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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표지
ⓒ 한길사
역사적인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들은 무엇일까? 가까운 독도 문제를 비롯하여, 한일합방에 따른 일제 수난기, 임진왜란 그리고 왜구 정도가 아닐까?

한반도와 일본은 지척의 거리에 있어 신석기 시대부터 문화의 교류가 있어왔으며, 한반도의 고대 삼국시대에는 특히 백제가 일본이라는 국가 건설 및 문화형성에 상당부분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며, 한반도와 인접한 일본 구주(큐슈)와 본토 서부 정도 지역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국가들은 필연적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와 많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대부분은 문화 교류에 의한 평화적인 관계였다고 보여진다.

그러던 중 통일 신라 이후에는 각자 자생하다가 고려에 들어서면서부터 왜구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는데 (고려조 1350년조 ‘왜가 고성, 죽림, 거제를 노략질했다. 왜구의 침략은 여기서 시작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삼국시대에도 왜구가 종종 출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왜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으로는 김성호씨의 <중국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을 읽어보기 바란다.), 고려 당시에는 몽고가 세운 원(元)이라는 나라가 대부분의 유라시아 대륙을 활보하고 있던 시대였으며, 일본의 대마도와 큐슈가 고려와 원의 연합군에 의해 정벌되지만, 태풍의 피해로 본토 정복은 두번이나 좌절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왜구의 피해는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회유와 정벌의 방법으로, 또한 당시 일본이 혼란기를 극복하고 무로마치 막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서로 평화의 길을 모색하게 되어 무로마치 막부가 지속되는 160여 년간 일본국왕사가 조선을 60여회 방문하였고, 이에 대응한 조선의 회례사 및 통신사도 수차례 파견되었었다.

하지만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이러한 평화관계는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로 인해 임진왜란으로 이어지고, 이 전쟁으로 인한 조선의 피해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토요토미 사후 정권을 잡은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는 조선과의 선린관계 회복을 위해 무수히 노력한 결과 다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회복되기에 이르고, 이후 도쿠가와 막부말기에 이르는 260여 년간은 어느 정도 교린관계를 회복하였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자 애쓴 통신사이다.

임진왜란 이후 처음에 파견된 조선의 사절은 탐적사, 즉 적을 탐색하기 위한 사절이었으며, 이후 일본의 요청에 대한 회답 및 조선 포로의 송환을 요구하는 쇄환사로 사절 400여명을 보냄으로써 국교의 회복이 시작되게 되었다. 이후 이 명칭은 다시 통신사(通信使)로 바뀌게 되어 이후 일본 측의 요청에 의한 10여 회에 걸친 파견이 이루어진다.

이 때 일본 측의 사절은 부산에서 맞아서 돌려보냈는데, 그 이유는 임진왜란 이전 국왕사로 파견되었던 사절을 한양까지 안내한 길이 조선침략에 이용되었었기 때문이다. 통신이란 '믿음으로 통한다'는 뜻으로, 조선의 교린정책 의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통신사는 과연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을까?

요즘 교과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오래된 내 기억에 조선통신사는 일본에 많은 문물을 전파했다 정도가 교과서 기록의 대부분이었다고 기억된다. 이 책은 이런 조선 통신사의 배경과 그 역할에 대해 좀 더 세부적으로 파고드는데 무엇보다 화려한 컬러 삽화로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당대에 남겨졌던 관련 유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이 책이 표방하고 있는 '역사교재'로써의 역할은 충분히 해내는 듯 하며, 이 정도 사진을 컬러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재값(?)은 하고도 남는 듯하다.

통신사들의 기나긴 여정이나, 통신사들을 접대하기 위한 일본 각 지방의 노력, 통신사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일본의 백성들이나, 필담으로 시를 주고받는 모습 등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지 못했었던 한일간의 관계를 알게 해준다.

조선 통신사의 역할은 한일 양국간의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호의 역사일 것이다. 조선 측의 통신사는 8개월이 넘는 긴 여정을 견뎌야 했고, 일본 측에서는 통신사의 대접을 위해 막부의 1년 재정을 넘는 금액을 써야만 했다. 다분히 양국 정부의 정치적인 계산을 수반한 이러한 우호 관계의 이면에는 이러한 행사를 위해 고생했었을 일반 민초들의 고초도 떠오르지만, 타국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일본에게 있어 조선에서 파견된 통신사와 수반 행렬들은 일본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통신사가 쓴 글귀 한 구절을 얻기 위해 당시 일본인들이 부단히 노력했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유의 책을 보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은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의 뜻있는 교사들이 모여 양국에서 통용될 만한 역사교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조선시대 통신사들의 힘든 여정과 이를 영접하기 위한 일본의 노력에서 빚어졌던 우호에 버금가는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책의 부분 부분에서 자국의 입장을 떠나 역사를 기술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낄 수 있는 대목들도 있어 자칫하면 열심히 노력한 교사들을 매도할만한 여지도 보인다.

이 책이 한일공통역사교재란 부제를 달고서 출간되었는데 대상으로 삼는 연령이 모호한 점이 있다. 그리고 일본 측의 출간 상황은 어떤지 모르지만, 필요한 곳에는 한자를 병행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 통신사가 오고 가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기술된 임진왜란에 대한 부분이 길지 않은 책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통신사에 대한 설명이 좀 많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드는 아쉬움들을 제외한다면 역사 교육을 위한 부교재로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조선 통신사에 대한 전문적인 역사서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아쉬운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이 책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독자 혹은 이 책으로 인해 통신사에 대해 한층 관심을 갖게 된 독자들에게는 당시 일본의 상황에 대한 통신사의 생생한 기록을 볼 수 있는 해유록(숙종 때 제술관으로 파견된 신유한이 통신사로 파견되었을 때의 여정을 자세히 기술한 책)나, 재일 고고학자인 이진희씨등의 저작인 <한국과 일본문화>나 <한일교류사>에 있는 조선통신사 부분을 추천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Yes24 및 도서정보사이트 리더스가이드에도 등록된 글입니다.

<한국과 일본문화>는 을유문화사에서 1985년에 나온 책이라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찾아볼 수 있고, <한일교류사>는 1998년 학고재에서 출간되어 현재 인터넷 서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해유록은 1976년 정음사에서 나온 문고본이 있기는 한데, 현재는 인터넷 민족문화추진위원회 고전국역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 겁니다.
http://www.minchu.or.kr/ContentView.jsp?dbname=MK&pItemId=kc_mk_m022


조선통신사 - 한일공통역사교재

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 지음, 한길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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