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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저녁 홍대 앞 놀이터에서 열린 전태일 거리만들기 특별공연에서 인디밴드 로드(Road)가 관중들과 함께 열창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추적추적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벌어진 ‘바보, 전태일과 함께 노래합시다!’ 특별 공연. 인디 음악인들이 뭉친 이날 공연의 메인무대는 펑크밴드 노브레인이 맡았다. 노브레인의 보컬이자 리더 이성우씨는 300여명의 청중들을 이렇게 소리쳤다.

"하늘에 계신 전태일님을 위한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하늘까지 함성이 들리도록 외칩시다!"

이어 뮤지션과 관객들은 하나가 되어 하늘로 손을 쭉 뻗은 채 껑충겅충 음악에 몸을 맡겼다.

전태일 거리만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날 공연은 9일 저녁 7시 30분부터 홍대 앞 놀이터에서 진행됐다. 야외에서 진행된 이날 공연의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비. 하루 종일 빗줄기는 내리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행사를 준비한 클럽문화협회 한 관계자는 빗방울을 보며 "비만 내리면 공연은 언제나 성공이었어요"라는 말로 공연의 성공을 예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홍대 앞을 지나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놀이터로 모였고 '전태일 열사와 한바탕 난장'이 벌어졌다.

홍대 앞 전태일과 함께 난장 벌어지다

공연의 첫 무대는 실력파 힙합 듀오 '얼번 스트리트'의 몫. 어느 공연에나 첫 주자들은 '썰렁함'을 털어야 하는 사명을 가진다. 이들은 "비가 오는 것을 보니 전태일 열사가 감동한 것 같다"며 그들만의 랩을 읊조렸다. 비웨어(Beware),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 올드 스쿨 드라이브(Old school drive) 등 신나는 음악이 차례로 흘러나오자 가만히 서 있던 청중들은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고 힙합 특유의 흐느적거림을 지어보였다.

이들에 이어 나온 힙합 트리오 디에스 커넥션(DS Connexion)은 나오자마자 관객들에게 무대 앞으로 나올 것을 요청했다. 이날 공연엔 무대를 위한 단이 올라가지 않았다. 때문에 뮤지션과 관객은 같은 눈높이에서 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뮤지션인지 청중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디에스 타임(DS time), 그여자가 사는 법, 에프릭타 파토라 표차 등 이들의 노래로 홍대 앞 놀이터는 댄스파티의 현장으로 돌변했다.

여기까지는 힙합의 무대. 다음은 록음악의 차례였다. 우선 하이브리드(잡종)-모던록 밴드 로드(Road)가 힘차게 '샤우팅'을 시작했다. 이들은 디스토피아(Distopia), 웨이크 업(Wake Up) 등 올해 발매된 1집의 곡들을 선보였다. 특히 가수 싸이의 '챔피언', 서태지의 '난 알아요' 등을 이들만의 스타일로 바꿔 불를 땐 수백명의 관객이 일심동체가 돼 합창을 했다.

'로드'의 무대가 끝난 뒤, 이날의 하이라이트 '노브레인'의 공연이 마침내 시작됐다.

"오늘 일단 즐겁게 놀아보자구요. 하지만 전태일 거리만들기 캠페인을 위한 공연이니 만큼 그 의미만은 잊지 맙시다."

▲ 펑크밴드 노브레인(No-brain)이 9일 저녁 홍대 앞 놀이터에서 열린 전태일 거리만들기 특별공연에서 흥겨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보컬 이성우씨는 이날 공연의 의미를 청중들에게 각인시킨 뒤 대한민국 펑크의 자존심이 무엇인지를 노래와 몸짓으로 증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홍대 '노빠'(?)들은 점핑, 슬램(몸끼리 부딪히는 록매니아들의 몸짓) 등으로 음악에 취해 갔다. 노브레인은 스탠드 업 마이 프렌드, 빨강 머리, 바다 사나이 등 이들의 대표곡을 연이어 불렀다. 열광하는 팬들로 인해 한 때 밴드가 연주를 할 공간이 없어질 정도였다. 연주자나 팬들 모두 무아지경에 빠져 버린 것이다.

"내리는 비, 전태일 열사 하늘에서 감동한 것"

이렇게 이어진 공연은 약 2시간 가량 계속됐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흠뻑 젖은 땀을 닦으며 공연의 감동을 간직한 채 놀이터를 빠져나갔다. 고등학생 딸과 함께 '놀이터'를 찾은 김경애(45·여)씨는 "아마 전태일님이 이 시대에 살았다면 이 자리에서 같은 또래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홍대만의 언어로 의미를 잘 살린 것 같다"고 공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어린 두 아들 준호, 동호와 공연장을 찾아 동판만들기 행사에까지 참여한 안효심(35·여)씨는 "어린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소회했다. 그는 동판에 쓰일 글구로 "사랑하는 준호, 동호야!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라고 적었다.

"의미 있는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기 위해 찾았다"는 모 국회의원 보좌관은 "사실 '노브레인'을 보러 온 사람도 있겠지만 노브레인이 전태일을 소개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열사를 알 수 있다면 더 좋은 것 아니겠나"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그의 말처럼 공연을 찾은 대다수는 어떤 의미의 공연인지도 모른 채 음악에 몸을 맡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연 뒤 많은 사람들이 놀이터 한켠에 마련된 '전태일 거리만들기' 모금운동에 작은 금액이나마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충남 예산에서 이번 공연을 보러 온 김혜영씨는 "사실 전태일님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멀리서 온 것이 후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 전태일 의미의 폭 넓힐 수 있었다”

황만호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공연 뒤 "사실 젊은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했지만 공연을 본 뒤 많이 감격했다"며 "거리 조성에 정성을 모아준 분들께 감사한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전태일 거리 조성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렇게 시민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을 통해 전태일에 대한 의미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만족해했다.

한편 이날 공연 뒤 홍대 앞 8개의 클럽에서는 엠씨 스타이퍼, 닥터 레게 등 30여개 음악인들이 '전태일 거리만들기 사운드 데이' 공연을 벌였다. 18회 사운드데이를 '전태일 열사'를 위한 행사로 마련한 클럽문화협회 최정한 대표는 "음악을 통해 '전태일 거리만들기'를 자연스럽게 담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9일 저녁 홍대 앞 놀이터에서 열린 전태일 거리만들기 특별공연에서 힙합 트리오 디에스 커넥션(DS Connexion)이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전태일, 난 네게 반했어!"
[인터뷰] 전태일 공연 참가한 인디 음악인들

이날 '전태일 거리만들기' 특별공연에 감동한 이들은 주최측과 관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멋진 무대를 선보였던 음악인들도 "행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노브레인의 이성우씨는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도 그렇고 친구들(관객)도 그렇고 전태일님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에 너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타리스트 정민준씨는 "사실 잘 몰랐던 전태일 열사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난 (전태일)네게 반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자신들의 노래제목을 응용해 말했다. 이에 대해 성우씨는 "타인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 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얼번 스트리트는 "어떤 분들은 홍대에서 전태일 공연을 한다는 것에 '장난하냐'며 비아냥 거린다"며 "이런 행사에 나와 함께 의미를 기리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로드의 리더 하민은 "비가 내려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며 "전태일 거리가 만들어지면 그곳에서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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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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