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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1950년 타계한 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가 있는 전라남도 강진을 찾았다. 그곳에도 단풍이 단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늘어선 담 길부터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주려는 듯이 화사하니 따사로웠다. 생가 앞에 세워진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라고 적혀있는 시비가 나의 눈길을 잡았다.

▲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 의 시비가 단풍과 어울렸다.
ⓒ 염종호

▲ 문간채가 바로 보이는 생가로 들어서는 담길에서
ⓒ 염종호

생가인 문간채를 들어서는 앞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비까지 커다랗게 세워놓아 발걸음을 더욱 한가롭게 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시를 마음에 풀어놓으며 들어서니 바로 좌측으로 우물이 먼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자 우물에는 ‘새암’이란 표기와 함께 영랑 선생과 가족이 사용하던 우물로, 훼손되었던 것을 복원했다는 설명문이 있었다.

▲ 가족과 함께 사용했다는 복원된 우물
ⓒ 염종호

▲ ‘마당 앞 맑은 새암을’ 시비
ⓒ 염종호

정면으로 보이는 안채에는 영랑의 초상과 목가구들이 방안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의 큰 방에는 영랑 선생의 부친이 기거했으며, 중마루가 있는 작은 방은 영랑 선생이 결혼 후 기거하던 곳으로 일부 구조가 변형되고 시멘트 기와로 바뀐 것을 1992년에 군에서 초가로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 안채로 중마루가 있는 작은 방에서 영랑 선생이 기거했다고 한다.
ⓒ 염종호

▲ 방에는 영랑 선생의 초상과 가구들이 놓여 있다.
ⓒ 염종호

그런 바로 옆에는 장독대가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장광(장독대)’ 간장, 된장, 김치, 젓갈 등을 담아두거나 담그는 독을 놓아두었던 곳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1930년 어느 날 영랑의 누나가 장독을 열 때 단풍진 감나무 잎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오매 단풍들것네’라고 속삭이자 영랑이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라는 시를 지었다는 팻말과 함께 그 시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마치 영화를 보는 듯이 떠올랐다.

▲ 옹기종기 모여있는 독들이 마치 가족 같다.
ⓒ 염종호

▲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시비
ⓒ 염종호

그 상상에 나도 모르게 콧소리를 내며 사랑채로 향했다.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고 하늘은 맑았다. 사랑채는 본래부터 초가지붕이었고 기둥과 석가래 등의 기본 구조는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 안에는 영랑 선생이 집필하는 밀랍 인형이 있는데 그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그 옆에 자리한 시비 ‘사개틀린 古風의 툇마루에’ 라는 시비가 나의 마음을 다시 포근하게 해주었다.

▲ 전체적으로 모습이 뒤틀려 있는 사랑채
ⓒ 염종호

▲ ‘사개틀린 古風의 퇴마루에’ 시비
ⓒ 염종호

그렇게 생가를 둘러보고는 그 앞에 자리한 은행나무 벤치에 앉자 나도 모르게 시심(詩心)이 드는 것 같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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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브리태니커회사 콘텐츠개발본부 멀티미디어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스마트스튜디오 사진, 동영상 촬영/편집 PD로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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