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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 ’05 여름 토론회 모습
ⓒ 김영조
이제 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하지만 아직 더운 열기는 가시지 않는다. 그런 더위 속에서도 한글운동가들의 한글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지난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에 걸쳐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 '05 여름 토론회가 여주 일성남한강콘도에서 넷피아 후원으로 열렸다.

이 모임은 한글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조직된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가 한글운동이 나아갈 방향과 한글 문화산업의 발전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늦은 2시에 서울을 출발한 이들은 모임장소에 가기 전 세종큰임금을 모신 영릉에 들러 꽃을 바치는 일로 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한글을 활용한 도자기 작품을 빚고 있는 진성근씨의 무토공방에 들러 한글 문화산업의 한 산실을 확인한다.

▲ 영릉에 꽃을 바치고 참배하고 있는 참석자들
ⓒ 김영조

▲ 영릉의 측우기 앞에서 세종큰임금의 업적을 이야기하는 일행들
ⓒ 김영조
장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토론회를 시작했다.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 최기호 회장은 이 토론회가 앞으로 한글운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모색하고, 한글 문화상품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 찾기와 한글운동가들이 똘똘 뭉쳐 험난한 앞길을 같이 헤쳐 나가는 슬기로움을 만드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개회사를 했다.

먼저 김두루한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학술이사가 “‘한말글 정책’과 ‘한글운동이 나아갈 길”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그는 먼저 ‘국어’로 표현하는 우리글을 ‘한말글’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토박이말을 살리고 가꾸는 한말글 정책을 펴기를 주장했다. 동시에 새로운 말본(문법) 교과서를 만들자고 말도 덧붙인다.

이어서 한글사랑운동본부 차재경 회장은 한글사랑운동본부가 생활에서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한글 문화상품을 저극 개발하도록 이끌고 도와 한글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다가오게 함은 물론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세계에 알려나가는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일을 위해 올 10월에는 '한글 문화상품,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 계획이라 말한다.

▲ 토론회에서 주제발표하는 사람들 / (왼쪽부터 김두루한, 차재경, 진용옥)
ⓒ 김영조
또 경희대학교 진용옥 교수는 “유네스코에서 중간말(middle language)로 한글을 쓰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영어가 아닌 한글이 세계어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국어정보학회는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숫자문 입력자판경진(일명 엄지자판)대회’에 후원기관으로서 참여한다. 이에 적극 협력해주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주제발표 뒤 한글 문화산업의 한 예로 (주)EC글로벌의 김영석 솔루션사업부 이사가 한글 맞춤법, 문법 교정 소프트웨어인 ‘바른한글’ 설명이 있었다. 그동안 글의 교정기능은 맞춤법과 띄어쓰기 따위에 한정되어 있지만 ‘바른한글’은 여기에 더해 외래어나 일본말찌꺼기까지 걸러내는 기능이 있었다. 또 그냥 고치는 것이 아니라 도움말을 통해 그 까닭을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돋보인다.

▲ 한글 문화산업의 예, 바른한글을 설명하는 (주)EC글로벌의 김영석 이사
ⓒ 김영조
이후 저녁식사를 한 뒤 2 시간여의 자유토론에 들어갔다.

한글문화연대 김영명 대표는 국어전문가의 착각을 꾸짖는다. 그는 “소위 국어전문가들은 ‘언어정책은 전문 학자들의 몫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하지만 언어정책의 수립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 들어가야 잘못됨이나 빠짐이 없이 올바르게 세워질 수 있다”고 강조하며, 덧붙여 한글날에 주는 상은 진짜 노력한 사람은 외면되고, 엉뚱한 사람들이 받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국어원 최용기 학예연구관은 “먼저 토론회의 주제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다. 보통 한글, 한자말, 외래말의 세 구조만 생각하는데 그보다 예삿소리, 된소리, 거센소리의 구조가 먼저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한글’이 최고의 글자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책제안은 나라가 하지만 그 활동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이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이어서 부경대학교 김영환 교수는 “우리 토론회는 제 식구끼리라 해서 ‘화기애애’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 ‘비판없는 토론은 한 걸음도 못 나간다’는 철학의 원리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덧붙이고 싶은 얘기는 학회나 국어연구원이 몇몇 연구원의 학벌 중심으로 꾸려진다는 의심을 사서는 안 된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한글운동에 등을 보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토론자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명, 최용기, 김영환, 이대로, 남영신, 김기종)
ⓒ 김영조
현대 한글운동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이대로 사무총장은 “최근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국어기본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국어기본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전 한글전용법이 무시되었던 것을 거울삼아서 이 법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또 안 지키는 지방자치단체 등이 있다면 우리가 나서서 혼내주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국어문화운동본부 남영신 회장은 “국어기본법의 추진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단체의 몫이다. 어떻게 우리가 원하는 만큼으로 올려낼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민간기관 중 누가 어떻게 국어기본법을 끌어갈 것인지가 좀 더 깊이있게 논의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이봉원 회장은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가 의미있는 일을 해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한계가 있어서. 기존 틀을 벗어나서 좀 더 생산적인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틀은 너무 비좁지 않은가? 우선 이름부터 바꾸어야 확대 재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토론을 마무리하는 최기호 회장
ⓒ 김영조
이 밖에도 한글세계화운동본부 서정수 회장, 짚신문학회 오동춘 회장, 서울시립대 이병혁 교수, 대진대학교 정달영 교수, 일본 이와떼대학교 강봉식 교수, 워싱턴DC 통합한인학교 유경숙 선생,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서일대학교 백승정 교수, (주)넷피아의 오세진 대외협력팀장,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 신승일 부회장 등의 발언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 최기호 회장이 마무리 발언을 한다.

“일부 사람들은 한글운동가들을 국수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예전 ‘백양양말’이 지금은 ‘BYC'로 바뀌고, 대통령의 이름도 'YS', 'DJ'다. 양말 수준이나 대통령 수준이나 같아져 버렸다. 이렇게 우리는 본래의 이름을 잃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걸 되찾자는 것이지 절대 국수주의가 아니다.

국어기본법의 제정과 한국방송(KBS)의 ‘국어능력시험’ 제도의 시행으로 2000년대의 한글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더욱 도약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국어기본법에 의해 시행되는 국어상담소는 정말 중요하다. 이를 어떤 기관에서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고민해야 한다.”

토론회가 끝나고도 많은 참석자들의 토론은 끊일 줄 몰랐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힘찬 한글운동을 하자고 다짐하는 숙연한 시간도 갖는다. 새벽까지 열을 내어 갑론을박하는 모습은 이들의 한글사랑이 끝이 없음을 증명하고 남음이 있었다.

다음날도 참석자들은 1시간 여 동안 못다한 자유토론을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어쩌면 끝이 없는 외세말과의 싸움에 한이 맺혔는지도 모른다. 때론 흥분하고, 때론 숙연해지고,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 명성황후 생가를 들러보고 있는 참석자들
ⓒ 김영조
서울로 돌아오는 도중 잠시 명성황후 생가를 방문한다. 여기에서 이병혁 교수는 “한 나라의 왕비인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의 칼에 무참히 쓰러진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기면서 처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런 우울한, 울부짖고 싶은 심정으로 당분간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심정을 고백한다”는 말을 하여 모두 한동안 침묵의 순간을 갖는다.

최용기 학예연구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것으로 나오는데 ‘명성황후가 조난(遭難)한 곳’이란 설명은 잘못되었다. ‘조난’이란 한자말은 ‘항해나 등산 따위를 하는 도중에 재난을 만남’이란 뜻인데 어떻게 조난이란 말을 쓸 수 있는가? 이를 빨리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중요한 지적을 한다.

참석자들은 한때 현 상황에 대한 울분을 토하기도 했고, 또 그를 바로잡기 위한 각오를 다지기도 하면서 헤어질 때까지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돈이 생기는 것도,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더운 여름날 더위도 잊으면서 열기를 뿜어냈던 그들은 어쩌면 이 시대에 진정한 애국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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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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