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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여성들이 더 도시 지향적이다

▲ 안흥의 내 집
ⓒ 박도
지난해 3월 20일 오랫동안 정든 학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안흥으로 내려왔다. 이곳에 온 뒤 새로운 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산골의 자연과 사람들 이야기, 두고 온 혈육과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이들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등을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에 담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싣고 있다.

그새 130회로 내가 연재했던 다른 기사에 견주어 생명력이 가장 길다. 그것은 나도 이 글에 정성을 기울려 쓰고 있지만 무엇보다 독자들의 호응이 많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동포들도 많이 읽어주는데 아마도 이는 고국산천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에 향수 때문인 듯하다.

전화로 메일로, 댓글로 안부를 겸해 격려를 보내주기도 하고 어떤 분은 산골 내 집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그분들의 질문 가운데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은 “어떻게 부인을 데리고 산골로 내려왔는지 그 비결을 알려 달라”고 했다. 사실은 내자가 먼저 귀농준비를 했다고 이야기하면 뜻밖이라고 놀랐다. 당신(남자)들은 시골로 내려가려고 해도 부인들이 어림도 없다고 한다.

지방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사람 가운데도 두 집 살림을 하는 이가 많다는데, 심지어 대학 총장까지도 사모님이 서울살림을 고수해서 총장공관에서 홀아비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체로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도시 지향적이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팽개치고 단봇짐을 싸고 서울로 간 사람도 처녀들이었다. 처녀가 없는 시골에서 장가갈 수 없는 총각들이 짝을 찾아 도시로 뒤따랐다. 이런 거듭된 현상으로 시골에는 젊은이가 줄어들었고 특히 젊은 여성은 매우 귀하다.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더니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더 심했다. 지난해 여름 그곳에 갔을 때 길안내를 맡았던 이는 100여 호가 사는 자기 고향마을에 10년 동안 혼인잔치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처녀들이 도시로 남조선으로, 일본으로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골마을에 살면서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의 이런 도시지향적인 삶의 자세에도 가슴 아팠지만 가장 간장을 저미게 하는 일은 젊은 여성 가운데 남편과 아이들을 남겨둔 채 줄행랑을 치는 가정을 보는 일이다. 남편과 자식을 두고서 떠나는 이에게도 말 못할 사연이 있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가정이 한둘이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행여나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 이 기사를 읽고 마음 상하고 아파할 것 같아서 구체적인 사례나 통계수치는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 묘향산의 여름
ⓒ 박도
“미풍양속은 그대로 지켜갑니다”

지난 7월 23일, ‘2005 민족문학작가대회’ 참가한 나는 평양에서 묘향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옆자리에 심기섭 북측 안내원과 이런저런 토론을 하니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박 선생님, 남쪽에는 매춘 여성이 일백만 명을 넘는다지요?”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숱할 거요. 북조선에는 얼마나 돼요?”
“우리 공화국 내에는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에이즈가 없는 나라지요.”
“네엣?”

“선생님, 사람과 동물과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생각의 차이겠지요?”
“그렇지요.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요. 나라와 겨레를 생각지 않고 제 배부른 것만 찾고 암컷수컷만 찾으면 짐승이나 다름이 없지요.”


▲ 평양거리의 여성들, 무더운 날씨임에도 거의 대부분 여성들이 신체 노출이 없는 한복차림이었다.
ⓒ 박도
그는 우리 참가단 가운데 몇 젊은 여성들이 당당하게 ‘맞불질(맞담배를 태우는 것)’을 도시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도 지난해까지 여자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서 근무하였는데 도서관에 가면서 언저리 계단에 딸 같은 대학생들이 담배를 빠꼼빠꼼 태우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처음에는 그들이 고개를 숙이더니 점차로 고개를 빳빳이 쳐든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것은 최근 남녘에서 군사정권이 물러난 뒤 남녀평등사상과 여성들의 인권신장이 커지고 민주화로 일어난 현상으로 “남자도 태우는데 여자들도 같이 태우는 게 뭐가 나쁘냐?”고 했다. 그러자 그는 북조선에서는 공화국 창건과 더불어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면서, 남녀평등은 정치적 사회적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지 남자가 하는 일을 여자가 똑같이 하는 게 남녀평등이 아니라고 우겼다. 나는 그가 내 생각보다 더 보수적인데 놀랐다.

“도덕적이지 못한 사회나 나라는 멸망합니다. 우리 공화국은 설령 봉건사회의 것이라도 미풍양속은 그대로 지켜갑니다.”

그는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있게 뱉었다. 세 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게 있다고 하였는데 비록 사회주의자가 한 말이라도 배울 게 있지 않을까?

▲ 내 집 뒤뜰 잡초 속에 핀 원추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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