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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0.29(양력 11.28), 물때 너물, 날씨 맑음, 바람이 많이 불고 몹씨 추움
경남 남해군 다랭이마을(가천리)


어제 저녁에 먹은 막걸리가 갈증을 부른 모양입니다. 새벽이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는데 늦잠을 자다 갈증에 눈을 떴습니다. 저녁에 다랭이 마을 두레방에서 추진위원장의 강의를 듣고 마을에서 만든 막걸리에 파전을 안주로 몇 잔 먹었더니 갈증이 났던 모양입니다. 밤새 뒤척거리며 잠을 못 이루다 늦게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마을 아래 갱번에서 보는 일출이 볼만하다는 민박집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일찍 일어나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였습니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들도 내려갔습니다. 다랭이 마을에서 갱본까지 내려가는 길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른 아침에 나왔는지 마을을 지키고 있는 미륵에게 아주머니가 합장을 하고 정성을 드리고 있습니다. 주민은 아닌 듯싶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민박을 온 사람인 모양입니다.

수험생 손주가 있는지,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가 있는지,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지나쳤습니다. 주민들은 미륵이라고 부르고 매년 정성을 드리지만 군에서는 '암수바위'라고 이름을 정하고 안내문까지 붙였습니다. 일 년이면 다녀가는 7만여 명의 방문객들이 꼭 보고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10분이면 내려갈 길을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며 해찰을 하다 20여분쯤 걸린 것 같습니다. 어제 오후 늦게 도착한 탓에 제대로 마을을 보지 못한 탓입니다.

ⓒ 김준

ⓒ 김준

ⓒ 김준
벌써 바다 끝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고 있습니다. 갱본에 내려서자 바람이 몸을 가누기 힘들게 불어댑니다. 갈매기는 바람에 맞서 날갯짓을 하며 바다에 닿을 듯 비행을 합니다. 먹잇감을 찾는 모양입니다. 새벽에 부지런을 떠는 것은 갈매기만 아닙니다. 새벽바다를 가르며 대형선박이 광양제철로 들어갑니다. 남해바다는 광양제철과 여수산단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탓에 이들도 분주합니다.

아침 7시, 연한 홍조를 띠던 바다가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평선 위로 구름이 한 층 깔리고 그 위로 붉은 기운이 더욱 강해집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높이 날아오릅니다. 해맞이에 앞서 축하공연을 하려는 듯합니다. 10분쯤 지났습니다. 곧 얼굴을 내밀 것 같습니다. 바다 바람은 더욱 거칠어지고 파도도 높아집니다. 몇 분 전까지 먹이를 찾던 갈매기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수평선, 구름, 그리고 하늘의 경계가 점점 뚜렷해집니다.

ⓒ 김준

ⓒ 김준
오직 바람과 바다 그리고 해를 기다리는 일 뿐입니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가끔 앞만 보고 사진을 찍다가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바다 위에 금빛 구름조각도 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이들은 이미 해를 보았습니다. 오직 어리석은 인간들만 앞만 보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도 뒤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해는 쉬 오르지 않습니다. 더 많은 기도와 기다림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붉은 기운이 더해갑니다.

ⓒ 김준

ⓒ 김준

ⓒ 김준

ⓒ 김준
아! 몇 줄기의 붉은 기운이 터져 나옵니다. 한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불덩이가 바다를 뚫고 찬바람을 헤치며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그리고 3분이 지났습니다. 붉은 기운이 구름과 하늘을 색칠하더니 이제 바다를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파도와 바람이 햇볕을 만나 금빛이 일렁입니다. 다랭이 마을의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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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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