살아갑니다. 그곳은 바로 남해 지족 갯마을입니다.

요즘 힘든 일이 있으면 훌쩍 바다로 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바다를 찾기 전에는 산에 미쳐서 돌아다닌 적도 있었지요. 바다와 산은 그렇게 통하는 모양입니다. 하긴 바다와 갯벌을 지키기 위해서는 샛강이 살아야 하고, 샛강은 숲이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산과 강과 바다는 같은 뿌리인 것 같습니다.

ⓒ 김준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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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멸치쌈밥을 먹었습니다. 육지에서 먹는 쌈밥에 돼지고기 대신 멸치가 들어간 것입니다. 아주 맛이 있습니다. 멸치회도 맛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너무 추워 마음도 얼어 버렸습니다. 지난 초가을 갯내음을 맡으며 걸으며 그 길, 버스를 타고 지났습니다. 길가에는 멸치 대신 굴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완전 무장을 하고 굴을 까는 아줌마들의 손놀림이 부지런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비닐하우스로 굴막을 지어 작업을 하는데, 바람에 맞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몸이 떨립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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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은 오는 고기를 기다려 잡는 오래된 전통 어법입니다. 옛날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곳입니다. 지금처럼 바다 속을 배 안의 모니터에서 들여다 보며, 고기를 쫓아가 잡는 것이 아닙니다. 철따라 물 따라 오는 고기를 잡는 것이지요. 그래도 먹을 만큼 잡았다고 합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만기요람>에는 고군산, 위도, 영광, 부안, 만경, 광양, 순천, 강진 등지에 어살로 고기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동력선과 낭장망이 보급되어 고기를 쫓아다니며 잡기 전까지 서남해 지역에 가장 일반적인 고기잡이 방법입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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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은 대나무를 이용한 함정어구를 수심 10m 내외의 낮은 바다에 설치하고 조류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전통어업입니다. 유사한 함정어업으로는 독살(돌살), 주목망 등이 있습니다. 죽방렴의 방렴은 '살'이라고도 합니다. 바다에 설치할 경우 '방렴', 내륙의 강에서 이용할 경우 '살'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1469년(예종 1년) <경상도 속찬지리지> '남해현조편'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고기잡이 전통은 경상남도 남해군 지족해협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창선도와 남해읍 사이의 지족해협은 수심 10m 내외로 물길이 좁고 물살이 빨라 어구를 설치하기 적당한 곳입니다.

얕은 갯벌에 V자 모양으로 참나무 말뚝을 박고 그물을 엮어 고기가 들어오면 V자 끝에 설치된 불룩한 임통(불통)에 갇혀 빠져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어민들은 하루에 두 번씩 배를 타고 들어가 뜰채로 건져냅니다. 지족마을 어민들이 주로 잡는 것은 봄부터 가을까지 잡는 멸치입니다.

▲ 죽방렴에서 잡은 학꽁치를 손질해 갈무리해서 일본으로 보낸다고 한다.
ⓒ 김준
이외에도 학꽁치, 장어, 도다리, 농어, 감성돔, 숭어, 보리새우 등도 잡히며 인근 횟집에서 활어용으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죽방렴에 대나무 대신 그물을 대어서 만들지만 과거에는 대나무를 쪼개서 그물 대신 엮어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역에 따라 대나무 대신 칡넝쿨이나 싸리나무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그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는 명주그물, 나일론 그물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어살은 조선시대에 중요한 세원이었으며, 염세와 선세 등과 함께 바다에서 거둬들이는 중요한 재원이었습니다. 이럴진대 왕족이나 권문세가들이 이를 가만히 두었겠습니까? 이러한 연유로 민초들에 대한 민폐들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죽했으면 조선시대 헌법인 <경국대전>에 소금과 더불어 어살의 등급을 나누어 장적을 만들어 등록토록 했겠습니까. 이를 어기고 등록을 하지 않고 사사로이 치부를 할 경우 곤장 80대를 때렸다고 합니다. 당시 국가에서 어살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민폐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지요.

ⓒ 김준
이곳의 죽방렴 1통이면 대학생 하나는 충분히 가르치고 생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죽방렴 멸치는 다른 멸치에 비해서 맛이 좋아 높은 가격에 판매됩니다.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신선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멸치는 낭장망(정치망)으로 잡거나 배를 가지고 어군을 찾아 그물 놓아 잡습니다. 지족해협의 죽방렴 멸치는 잡은 즉시 가공해 건조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한통의 죽방렴을 가지고 있으면 일 년이면 7천에서 1억 원 정도 소득을 올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멸치잡이를 하지 않는 겨울철에는 굴 양식을 하기도 합니다.

지족해협에는 20여 통의 죽방렴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멸치를 잡는 모습을 볼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멸치쌈밥, 멸치회 등 멸치를 이용한 음식 외에 죽방렴에 들어온 싱싱한 생선회 등도 맛볼 수 있습니다. 찬바람이 불자 먹이를 찾아 나온 갈매기들이 더욱 극성입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몹시 춥습니다.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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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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