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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개를 던지기에 알맞은 가을 들판에는 이제는 참새가 없지만 팽개 바위와 팽개 던지기의 추억은 남아 있다
ⓒ 오창경
내가 지난 2003년에 쓴 '전설이 되어버린 팔매 던지기'란 기사가 있다. 그 기사가 나간 이후에 방송까지 타게 돼서 공연히 내가 동네 어르신들 동원하느라 애를 먹었던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촬영에 협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여러 가지로 힘이 들었다. 또 촬영하면서 깬 저수지 부근 음식점의 유리창 값도 우리가 변상해주었다. 그 기사는 나에게 좋지 않은 기억만 남겨주었다.

그런데 그 방송이 나간 이후 많은 변화가 일었다. 해마다 가을 무렵이면 종종 타 방송사로부터 촬영을 할 수 있겠냐는 전화가 왔으며 또 처음 촬영을 할 때는 비협조적이었던 동네 어르신들의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방송이 나가면서 유명해진 것은 '팔매'가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이었다. TV에 출연하게 되면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장에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전국에 흩어져서 살고 있던 친지들의 전화도 빗발쳤다고 한다. 그렇게 졸지에 연예인 취급을 받으니 어르신들의 심기가 달라지실 수밖에….

"기자 양반, 나 다시 한번 테레비에 나가게 좀 해주면 안 될까?"
"이런 게 있는데 취재 좀 안 할랑가?"

도시에서 굴러 들어온 풋내기 취급을 하던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또 취재거리 제보도 적극적으로 했다. 나 역시 그 당시엔 단순한 호기심에 그 기사를 썼는데 시골살이에 적응하고 보니 '팔매'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생겨 보충기사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됐다.

사실 우리 동네에서는 '팔매 던지기'라는 말보다 '팽개치기'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는 것을 방송이 나간 후에 알았다. 그리고 동네에 '팽개 바위'라는 바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 후에 알게 되었다.

우리 일상 언어 속에서 '팽개 친다'라는 동사가 주로 쓰이지 '팽개치기'라고 하는 명사형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 것은 '팽개치기'라는 용어가 언어로 잘 쓰이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이면 어린 시절 많이 했던 '팽개치기'를 그리워한다.

무엇인가를 힘 있게 던지는 행위를 뜻하는 '팽개치다'라는 뜻 그대로 '팽개치기'는 '팔매'라는 기구를 만들어 들판의 참새들을 쫓는 것을 말한다. 전에 쓴 기사에서도 자세하게 팔매 기구들을 소개했지만 그 때는 사진기가 없어서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에는 사진과 함께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팔매 기구에는 흙팔매, 줄팔매, 망팔매, 후리채 등의 4종류가 있다. 이 4종류의 팔매기구들은 보기에는 어설퍼 보이지만 사용자의 연령순으로 배열을 한 것이다. 또 이 팔매 기구들에는 나름대로의 과학적 원리가 있고 그 위력도 대단하다.

▲ 흙팔매. 단순하게 보이지만 논의 진흙을 대나무 끝의 갈라진 곳에 찍어서 던진다.
ⓒ 오창경
흙팔매는 대나무 막대기 끝을 열십자로 쪼개서 논둑의 흙을 찍어서 던지는 것으로 힘이 약한 어린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구였다. 일손으로 부리기엔 부족하고 가을 농사로 바쁜 어른들에게 방해만 되는 아이들을 들판으로 내보내 새를 쫓게 했다.

▲ 줄팔매. Y자 끝에 돌을 넣고 부드러운 나무가지의 반작용과 손가락의 힘을 이용해 던지는데 그 위력이 대단해서 날아가는 새도 맞힐 수가 있다.
ⓒ 오창경
줄팔매는 Y자 모양의 휘어지는 나뭇가지에 노끈을 걸어서 그 사이에 돌을 넣어 멀리 튕겨 나가도록 하는 기구인데 조금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처음 접하는 사람은 몇 번의 연습을 거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기구이다. 이 기구는 순수하게 새를 쫓는 용도 이외에 높은 가지 위에 달린 열매를 따거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편지를 담 너머로 배달하는데 사용하기에 알맞다. 돌이 날아가는 성능이 위협적이어서 철제 무기가 발달하기 전에 이 기구가 있었다면 부족간의 전쟁에서도 요긴하게 쓰였을 것 같다.

▲ 망팔매. 모시끈으로 짠 망에 돌을 넣고 휘휘 돌리다 던지는 팔매
ⓒ 오창경
망팔매는 긴 대나무 막대기 끝에 모시 끈으로 망을 엮어서 돌을 집어넣고 원심력을 이용해 공중에서 휘휘 돌리다가 목표물을 향해 던지는 것이다. 이것은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맞히는 용도로 쓰였다. 이 망팔매에 돌을 넣어 던지면 적어도 120m쯤은 가볍게 날아간다고 한다. 제법 힘깨나 쓴다는 사내들이 이 망팔매를 어깨에 둘러메고 들판으로 나서서 한바탕 팔매질을 하고 나면 동네 참새들이 한동안 조용했을 것이다.

▲ 후리채. 나무 손잡이를 잡고 머리 위에서 휘휘 돌리다가 반대로 돌려 내려치면 지구를 뒤흔드는 소리가 난다.
ⓒ 오창경
후리채는 막대기에 굵은 새끼줄을 길게 꼬아서 연결한 것으로 채찍처럼 생겼다. 이것을 머리 위에서 휘휘 돌리다가 반대 방향으로 내리치면 요즘 과수원의 새를 쫓는 대포 소리를 녹음한 소리만큼이나 위협적인 소리가 난다. 4가지 기구 중 유일하게 돌이나 흙을 사용하지 않고 기구 자체로만 이용하는 것이며 웬만한 테크닉이 없이는 절대로 위협적인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허수아비만 외롭게 서 있게 되는 겨울이 오면 동네의 피가 끓는 사내들은 용골 모퉁이 팽개 바위 아래에 모여서 줄팔매와 망팔매에 돌을 장전해서 팽개 바위를 넘기는 시합을 하곤 했다고 한다. 또 멀리서 팽개 바위를 향해 돌을 던져서 맞히거나 넘기는 시합도 했고 한다. 팽개 바위가 마주 보이는 건너편 길 아래에는 커다란 돌이 하나 놓여 있어서 거기 서서 팽개 바위를 향해 팔매를 던진다고 한다. 그 거리는 대략 200m 이상이 되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신작로가 생겨서 그 돌이 없어졌는지 풀숲에 묻혀져 버렸는지 확인을 할 수가 없다.

▲ 팽개 바위
ⓒ 오창경
▲ 팽개를 던지는 돌이 있었다는 곳에서 바라 본 팽개바위
ⓒ 오창경
팔매로 팽개 바위를 넘기는 시합은 마을과 마을 간의 대결로 발전해서 긴 엄동설한을 즐겁게 보내는 한 가지 놀이가 되기도 했고 다음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한 체력단련의 한 방법이 되기도 했다.

"그것뿐만이 아녀, 계백 장군이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에도 저 팽개 바위에다 팔매로 팽개치기를 했다고 하는 걸. 계백 장군 고향이 우리 동네인 걸 보면 모르겠남."

우리 동네 어르신들은 이제 내게 정보를 주는 정보원들이 되셨다. 실제로 팽개 바위는 산 중턱에 불쑥 튀어 나와 있어 예사롭지 않다. 거기다 새의 부리처럼 생겨 지상에서 돌팔매를 던져 넘기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몇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부여군은 그 팽개 바위가 있는 아래쪽에 '계백 장군 무예촌'이라는 체험 학습장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아무래도 계백 장군의 정기가 팽개 바위에 서려 있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믿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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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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