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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며 뜨거워진 눈덩이를 감추었습니다. 더 할머니와 이야기하다간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춥다던 날씨가 포근해서 다행입니다. 할머니는 겨울 땔감을 준비하기 위해 산에 올랐다 내려와 오후 3시가 다 되어서 김치 하나 놓고 점심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아직도 자동차는 덜덜거리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깐 들렀다 나오려고, 돌담이 너무 예뻐서 그냥 사진만 몇 장 찍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빈집이 아니었습니다. 뚤방 위에 시골 어머니들이 즐겨 신는 슬리퍼가, 오른쪽 부엌방에도 한 켤레가 있었습니다. 미닫이 옆에는 주렁(지팡이)이 놓여 있었습니다. 허리가 구부정한 뒷모습이 작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식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 김준
ⓒ 김준
ⓒ 김준

"할머니."

대답이 없습니다. 더 크게.

"할-머-니."

돌아봅니다.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머리는 헝클어졌지만 건강해 보입니다.

"다무락, 사진 좀 찍을게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식사를 하십니다. 200년 된 집이라고 합니다. 한 시간 전에 이웃 마을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나다 보아 둔 집입니다. 막배가 2시간 정도 남아 있지만 아직도 한 군데를 들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순식간에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슬레이트 지붕이지만 뼈대는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시골에 두고 몸만 빠져나왔던 우리 고향집이 생각났습니다. 군대에서 제대한 아버지는 젊은 기운에 이것저것 해보고 작은 아버지의 권유로 비단장사도 해보았지만 실패하고, 땅이 많은 박씨네 논을 얻어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하루면 끝날 우리 농사일은 언제나 박씨네 농사일이 끝나고 난 뒤에 끝났습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쯤 되었을까, 어느 날 학교에서 와보니 지붕 마람들이 마당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지붕위에는 면직원들이 올라가 쇠스랑으로 초가집을 긁어내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박씨네 농사일로 집이 없었습니다.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개량을 추진하는데 초가집을 없애지 않고 버틴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호남고속도로 변에 있었던 우리 마을은 더욱 심했습니다. 그 뒤로 한참을 비닐로 덮고 지내다 슬레이트를 얹었습니다. 색 칠해진 슬레이트 지붕을 보면 그게 떠올랐습니다.

ⓒ 김준
ⓒ 김준
ⓒ 김준
나머지 일정을 작파하기로 했습니다. 마늘밭으로 변한 집을 이곳저곳 살펴보았습니다. 식사를 다 마친 할머니도 마루에 앉아 느닷없이 들이닥친 젊은이를 구경하는 눈치였습니다.

집터가 꽤 넓었습니다. 안채 외에 두어 채의 집이 더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모두 가난해서 찾아보지 않는 모양입니다. 겨우 면사무소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인근에는 마을도 없이 외딴 집입니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나무도 그만 하시겠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있는 것이나 다 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옛날 부엌이네."

이럴 때 자리를 잠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엌도 구경하고 눈물도 훔쳤습니다. 다시 돌아와 할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목구멍에서만 맴돌았습니다. 대신에,

"할머니 꼭 식사하세요."

ⓒ 김준
ⓒ 김준
ⓒ 김준
그렇게 하고 돌아서는 길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열쇠를 찾으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다 점심 때 소재지 농협에서 찾은 돈이 손에 잡혔습니다. 할머니에게 다시 갔습니다. 손에 한 장 꼭 쥐어드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립문도 없는 돌담 사이로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 모습이 보입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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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