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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차례의 런던 테러에 이어 이틀 만에 이집트에서 다시 대형 테러가 발생하자 세계인들의 이목이 아프간과 파키스탄 등 중동지역 테러리스트들의 근황에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 25일(현지시간) 이집트 경찰이 이번 테러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5명의 파키스탄 청년들을 지목하고 이집트 전역에 이들의 사진을 뿌리며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그동안 무장 게릴라들의 은신처이자 훈련 장소로 알려진 파키스탄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지난 7일의 런던테러에도 파키스탄인들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지난 24일자 <올랜도 센티널>.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지대의 테러리스트 현황을 보도하면서 탈레반이 14세 소년들까지 모병에 나서고 있다고 적었다.
ⓒ 김명곤
<에이피> 통신은 "사실상 영국 경찰들도 연이은 런던 테러에 알카에다 조직의 일원인 파키스탄인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혐의를 두고 뒤쫓아 왔으며, 워싱턴은 런던 테러와 이집트 테러가 알카에다의 수괴인 빈라덴에 의해 계획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같은 날 <워싱턴 포스트>도 "지난 2004년 3월 뉴욕 및 워싱턴 일원의 5개 빌딩에 대한 폭파 계획을 세운 혐의로 체포된 파키스탄계 미국 시민권자인 모하메드 바바르가 미국 수사기관에 지난 7일 런던 테러 사건의 범인 중 하나를 자신이 아는 인물로 지목했다"고 전했다. 바바르는 알카에다 그룹이 영국에 있는 파키스탄인 알카에다 지부에 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재료를 공급해 왔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바바르는 지난해 여름 뉴욕 연방법원 심문에서 "아프간 국경 지역에서 알카에다 고위 간부를 만나 돈과 전투 장비들을 제공하고 그 지역에 지하드 훈련 캠프를 건설하는 데 협조했다"고 자백한 바 있다. 그는 현재 감형을 조건으로 영국과 미국 정보기관원들에게 알카에다의 활동상을 전달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 <에이피> 통신은 런던 연쇄폭발 혐의자 4명 중 파키스탄계 영국인 3명이 지난 2004년 7월에서 11월 사이에 파키스탄의 카라치에 머문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파키스탄의 급진 무슬림 무장단체들이 런던테러와 관련하여 이들에게 폭파 훈련이나 무기 제공과 같은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이 제기돼 조사중이라고 전했다.

"파키스탄 무장단체 캠프, 테러 훈련 재개"

▲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테러단체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전한 데일리 타임스(http://www.dailytimes.com.pk).
현재 파키스탄은 아프간 주둔 미군의 지속된 추격을 피해 넘어온 다수의 탈레반 및 알카에다 무장 게릴라들의 은신처가 되고 있으며, 한동안 잠잠하던 파키스탄의 무장 단체들도 산악지대 협곡 캠프에서 테러 훈련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의 <텔리그래프>는 지난 7월 24일 "(파키스탄의 정보관계 고위 관리가) 파키스탄이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패잔병들이 계속해서 번성하고 재도약하는 인큐베이터가 되어 왔다고 실토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신문은 무샤라프 대통령조차도 지난 21일 연설에서 과거에 파키스탄이 알카에다 활동의 루트와 재기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어져 왔다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현재 파키스탄에는 서로 노선이 다르거나 비슷한 45개의 무슬림 무장 과격단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이피> 통신은 지난 22일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런던 테러 이후 무슬림 무장단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에서 계속해서 이들의 훈련을 위한 군대식 캠프가 운영되고 있다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한 파키스탄 관리는 "수년 동안 어느 누구도 캠프의 존재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모든 사람들이 캠프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파키스탄의 카라치에서 발행되는 시사 잡지 <헤럴드>는 이 달치에 파키스탄 북중부 멘세라의 험곡 수목지대에 숨겨져 있는 무슬림 무장단체 훈련 캠프에 대한 탐사 기사를 게재했다. 이 잡지는 "무장 게릴라들이 자동화된 무기를 지니고 위장용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그들의 숙소에는 60~80개의 슬리핑백이 얇은 매트리스 위에 놓여져 있었다"며 "바로 옆 건물에서 소년들이 18일 동안의 사상훈련과 체력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익명의 파키스탄 관리의 말에 따르면, 지난 2001년 말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미국의 테러 전에 합류하기로 함에 따라 파키스탄 육군은 무슬림 무장단체가 훈련을 줄이거나 다른 요새지로 옮기도록 압박을 가했다. 이에 따라 무장단체들은 지난 2년여 동안 기부금을 걷거나 모병소를 운영하는 것과 같은 공개적인 활동을 줄이거나 감추어 왔다. 이 때문에 맨세라 지역에 있던 13개의 훈련 캠프가 문을 닫았으나, 올해 4월과 5월 다시 문을 열었다는 것.

파키스탄 무장단체 훈련 캠프에 대한 소식은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 법정에서 공개된 파키스탄 청년의 자백서와도 일치한다. 미국에 입국하다 붙잡힌 해미드 해야트는 FBI에 자신은 파키스탄에 있는 지하드 훈련 캠프에서 지난 2003년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6개월여 동안 훈련을 받았다고 자백한 바 있다.

그는 자백서에서 "그 훈련 캠프는 군대에 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으며, 일반 무기 사용법은 물론 폭발물 사용법, 각개전투, 극기 훈련 등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면서 "훈련 캠프는 알카에다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훈련생들은 미국인들을 살해하는 방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내무장관 "무장단체 훈련 캠프는 근거 없는 낭설"

이에 대해 파키스탄 내무장관 세르파오는 <헤럴드>에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부인했으나 정보 분석가들은 "지난 수 년 동안 다른 파키스탄 관리들에 의해 상투적으로 반복되어 온 얼버무림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파키스탄의 지원 아래 있는 카슈미르 해방전선의 지도자 야신 말리크는 지난 6월 13일, 파키스탄 래시드 아메드 정보 장관을 지칭해 "극소수의 사람들은 인도와 파키스탄 간 카슈미르 분쟁에서 그가 협조해 온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과거 수년 동안 나를 포함한 약 3천명의 반군들이 전투 훈련 시 이슬라마바드 근처 래시드 장관 소유의 광대한 농장을 사용하곤 했다"고 말했다.

말리크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래시드 장관은 바로 부인했으나 언론은 그 당시 파키스탄 정부의 애슬램 벡 전 육참 총장과 바바르 전 내무장관을 포함해 최소한 6명의 전직 고위 관리가 말리크의 이같은 주장을 사실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과 오랫동안 카슈미르 분쟁을 겪어온 인도의 전 고위 정보책임자 래만은 최근 "(무장단체 캠프에 대해) 보도되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가 카슈미르에서 생포한 게릴라들을 심문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확인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놀라운 것은 그들(파키스탄인들)이 지금에서야 언론에 이같은 사실을 공표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파키스탄 무장단체 캠프의 존재와 이들의 훈련 재개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선언하고 경제 원조를 받고 있는 무샤라프 정권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샤라프 정부는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추격하는 한편 2002년부터는 파키스탄의 대표적인 무슬림 무장 게릴라단체인 '재이시(Jaish)'와 '래시카르(Lashkar)'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금지해 왔다.

파키스탄 집권세력, 친미 불구 무장단체 와해도 원치 않아

그러나 정보 분석가들은 특히 재이시와 래시카르의 훈련 캠프와 파키스탄 지도층의 오랜 커넥션이 파키스탄 무장단체들의 세력 강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무샤라프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을 때부터 충성을 바쳐 왔던 파키스탄 군부 멤버들이 무장단체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과 무샤라프 대통령도 한때는 빈라덴 그룹의 자금 통로 역할을 한 무슬림 무장단체 '래비타 트러스트'(Rabita Trust)의 운영위원이었던 전력이 있다는 점이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2001년 10월 부시 행정부는 래비타 트러스트의 자산 동결 조치에 앞서 무샤라프가 이 단체와의 관계를 먼저 청산하도록 요구했다.

사실 파키스탄 군부 핵심 그룹과 군 정보부(ISA)가 인도와 카슈미르 분쟁을 겪으면서 파키스탄 무슬림 무장단체를 육성해 왔으며 아프간과의 전쟁에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지원해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돼 왔다. 파키스탄 군부 내의 많은 장교들은 무슬림 무장단체들을 제거하기를 원치 않는데, 언제 다시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파키스탄 무장단체와 아프간의 탈레반 혹은 알카에다 반군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로 이들의 활동이 연합적으로 펼쳐지곤 한다는 것도 파키스탄 정부를 곤경에 빠트리고 있다. 재이시 무장단체와 알카에다가 2002년 미국 저널리스트 대니얼 펄 살해에 함께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자국 무장단체를 탈레반이나 알카에다와 구분해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인기 없는 '친미' 무샤라프 정권, 고민스런 미국

▲ 유에스에이 투데이(http://www.usatoday.com)와 인터뷰한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 파키스탄 정부는 친미정권이면서도 이슬람 테러단체에 대해서는 강수를 쓰지 못하고 있다.
결국 파키스탄 정부는 표면적으로 미국과 동맹을 맺고 테러전을 벌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슬람 무장 단체에 강수를 쓸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무샤라프 정권은 쿠테타 당시 가졌던 인기와 막강한 파워가 부정으로 얼룩진 국민투표와 연이은 총선의 패퇴로 크게 약화되면서 국정 장악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특히 국민들은 미국이 유엔의 동의 없이 이라크 전을 벌인 데 대해 크게 반발, 이런 미국과 맹목적인 밀월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무샤라프 정권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파키스탄인 수천 명은 무샤라프가 미국 등 서방국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장단체들을 지나치게 입박하고 있다고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군부와 국민들의 은근한 지원을 받고 있는 무장단체들은 이러한 틈새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속이 타들어가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은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의 반발을 억누르면서까지 무장단체 분쇄작전을 펼쳐온 무샤라프 정권에 지나친 압박을 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무샤라프가 특히 전임자들에 비해 유연한 외교를 펼쳐 서방국가들에 비교적 온건한 인물로 비쳐지고 있고, 군부와 지방의 전통 토호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이라크에서 무장 세력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래저래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9·11 이후로 기회 있을 때마다 테러리스트들을 지구 끝까지 추격해 섬멸하겠다고 장담해 온 부시 정권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koreaweeklyfl.com(플로리다 코리아위클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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