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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권이 출범하고 불과 한 달여만에 터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이 다시 화제다.

당시 조폭의 자금줄인 슬롯머신 업계가 정권과 어떤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친 '슬롯머신 사건'은 '스타검사 홍준표'의 화려한 정계 진출을 예고한 사건이었다.

당시 홍 의원은 '6공화국의 2인자'인 박철언 당시 국민당 의원을 비롯해 이건개 고검장을 구속하고, 엄삼탁 안기부 기조실장, 전재기 법무연수원장 등 현직 실력자들을 줄줄이 불러 조사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사건으로 홍 의원에겐 아직까지 '모래시계 검사', '한국판 마니 풀리테' 등의 별칭이 따라 다닌다. 물론 이 사건은 그의 정계입문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1년6개월 실형을 받은 박철언 전 의원이 최근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슬롯머신 사건 수사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시 하에 이뤄진 '보복 수사'였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박 의원은 당시 '슬롯머신 업계 대부'라고 지칭되는 정덕진 측으로부터 5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죄목으로 '482일 동안 감옥살이'를 했고 만기출소일을 두 달여 앞두고 1994년 9월 가석방됐다.

박철언 "나는 YS의 전승 축하 기념 굿판의 제물"

▲ 박철언 전 의원의 회고록.
박 전 의원은 회고록에서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슬롯머신 사건의 마무리가 YS 정권의 일석이조의 전략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파다했다"고 밝혔다.

"우선 정치보복 1호 대상인 나를 치고, 1993년 3월에 검찰총장에 임명되는 TK 출신의 박종철 총장을 밀어내고 박관용 비서실장의 동래고등학교 1년 후배인 김도언 차장검사를 검찰총장으로 밀어 올려 검찰을 장악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들이 우세했다."

이어 박 전 의원은 "김기섭 안기부 기조실장은 YS의 차남 김현철의 심복 중의 심복이었고 홍준표는 김기섭의 영남고등학교 후배로서 잘 아는 사이였다"며 "홍준표가 돈키호테 소리를 들어가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힘의 배경이 바로 김현철, 김기섭에게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의원은 수사망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보면서 "대선 후 승자의 전승 축하 기념 굿판에 제물이 되어야 하는 듯한 심정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박 전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검찰 조사는 "세무조사에 시달리고 있는 정덕진이 자신의 동생인 정덕일을 시켜 1990년 10월경 홍모 여인의 평창동 집에서 나(박 전 의원)를 만나 돈가방을 주었고, 그 돈가방을 들고 가는 것을 홍 여인이 보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덕진 측이 10만원짜리 헌 수표 등 3천여장의 뭉치를 007 가방에 담아 박 전 의원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전 의원은 "이 사건은 시체 없는 살인 사건"이라며 두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박 전 의원은 "나는 당시 YS로부터 모진 정치적 탄압을 받으며 천막당사를 전전하던 시절"이라고 전제한 뒤 "나의 계좌는 물론 정덕진, 정덕일 형제의 가명계좌를 추적하며 1990년 10월경의 자금 흐름을 파악하면 정덕일의 주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며 "홍 검사는 가장 중요한 가·차명 계좌의 수사를 시작하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덮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 전 의원은 "준 적도 없는 돈을 주었다고 하려다 보니 나온 것이 바로 '헌 수표'"라며 "정씨 형제가 고위공직자에게 돈을 준다면서 가·차명을 이용하지 않고 헌수표를 그것도 3천장이나 모아서 한 보따리를 주었다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정덕진측은 검찰 조사에서 박 전 의원에게 슬롯머신 영업장에서 모은 업소의 스탬프가 찍인 '헌 수표'을 모아서 주었다고 진술했다.

박 전 의원은 당시 사건이 '표적수사'라는 정황으로 "이건개, 엄삼탁에게는 1000만원짜리 고액수표를 주어 검찰의 수표추적으로 다 밝혀졌지만 왜 유독 나에게는 10만원짜리 헌 수표를 수천장 모아 주었다는 것인가"라는 점을 들었다.

또한 박 의원은 "슬롯머신 사건이 정치보복을 위한 표적 사정, 각본 수사였다는 것은 훗날 정덕일(정덕진의 동생)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며 1997년 5월 11일자 <일요신문>을 인용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정씨는 다음처럼 진술했다.

"사건이 진행중일 때 가족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YS에 대해 울분을 터뜨린 적이 있다. '박철언 또는 이건개를 잡겠다고 우리를 이용하는 것은 너무 야비하지 않나'고 말이다. 슬롯머신 수사는 김현철씨가 중심이 된 당시 여권 핵심 6인방의 각본에 따른 것이다."

그러면서 박 전 의원은 "홍준표는 그 후 검찰을 떠나 안기부 연구관으로 파견 나갔다가 결국 김현철이 한창 힘깨나 쓰고 있던 1996년 국회의원이 된다"며 "정치권에 결코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자신의 말을 뒤엎고 신한국당 총재 김영삼의 공천을 받아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준표 "YS에게 대통령 자리 뺏겨서 그런 것 아닌가"

한편 홍 의원은 이에 대해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이다. 홍 의원은 1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사건이고, 일방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홍 의원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 했는데 (YS에게) 뺏겨서 그런 것 아니냐"며 "박 전 의원과 YS는 정치적 앙숙관계이다, 그걸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니 속좁은 태도다, 결국 자신이 정치공작의 주범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라고 역공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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