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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이름 하나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궁금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가 옛날처럼 아직도 경찰에 남아 있을지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남아 있다면 이제 꽤 높은 지위에 올라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까지 미쳤다.

‘그렇지만 그의 과거 경력이나 일하는 스타일로 봤을 때 바뀐 요즘 세상에서 고위직으로 승진하기는 힘들 것 같아’, ‘까짓 거 직접 찾아보면 되지 뭐!’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쳤다. 그의 이름이 떴다. 이럴 수가! 그는 경찰청 핵심 요직의 고위급 인사가 되어 있었다.

아니! 혹시 동명이인인지도 몰라! 다시 이리 저리 검색해서 그의 프로필들을 훑어보았다. 출신지역, 출신학교, 연배…. 분명 그가 맞다. 아!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니까 꼭 20년 전 1985년 가을이었다. 군에서 갓 제대하고 4학년에 복학했었다. 학생운동에 기웃거리고 학내 시위에도 가담했다. 학내시위 가담 건으로 집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갔다. 보통 주동자가 아닌 학내 시위 단순 가담 건으로는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지 않는 한 집 같은데서 연행하는 일은 잘 없었다. 아마 내가 전력도 있고 학내에서는 제일 연장자 축에 속하니까 특별히 맛을 보여 주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정보과에 끌려갔다. 그는 당시 정보과 책임자급 간부였다. 그는 내 태도가 공손치 못하다며 다짜고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부하 직원들이 다시 달려들어 나를 때리고 바닥에 팽개친 채 밟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정없이 맞았다.

보통 당시에 폭력 행위는 하급직 경찰 직원들이 조사를 하면서 자백을 받거나 새로운 정보를 확보를 하기 위해서 주로 행했다. 그러나 그는 자백이나 정보취득과는 관련 없이, 그리고 부하직원들에 앞서서 솔선수범(?)하여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이 OO, 도저히 안되겠네’ 라고 하며 뭔가 암시하는 듯한 태도로 욕지거리를 퍼붓고는 나갔다.

그러자 곧 바로 물고문이 시작되었다. 책상위에 나를 올려놓고 몇 명이 내 팔을 붙잡고 또 몇 명은 내 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입에 수건을 물렸다. 숨이 콱 막혀왔다. 콧구멍으로 물을 들이 부었다. 고통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얼마간 그렇게 한 후 풀어줬다. 오한인지 뭔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단순 시위 가담에 불과 구류 7일 건으로 물고문까지 당하는 일도 흔치 않았을 것이다. 다음 날 나의 자술서를 부하 직원들로부터 받은 그는 ‘이걸 자술서라고 받아 왔어’라고 하며 바닥에 팽개쳐 버렸다. 그가 경찰 간부후보생 출신의 젊은 간부였던 만큼 아마 나이로 치자면 부하직원들보다 10살 이상 젊었을 게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아버지께서 불려가 그를 만났다. 나는 그가 아버지에 대해서도 대단히 무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도 태도를 확 바꾸어 다중인격자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 참 점잖터라, 특히 너는 후배라서 잘 대해줬다고 하더구나’ 라고 하셨다. 참으로 가증스러웠다.
그렇게 두들겨 패고 고문까지 받게 하고서는 잘 대해줬다니 말이다.

나 말고도 후배들이 그에게 끌려가서 많이 맞은 모양이었다. 특히나 여자 후배들도 머리채를 쥐어뜯기고 볼기짝을 맞았다고 했다. 간부들 중에서 유독 그가 악명을 떨쳤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 간부들이 고문과 관련하여 줄줄이 쇠고랑을 차자 또 그에 대한 생각이 났다. 그가 여전히 경찰에 몸담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한 언론 매체를 통해 그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90년대 초 중반으로 기억된다. 민주화 바람으로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을 때다.

그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많은 경찰관들이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 언론은 전했다. 당시 경찰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 하는 것을 경찰 스스로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일게다. 그런데 이런 연구 조사 결과가 하필이면 그의 이름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이 왜 그렇게 역겹게만 느껴졌을까?

이미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떤 프랑스 영화 생각이 났다.

A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2차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인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는 프랑스인들을 나치에 밀고하는 등 나치에 협조하여 호의호식하는 자였다. 그런데 A의 아내는 A 몰래 레지스탕스를 후원하고 있었다. 결국 A의 아내는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된다.

게슈타포는 A를 의심하며 A에게 그의 아내를 끌고 온다. 그리고 A에게 총을 쥐어 주며 자신이 결백함을 증명해 보라고 한다. A는 아내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러자 게슈타포는 ‘레지스탕스라면 그 정도는 돼야지’라고 하며 그의 총을 빼앗고 그를 감옥에 처넣는다. 그 후 독일의 항복에 따라 프랑스가 해방되고 A는 풀려난다. A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것으로 프랑스의 고위직에 오른다. 영화는 거기에서 끝이 난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지난 8·15 기념 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없애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 그가 생각이 났다. 그의 행위는 딱 국가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이다. 사실 그는 직접 나를 고문 하지는 않았다. 또 그가 고문을 지시하는 소리도 바로 듣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오히려 당시 나를 고문했던 하급 경찰들에 대해서는 세월이 지나면서 시대의 아픔이려니 하고 이해하게 되고 얼굴도 이름도 잊혀지게 되었는데도 유독 그에 대한 기억은 고문 경관으로 또렷이 남는다.

어쩌면 지금 그는 경찰 개혁이나 경찰 민주화를 주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로 묻어두고 그가 훌륭한 경찰 지도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야 되는 걸까? 아니면 비록 과거의 일이지만 들춰내어 법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사회적 책임을 물어 옳지 못한 행위는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고야 만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이를 통해 그의 후배 경찰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줘야 될까?

지금까지 그의 인생이 승승장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의 과거는 묻혀진 채 그는 경찰 내에서 민주주의의 화신이 될지도 알 수 없다. 잊혀져 가는 프랑스 영화의 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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