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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유감

▲ 여름 내내 자랐던 풀로 봉두난발이었던 묘지가 벌초를 하자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부모님 산소).
ⓒ 박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고 모든 먹을거리가 풍성한 우리 겨레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추석이 다가올 이 즈음이면 전국의 산에서는 벌초하는 예초기 소리가 요란하다. 바야흐로 벌초의 계절이다.

나도 지난 일요일(4일) 아우들과 함께 할아버지 내외,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고 왔다.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가랑비가 오락가락했지만 굵은 비는 내리지 않아서 무사히 끝마쳤다.

벌초를 하러 산소에 이르자 지난 봄부터 자란 풀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마구 자라서 마치 봉두난발(머리털이 쑥대강이 같이 헙수룩하게 마구 흐트러짐)이 되었는데, 우리 형제 내외들이 예초기로 밀어주고 낫으로 가다듬은 뒤 갈고리로 쓸어내자 아주 깨끔하게 단장이 되었다.

아마도 조상 영혼이 계신다면 무척 시원하셨으리라. 제삿밥을 봉양 받으시면서, 산소 벌초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자식 키운 보람이 있다고 흡족해 하실 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내 집안만 생각하는 매우 이기적인 발상이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서 너도 나도 산수 좋고 볕 좋은 산에다가 묘지를 만들고 해마다 법석을 떤다면 엄청난 국토의 훼손이요, 인력과 시간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묘지는 약 2천만여 기로 3억 평에 이르고 해마다 20만여 기가 늘어난다고 한다. 엄청난 국토가 묘지화되고 있다. 또 벌초하다가 다치거나 벌 같은 벌레에 물리고 교통사고도 적잖고 해마다 반복되는 교통 체증도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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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곡묵집

내 집은 다행히 문중 산에 조상 산소를 모셔두고 있지만 이곳도 이제는 포화 상태라서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대안으로 현재 흩어져 있는 조상 산소를 한 곳에 모아 묘지보다 작은 아담하고 조촐한 가족 납골당으로 만들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벌초 길에 아우들과 상의한 결과 내 의견에 좇기에, 적당한 때에 한 곳으로 모으기로 했다. 앞으로는 죽는 가족들도 이곳에다 쓰면 더 이상의 국토 훼손은 없을 것이다.

▲ 다곡묵집의 묵과 보리밥 공기와 물김치로 2인분 상이다.
ⓒ 박도
곧 가족납골당은 석관으로 만들어 시신은 모두 화장한 뒤 뼛가루는 조그마한 항아리(분골함)에 담은 뒤 모셔 두다가 일정한 기간(두 대 정도)이 지나면 그마저도 산골(散骨)하여 지상에서 그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게 한다. 이런 식으로 지금 우리 나라의 묘지 문화를 개혁하면 현재 묘지 터의 1/50이면 충분하리라.

그게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게 아닐까? 사실 자동차를 타고 공원묘지를 지나면 올망졸망한 무덤이 얼마나 볼썽사나운가.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 나라와 같은 묘지 문화는 없는 듯하다.

각자 갈 길이 멀기에 서둘러 벌초를 마치고 성묘를 한 다음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하여 해마다 들렀던 다곡묵집에 갔다. 일년에 한번씩 들려도 주인(권대순, 57)은 나그네를 알아보고는 반겨 맞았다. 그제나 이제나 묵 한 그릇과 보리밥 한 공기 값이 3천원으로 그대로였다.

"이래 많이 주고도 남습니까?"
"쪼매 남기고 마이 팔면 더 낫지 예. 찾아오는 손님이 모두 단골이라서 값을 못 올리겠대, 예. 십년 전 이 집 문 열 때에 받았던 그 값 그대로라 예. 어제는 천 그릇이나 팔았다 아입니까."

묵 한 사발에 보리밥 한 공기를 고추장에 비벼서 물김치에 꿀꺽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 맛이 일품으로 어린 시절에 먹던 그 맛이었다.

▲ 다곡묵집 주인 권대순씨
ⓒ 박도
"아지매, 이 집 묵과 보리밥은 와 이리 맛이 좋습니까?"
"마이 시장 하셨든가 보지 예. 우리 집 묵과 보리밥은 옛 맛 그대로라 예."

"내년 이맘 때 또 오겠습니다."
"그라이소. 먼 길 살펴 갑시대이."

다섯 식구가 묵과 보리밥을 배불리 먹고서 일만오천 원을 내고서 나왔다. 아우는 그 집 묵맛이 두고두고 생각난다면 몇 인분을 포장해 갔다.

돌아오는 길, 새로 개통된 중부내륙고속도로도 엄청 막혀서 2시간 거리를 6시간 만에야 도착하였다. 무엇보다 조상 산소에 지난 여름 내내 마구 자란 풀을 깔끔하게 베어서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다곡묵집: 경북 구미시 선산읍과 도개면 일선교 중간지점인 생곡리에 있음(054-474-0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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