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여름 고향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부부였는데 기차로 목포까지 왔고 내가 그곳까지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갔다. 그런데 차에 오를 생각은 않고 다짜고짜 시장을 찾았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묻자, 장을 봐가야 되지 않느냐고 되려 묻는다. 얘기를 더 듣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도를 볼품없이 작고 먹을 거리도 맘대로 살 수 없는 초라한 섬으로 생각하셨단다.

80년도 중반 진도대교가 놓이기 이전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때는 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육지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축구하다 좀 세게 차면 공이 바다로 빠진다더라”라는 유행어가 나돌았으니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도는 살아 숨쉬는 박물관이다. 지금의 진도는 많이 변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농경사회의 모든 원형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물론 외지인이 생각하는 가장 인상적인 진도의 풍경은 씻김굿이다. 유배지의 땅 진도, 그곳의 삶과 문화를 따로 떼어놓고는 말할 수 없는 곳이다. 진도 아리랑이 그랬고 질펀한 육자배기가 들노래와 함께 진도의 정서를 말해준다.

무형 문화재에 관한 애틋한 사연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금부터 볼거리 가득한 여행지로 떠나 보도록 하자. 사실 한두 군데만을 쓰려던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그 먼 곳까지 여행을 가면서 단 몇 곳만을 보고 온다면 애써 먼 길 여행한 본전 생각 간절할 것 같아서 다소 길어지더라도 섬 전체는 아니지만 가볼만한 곳 몇 군데 추가하기로 했다. 아직도 진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기에 그런 분들을 위해 기회를 엿보고자 함이다.

▲ 진도대교(쌍교), 왼쪽으로 보이는 다리는 2006년 완공예정이다.사진을 찍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주위 작은 섬들이 소곤 거리 듯 올망졸망하게 떠있다.
ⓒ 이기복
진도의 관문, 진도대교와 울돌목

이곳은 진도개와 함께 진도의 상징이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신을 무찌른 명량대첩지 울돌목 위에 놓여 있다. 울돌목이란 "소리를 내어 우는 바다 길목" 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고 한자어로 명량(鳴梁)해협이라 불린다. 울돌목의 폭은 294m 정도이나 물살이 세고 소용돌이가 쳐서 그 소리가 해협을 뒤흔들 정도라고 하며, 2006년 완공을 목표로 제2의 진도대교가 가설 중이다.

올망졸망 세방낙조 전망대

▲ 세방낙조/무슨 말이 필요할까, 절로 감탄사가 토악질 하듯 한다
ⓒ 박병순
올해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한 전국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으로 추천한 곳이다. 진도의 서부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다도해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 그 사이로 올망졸망 떠있는 섬들의 어우러진 경관은 자연이 빚어 놓은 예술품이다. 여기에 더해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지독한 홍주 한잔 곁들인다면 나도 어느새 풍류를 읊는 시조시인이 되고 만다.

운림산방과 쌍계사 그리고 소치 기념관과 진도 역사관

▲ 운림산방/왼쪽 뒤로 쌍계사가 있고 오른쪽엔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연못뒤에 소치 생가가 있으며, 뒤로 보이는 산이 첨찰산이다.연못에서 영화"스캔들"을 촬영했다.
ⓒ 이기복
운림산방(전남 기념물 제51호)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유(련) 선생(1809-1892)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남종화의 요람이다. 이곳을 거점으로 전개된 허씨 가문 4대에 걸친 예술은 진도가 이룩한 인문주의 예술의 절정이며 19세기 한국 미술의 꽃이다. 운림산방은 연못과 어우러져 정원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생가와 함께 소치 기념관과 진도 역사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 내에는 소치선생부터 4대에 걸쳐 탄생된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운림산방과 소치선생의 대한 영상물을 상영한다. 역사관은 선사 고대실을 비롯 삼별초실, 유배 문화실, 아리랑실 등으로 진도의 역사와 문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다.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쌍계사는 신라시대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대웅전(전남 유형문화재 제121호)과 주변이 상록수림(천연기념물 107호)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면서도 고풍스런 분위기가 묻어난다. 약 1만2231 제곱미터 넓이에 동백나무, 후박나무, 감탕나무 등의 상록 활엽수와 마삭줄, 멀꿀 같은 상록성 덩굴식물 등 50여종의 다양한 수목이 자라고 있다. 이 모두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 첨찰산이다. 가족과 함께 산책을 즐긴다면 아주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 남도석성과 마을의 골목길/신축과 증축이 되지 않는 원형 그대로다. 국가적인 지원이 없어 보존에 어려움이 많다
ⓒ 이기복/박병순
사적 제127호, 남도석성

남도석성은 조선시대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수군과 종4품 만호(萬戶)를 배치하여 조도해협과 신안 하의도 해협 등을 관할하였다. 성의 길이는 610m, 높이 5.1m로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성안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성의 외곽을 건너다니기 위해 축조한 쌍교와 홍교는 편마암의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형태라고 한다. 마을 안을 걷자면 아득한 옛날을 여행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크고 작은 섬들이 새떼처럼 모여 있어 불리어진 이름 '조도' - 조도군도

▲ 하늘다리와 관매도 독립문/거센 파도에 밀려 갈라 졌다고 한다
ⓒ 이기복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 속의 또 다른 진도의 조도, 이곳은 조금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사방을 뺑 둘러 싼 바다 위에 흩어져 있는 섬들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관매 8경으로 불리우는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관매도를 빼놓고 조도를 다본 것처럼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매도는 전설이 깃든 신비한 절경의 집합소이다. 섬 가장자리에 덩그러니 바위가 우뚝 쏫아 있는 방아섬, 굴이 패여 있는 할미중드랭이굴, 섬과 섬 사이가 3m 절벽으로 갈라진 하늘다리, 벼락으로 한쪽 섬이 떨어져 나갔다는 벼락바위 등 기묘한 절경들이 즐비하다. 또 잔잔한 바다와 남북으로 3Km 정도 되는 관매도 해수욕장이 있다.

얕은 수심과 3만여 평의 울창한 송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솔밭 뒤에는 천연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된 800년은 족히 넘은 후박나무가 영험한 기운을 뽐내고 있다. 조도에서 한참 떨어진 거차군도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최서남단의 섬인 병풍도가 있다.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는 병풍도는 갖가지 형상의 기암 절경을 이루며 강태공들에게 명성이 자자한 낚시터이기도 하다. 드라마 <패션 70'S>에서 평화롭고 이국적인 풍경처럼 보이는 뾰족한 바위가 많은 맹골도 역시 병풍도에 속한다. 모든 섬들은 배를 빌려 돌아보아야 한다.

▲ 위에서 아래로 관매도 해수욕장, 광대도(사자섬), 병풍도
ⓒ 이기복
이 밖에 들러볼 수 있는 곳으로는 용장산성(사적 제126호), 금골산과 금골석탑(보물 제529호), 12월과 2월 사이에 볼 수 있는 백조도래지, 바위로 이루어진 동석산, 신비의 바닷 길, 조개잡이 체험장, 왕온과 삼별초군이 용장산성에서 고려의 자주를 위해 몽고군에 저항했으나 적장에게 붙잡혀 왕온과 그의 아들 항은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붙여진 왕무덤재(고개)에 전 왕온의 묘(전남 기념물 제126호)가 왕이 탔던 말의 무덤과 함께 있다. 2004년 7월 개원한 국내 최대의 국립남도국악원이 있다. 공연관련사업과 국악연수 및 국악연구사업 공간이다. 국악전용극장(600석), 야외공연장(1200석), 야외소공연장(120석), 숙박시설과 연습동, 식당, 카페테리아 등 완벽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 남도국립국악원에서 바라본 귀성리 포구와 신비의 바닷길/귀성마을과 포구는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촬영지로 유명하다
ⓒ 박병순/이기복
<칼의 노래>의 작가인 김훈은 그가 쓴 <원형의 섬 진도>에서 "진도는 원형의 섬이다. 진도는 맑은 땅이다. 삶의 모든 국면들을 포괄하는 힘세고 순결한 원형들이 그 섬에서 비롯되었고 거기서 축적되었다. 그러므로 진도는 섬이 아니다. 진도는 세계적이고 진도는 보편적이다" 라고 했다.

또한 곽재구 시인이 여행차 모스크바에 들렀을 때다. 차이코프스키 국립음악원에서 만난 어느 한 노 교수와 우연한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자신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진도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고 묻더란다. 정확한 우리말로 "진도"라고 발음 했을때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고백했다. 노 교수는 헤어지면서 그에게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한다. 언젠가 진도에서 한 3년쯤 살고 싶다고.

1년에 네 다섯 번은 꼬박 고향으로 향한다. 갈 때마다 잊지 않고 들러 보는 곳이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돌아가면서 산책하듯 마음에 새긴다. 고향에 대한 애틋함과 허허로움을 채우지 않고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굳이 명승지나 입에 발린 관광지가 아니라도 좋다. 들판에서 그들의 삶에서 끝없이 신명나는 곳. 주민들 중에서 소리 잘하는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될 뿐 배우와 관객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들판의 소리꾼들이 사라지지 않는 원형의 섬 진도. 이 땅에서 마지막 남은 슬프고도 신명나는 땅이며 소리꾼의 소리 한 자락에도 살가운 정이 넘치는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진도 찾아가기
자가용/서울-서해안고속도로-목포I.C-영산호하구둑-영암방조제-금호방조제-77번국도-우수영-진도.
서울-대전-호남고속도로-광주 광산IC-13번국도-나주-영암-해남-18번국도-진도
부산-남해안고속도로-광양-2번국도-강진-18번국도-진도

버스/서울-진도(1일4회 왕복,6시간 소요), 광주-진도(1일53회 왕복,2시간30분 소요), 목포-진도(1일23회 왕복, 1시간 소요), 부산-진도(1일2회 왕복,6시간30분 소요)

철도/서울-목포(1일9회 운행), 서울-광주(1일12회 운행)
고속철도/서울-목포(1일12회 운행,2시간58분)

안내/진도군청 문화관광과(061-540-3215), 진도관광안내소(061-544-0515, 533-0088), http://tour.jindo.go.kr

부족했던 자료를 찾아 많은 도움을 주신 진도군청 관계자들과 특히 이기복님에게 깊은 감사 드립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