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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독립선언을 하는 심정으로 종교계가 연합하여 국민을 이끌어야
ⓒ 구준서
지난 13일 아침녘, 산 청정, 물 청정한 운악산 기슭에서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풍경소리 일렁이는 봉선사 큰 법당 옆 주지스님 처소를 찾았다.

친일파후손들의 땅 찾기에 맞서 민족정기를 확립한다는 일념으로 '위헌법률제청' 신청, 소 취하 동의 거부, 조계사 촛불 집회 등을 통해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등 친일잔재 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의 물꼬를 튼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 주지인 철안(鐵眼) 스님을 만나 그동안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새벽예불과 운동을 마치고 약속한 시간에 정확하게 큰 법당 앞에 나타나신 스님은 촛불집회 뒤 근 일주일만에 만난 기자 일행의 손을 잡아끌어 장지문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스님의 방으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아 잠시 산사의 차 향기에 취한 다음 지난 촛불집회의 의미를 화제 삼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 지난 6일 조계사 촛불집회에 대해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는지?
"조계사 촛불집회를 통해 친일잔재 청산을 통한 역사바로세우기와 민족정기 확립이 불교계를 떠나 전 국민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고 봅니다. 특히 그날 집회에는 홍근수 목사님을 비롯한 이해학, 한상렬 목사님 등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참석하셔서 이 문제(친일파 땅 찾기)가 불교계의 문제뿐 아니라 종교의 다름과 종파의 다름을 떠나 온 민족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공감하게 하였습니다. 흐르는 강물을 필부의 두 손으로 막을 수 없듯이 이제 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아무도 거스르지 못할 것입니다."

- 역사를 보면 항상 당랑거철(螳螂拒轍)로 그 흐름에 거역하는 부류들의 짓거리들이 기록돼 있고 지금도 선대의 매국을 참회하기보다 그 더러운 부스러기만을 쫓는 무리들이 실존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친일파 후손들은 이제라도 선대들의 친일행각을 민족 앞에 사과하고 매국의 대가로 받은 재산을 찾겠다는 후안무치한 생각을 거둬야 합니다. 하지만 부(富)와 재물을 탐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기에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들에게 무리일 수도 있지요.

이번에 반환된 북관대첩비 내용에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의병들이 두 왕자를 왜놈들에게 내어준 국경인을 처형한 내용을 보면서 언제 어느 시대이건 침략자에게 빌붙어 자신의 영달을 꾀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연약하냐 하면 기미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로 기록된 33인의 행태를 보면 뚜렷하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33인 중 끝까지 민족 앞에 끝까지 지조를 지키신 분이 만해 한용운 스님과 남강 이승훈 선생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그 시대에 지성이요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살신성인 하겠다고 목숨을 걸고 서명한 분들도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또는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 대부분 변절하여 민족에게 실망을 준 것 아니겠습니까?

만해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1944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합니다. '일본은 꼭 망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웅비할 기틀을 다지려면 일제가 통치한 기간만큼의 세월이 지나야 할 것이다'라고. 그런 점에서 보면 만해 스님의 혜안이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통찰력이 있는 분은 민족 앞에 지조를 지켰고 민족의 앞날에 대해 확신이 안선 분들은 지조를 꺾고 만 것입니다.

저희 봉선사 조실스님으로 계시던 운허 큰스님의 기개와 지조는 또 어떻습니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탁발승으로 바랑에 군자금을 숨겨 독립군에게 전달하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치신 큰스님이 해방 후 미국으로 출장을 가시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미국 직항로가 없으니까 일본 공항에 잠시 기항했다 가게 됐습니다. 기항 도중 다른 사람들은 비행기에서 내려 일본 구경에 여념이 없는데 '나는 왜놈들 땅을 밟을 수 없다'며 노스님은 비행기에서 한 발작도 움직이지 않으셨답니다."

- 불교가 자비의 종교라면 일본도 그렇고, 친일파 후손들도 그렇고, 관음보살의 자비로 용서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진정한 참회의 과정이 없는데 어떻게 용서하겠습니까? 독일이 2차대전 후에 인류에 고통을 준 것을 인정하고 유대인 학살을 진정으로 참회한 것처럼 일본도 아시아와 세계만방에 용서를 빌고 조선 민족에게 식민지 지배의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는 등 철저하게 과거를 청산했다면야 운허 스님의 생각도 바뀌셨겠지요.

이해창 후손들만 해도 얼마 전 봉선사에 와서 부처님 앞에 참회를 한 적이 있었지요. 품안에 날아든 새를 다시 내칠 수 없는 것이 불제자이니만큼 저도 개인적으로 용서한다는 말을 했지만 절문을 나서면서부터 딴소리 하더니 이젠 소 취하거부를 번복하고 변론재개를 신청했다고 들었습니다.

더럽다고 놀림을 받은 까마귀가 몸에 흰 물감을 칠하고 뽐내다가 비가 와서 추악한 본색이 들어났다는 이솝의 이야기처럼 자신들도 불자라면서 참회를 했던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스스로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니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 원래대로라면 10월 14일 판결이 나게 돼 있던 것 아닌가요?
"저희도 그렇게 알고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이 기각될 경우를 대비해서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었던 참이었거든요. 12일 <추적60분>을 보니 친일파 후손들이 땅을 찾기 위해 공익단체나 심지어 종교단체에 기부할 것인 양 사기를 친다는 보도를 보고 '인간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하고 새삼 놀랐습니다. 성경에 '회칠한 무덤'이라는 비유가 있는데 무덤을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해 봤자 그 안에 주검이 썩고 있는 무덤 아니겠습니까?"

▲ 특별법 제정은 무명 독립지사들의 천도의식이 될 것입니다.
ⓒ 구준서
- 불교계가 이번에 역사바로세우기 물꼬를 튼 것은 높이 평가합니다. 궁금한 것은 불교가 친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불교계가 이번 일을 절 내부의 일로 보지 않고 민족의 문제라고 본 연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이기(利己)를 떠난 이타행(利他行)이 수행자의 원래 모습이기에 자신의 이익보다 더 큰 이익(弘益)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고 다음은 흔히 '호국불교'라고 불리는 우리 나라 불교의 전통입니다.

호국불교의 전통은 멀리 신라시대 원광법사가 창건한 화랑정신을 효시로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략에 팔만대장경이라는 대 불사를 일으켜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려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이라는 정책의 차별을 받으면서도 국란(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산, 사명, 영규대사가 백성의 선봉에 서서 나라를 구했습니다. 그 법통이 만해 스님, 운허 스님의 독립운동을 거쳐서 불교가 그나마 민족 앞에 떳떳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불교계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지 반성할 부분 또한 많습니다. 일제는 우리 불교 선종(禪宗)의 맥을 끊기 위해 끊임없이 승려들의 결혼(帶妻)을 회유했고 그로 말미암아 절간에 아기 기저귀가 휘날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청담 큰스님의 살신성인에 힘입어 불교계가 정화되고 일제 때 태고사가 있던 그 자리에 조계사가 서고 되찾은 선종 본찰 큰 법당 앞에서 친일파 재산환수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촛불집회를 하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상전벽해가 된 것은 오직 민족혼을 지니신 불교계 큰스님들의 가르침과 사부대중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친일파 재산 환수 특별법은 촛불집회를 거치며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는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옳을까요?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문제는 이미 불교계를 떠나 민족이 해결해야 할 화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제 국민의 공론을 결속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종교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기미독립선언 때도 종교계지도자들이 합심해서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처럼 제2의 독립선언을 하는 심정으로 연합하여 나갔으면 합니다. 다행히 촛불집회 때 참석하신 홍근수 목사님 등 다른 교계 지도자님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니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일을 위해서라면 작은 힘이지만 진력을 다 할 생각입니다."

- 마지막으로 국민과 3부(三府)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우리가 지금 우리말과 글을 간직한 채 조상의 땅에서 살게 된 것은 독립투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해방된 조국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독립운동 한 가문 3대가 망하고 친일 한 가문 3대가 흥한다'는 부끄러운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비록 임시정부가 나라의 법통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지도자들 중 일부는 귀국하여 이름이라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찬바람 부는 만주벌판에 스러진 고혼들이 얼마입니까? 이제라도 우리는 구천을 떠도는 선열들의 영혼이 정토에서 안식할 수 있도록 천도(薦度) 의식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국회에 계류 중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특별법'의 통과야말로 무명 독립투사들의 천도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힘든데 무슨 역사바로세우기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론은 마치 '우리 민족이 힘이 없으니 일본의 힘을 빌려 민족을 개조하자'는 이론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입법, 사법, 행정부에 다시 한번 고언(苦言)합니다. 국회는 하루 속히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은 목어(木魚)처럼 두 눈을 치켜뜨고 국민을 대표한 어느 의원이 그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입니다.

사법부는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친일파후손들의 재산반환 소송 등 관계재판을 중단해야 하며 저희 봉선사가 신청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여 친일파 후손들의 땅 찾기 행위가 '대한민국은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헌법전문에 반한다는 판결을 내려 줄 것을 촉구합니다.

정부 또한 부작용이 일고 있는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을 한시적으로 중단해야 하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통합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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