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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인 윤경로 한성대 총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법적 처벌을 하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역사적·도덕적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인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윤경로(58·한성대 총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위원장은 2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친일인명사전 1차명단 발표 취지를 이같이 설명했다. 윤 위원장은 법적 처벌을 전제로 했던 반민특위와 이번 친일인명사전이 다른 점을 강조했다.

과거를 반성하는데 당사자 참회가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게 안되면 그들에게 반성을 요구함으로써 민족화해를 위한 최소한의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반드시 기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역사를 잊어버리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제통치 기간 중 일정 직위 이상에 오른 사람은 직위 자체가 친일행위라고 판단, 대부분 친일파 명단에 포함됐다. 윤 위원장은 "'직위범'과 '행위범' 기준으로 친일파를 선정했는데, 직위범의 경우 군수 이상 관리, 경부 이상 경찰, 총독부 소속 검열관, 위관급 이상 장교, 민간 촉탁도 모두 포함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면서기 등 '생계형 친일'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관료로서 상당한 직위까지 간 사람을 주요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초 1만5000여명까지 될 것으로 봤던 명단이 3000명까지 줄어들었다. 윤 위원장은 "이래서 빼고 저래서 빼고, 뺄 사람 다 뺐다는 비판이 나올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명단에는 고등문관뿐 아니라 조선총독부 촉탁 등 민간인도 포함돼 정치권 등에서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제통치 기간 중 위관급 장교로 복무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된 반면, 신기남·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의 부친이 빠진 것도 논쟁거리가 될 듯하다. 이들 의원 부친은 올해 초 각각 일본군 오장과 특무대에 근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윤 위원장은 이에 대해 "정치적으로나 정략적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정치판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료에 근거, 정직하고 투명하게 선정작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윤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은 선생을 잘 하다가 그만두고 황군에 들어간 것 자체가 친일행위"라면서 "신기남·김희선 의원의 부친의 경우 자료가 아직 불분명해 더 살펴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윤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박정희는 자발적·적극적 친일, 신기남·김희선 부친은 아직 자료 불분명"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친일파 선정기준이 논란이 되는데.
"친일파는 크게 두 가지 기준에서 선정됐다. 일제시대 맡은 직책에 따른 '직위범'과 부일행위에 따른 '행위범'이 모두 포함됐다. 직위범의 경우 군수 이상 관리, 경부 이상 경찰, 총독부 소속 검열관, 민간인 촉탁, 위관급 이상 장교가 포함됐다. 일제통치 기간 중 일정 직위 이상에 오른 사람은 직위 자체가 친일행위라고 본 것이다. 민간인 촉탁 중에서는 촉탁 기간이 상당히 긴 사람들이 포함됐다."

-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기 위해 고려한 대상은 얼마 정도인가.
"민족문제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만 50만명이다. 그중 이번에 1차로 발표될 명단은 약 3000∼3100명 수준이 될 것이다. 애초 예상보다 900∼1000명 정도 줄었다."

- 위관급 장교 이상이면 박정희 전 대통령도 포함된다. 이를 정치적 의도가 포함된 의도적 선정기준이 아니냐는 반론도 나오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였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벌써 15년이 됐다. 가장 최근에 박 전 대통령의 친일문제가 제기된 것도 2001년 11월이다. 이번 친일인명사전 명단선정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자발적·적극적으로 친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사범학교를 나와 선생을 잘 하다가 황군에 자진 입대한 것 자체가 친일행위이다."

- 의혹을 받고 있는 신기남, 김희선 의원의 부친은 왜 빠졌나.
"우선 명확한 자료가 없다. 이번 1차 명단 발표 때 일본군 오장이나 헌병 출신들은 넣기로 했지만, 두 사람 부친에 대해서는 자료가 불분명하다. 이를 정치적이나 정략적인 것으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죽이기'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정직하고 투명하게 원칙을 지키면서 명단을 선정했다."

- 친일문제를 거론하면, 먹고살기 위해 혹은 강압에 못 이겨 친일을 했다는 이른바 '비자발적 친일행위'도 반론으로 나오는데.
"친일 부역행위를 변명하는 이론에는 공범론, 인재론, 상황론 등이 있다. 이를테면 '이렇게 다 집어넣으면 그 당시 살았던 모든 사람이 친일파 공범 아니냐'는 얘기다.

친일에도 '적극적 친일', '소극적 친일'이 있을 수 있다. 이번에는 관료로서 상당한 직위까지 간 사람을 주요하게 봤다. 면서기 등 '생계형 친일'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당초 1만5000여명까지 될 것으로 봤던 명단이 3000명까지 줄었다. 명단을 많이 선정한게 아니다. 오히려 외부에서 이래서 빼고 저래서 빼고, 뺄 사람 다 뺐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생계형 친일 제외해 1만5000여명에서 3000명까지 줄었다"

- 친일인사 명단에는 처음엔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모두 친일파로 분류할 수 있나.
"친일인명사전에는 대상자의 주요 경력이 모두 들어간다. 예를 들어 김활란, 백낙준 같은 사람은 공과가 있는 사람들이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가 그들의 공을 모두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공과가 있으니까 잘한 것과 함께 잘못한 것도 기록해 놓자는 뜻이다. 또 친일인명사전 기준을 마련할 때 능동성과 반복성, 적극성을 함께 고려했다. 얼마나 능동적으로 반복해서 친일을 했느냐는 점을 산술적 기준과 내용으로 평가했다."

- 문화예술계, 특히 미술이나 연극·영화·음악과 관련된 친일인사는 선정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은데.
"현제명이나 홍난파 같은 사람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공연예술은 친일시(詩)나 글보다 훨씬 더 엄한 기준을 적용했다. 전국에서 공연된 공연예술은 글보다 파급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 장지연, 김활란, 김성수, 유치환, 이병도, 이항녕 등도 논란이 일 듯하다.
"일부 인사들 때문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신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고, 어떤 사람은 해방 뒤에 스스로 반성하는 고백서를 쓴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명단에서 뺄 수는 없었다. 다만, 문인으로서 해방 뒤 스스로 붓을 꺾고 낙향한 사람들은 인명사전에서 제외했다."

- 언론계 인사들은 포함 안 됐나.
"일부 언론사에서 부장이나 국장 이상으로 일한 사람들은 '직위범'으로 포함시켰다. 언론사 기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1938년 이후 모든 언론사가 친일로 돌아섰기 때문에 뺄 수 없었다."

- 고종이나 순종, 일본 육군 중장 직위를 받은 조선왕가 사람들도 포함됐나.
"조선왕족들 같은 경우 자의적인 친일은 전혀 없었다고 판단했다. 왕좌를 뺏기는 상황인데 자발적·적극적 친일파로 볼 수 있나. 내용적으로는 친일이 아니라고 봤다."

"고소·고발 받을 각오가 돼 있다"

-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 인사들의 후손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걸 가능성이 큰데.
"고소·고발 받을 각오가 돼 있다. 민변 등과 함께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한 상태다. 또 우리가 가진 자료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이 큰 사람들은 가능한 뺏다. 최대한 줄여서 신중하게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봤을 때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 한나라당 등 보수적 기조의 야당과 단체에서 반발이 있을 것 같다.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친일인명사전은 우리 역사 발전을 위해 민족사적 아픔을 치유하자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특정 언론이나 정치권, 보수단체가 은폐한다고 해서 가려지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사를 털고 가야 한다. 또 <오마이뉴스>가 네티즌 모금 운동으로 기금을 모은 것처럼 국민들의 성원이 크다. 물론 일부 국민들은 왜 자꾸 과거사를 들추느냐고 반박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역사의 준엄함과 역사적 심판에 대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 왜 하필 참여정부 들어서 친일문제를 거론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친일파 청산 문제는 60년 전 해방 정국에서 좌절된 경험이 있다. 또 60년대부터 임종국 선생 같은 분과 학계에서도 줄기차게 연구를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시민사회에서 친일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친일파 청산과 관련된 법안도 2001년 이미 만들어졌다. 친일파 청산 문제는 현 정권의 과거사청산과 별개로 진행돼 왔다."

- 최근 <월간조선>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위 자문위원들이 본인도 모르게 위원으로 올라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월간조선> 기사야말로 왜곡된 기사의 전형이다. 신용하 교수나 조동걸 교수 등 모두 다 위촉장을 주고받았다. 나중에 그분들에게도 물어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선 안된다. 일단 1차 명단 발표 뒤 명예훼손소송 등 반드시 짚고 넘어갈 예정이다."

- 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을 기념일로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찬성한다. 경술국치일은 민족으로 봐서는 치욕스러운 날이다. 3·1절 못지 않은 기념일이 될 수 있다. 경술국치일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 친일인명사전은 정확히 언제쯤 발간되나.
"오늘(29일) 1차 명단이 발표되지만 2007년 12월이 돼야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에 발표되는 명단은 국내, 그것도 총독부나 전국적인 조직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중심이다. 내년쯤이면 해외, 지방에서 활동한 친일파 명단도 정리된다. 그 뒤 좀 더 다듬어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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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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