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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쉽고도 어려운 것이 알몸이고 성기다. 아침저녁으로 옷 갈아입으면서 보고, 샤워하면서도 보고, 화장실에서 고뇌하면서도 본다. 물론 대부분 자신의 것을 보게 되지만, 재주 좋은 이는 남의 것도 자주 보고 다닌다. 남의 것 보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TV나 잡지 속의 잘 생긴 몸뚱이들을 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공개적으로 전시되기를 갈망하는 알몸들에게 두 가지 규제사항을 전제하고 있다. 첫 번째, 무조건 예쁠 것. 두 번째, 계획적으로 통제될 것. 대법관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전해지는 '시대의 건전한 통념'이라는 백과사전에 의하면, 이 두 가지 요소 중 한 가지라도 충족하지 못한 몸뚱이를 이른바 '음란'으로 규정하게 된다.

우리는 최근 '음란'의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와, 이들이 단죄당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했다. 하나는 미술교사 김인규씨의 누드작품에 대한 대법원의 음란물 판정, 또 하나는 펑크 그룹 카우치의 성기노출사건이다. 두 가지 사례가 모두 공적인 외설로 분류되어 사회 권력의 규제와 지탄을 받았다.

김인규씨의 사례는 첫 번째 규칙, '무조건 예쁠 것'에 위배되는 우를 범했다. 예쁜 몸뚱이들이 미디어를 장식하며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세태를 지적하고 싶었던 김인규씨는 '날 것 그대로의' 알몸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전시했고, 이에 사법 권력은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당신은 외설작가"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렇게 심오한 판결에 단초를 제공한 '사회 평균인'이 누구인지는 결코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대법관들이 숨겨놓은 '사회 평균인'의 정체는 김인규씨의 알몸작품에 상처받은, "나 이제 더러워졌어"라며 두 뺨 가득 홍조를 띈 '사법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카우치의 사례는 좀 더 복잡하다. 이들은 TV 생방송 중에 성기를 노출하는 방식을 통해 '계획적으로 통제될 것'이라는 두 번째 항목을 어겼는데, 이는 대법관들의 비위를 상하게 했던 김인규씨의 경우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카우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알몸테러, 혹은 성희롱이라는 죄목으로 암묵적 기소를 당했지만, 사실 희롱을 당한 쪽은 국민이 아닌 방송 권력이었다. 이날 자신의 통제력을 완벽하게 상실해버린 방송 권력은 자신의 처지를 통탄하면서 유난스레 큰 몸동작으로 시청자들 앞에 엎드려 사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민들은 대단한 모욕이라도 당한 양 크게 분개했지만, 실상 카우치의 이날 행동은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했다. 카우치의 행동은 '경솔함'으로 지적될 수 있을망정, 전체 인디음악 문화를 말아먹은 반동분자로 매도당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이는 결국 치명상을 입은 방송 권력이 치밀하게 계획한 '사사로운 단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복수극이 진행 중이다. 그 주인공은 앞서 거론된 사법 권력과 방송 권력, 이 두 가지 모두를 매수하는 데 성공한 삼성의 자본 권력이다. 자본 권력에 맞섰다가 결국 복수의 칼날 앞에 내몰린 대상은 양심과 자유, 진실이라는 이름의 '알몸'이다. 자본 권력은 본말전도의 수사법을 동원하여 자신에 대한 모든 혐의를 부정하고, 역으로 '알몸'을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한두 달 사이 급박하게 이어진 알몸들의 '시위'(카우치의 경우는 그것이 전혀 정치적인 고려와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정치적이다)와 이에 대응한 사법, 방송, 자본 권력의 분노는 진정 음란하고 부끄러운 것이 다름 아닌 권력의 치졸한 복수극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이제 권력 앞에 무모히 맞선 저 불쌍한 알몸들을 향해 아낌없는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줄 때이다.

연대를 위해 거창한 도구는 필요치 않다. 다만 사회 권력이 알몸(들)에게 가하는 복수의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희석되어 마녀사냥에 동참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물론 당신에게는 다시 한 번 침묵하고 외면할 기회 또한 주어진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계속되는 당신의 침묵이 언젠가 침묵할 자유마저 박탈해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아트 인 컬쳐> 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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