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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시내에서 바라본 1960년대말경의 송도전경
ⓒ 포항시

포항 송도의 송림과 모래사장 사이에는 야트막한 사구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삘기를 비롯한 각종 해안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송도의 한 고아원에서 놓아먹이던 염소들이 이곳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도 송도의 한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불모지로 버려져 있던 땅을 밭으로 일구어 시금치, 월동초(일명 시나나빠), 파를 재배하는 등 주로 농사일에 종사하였다.

1930년 후반부터 동해안에 청어, 정어리가 많이 잡히면서 청어 가공 공장과 정어리 유지공장이 송도 다리 동편 길 양쪽에 세워지기도 했다. 또 동빈내항을 끼고 북쪽 해안 쪽에는 村土, 熊本, 濱田조선소와 송도 다리 동북편(삼일주유소 뒤)에는 朴相高조선소가 있었으며, 그 흔적으로 아직도 송도에는 소형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가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선소, 송도다리, 그리고 염전의 추억

1934년 도심과 연결하는 다리가 처음 놓이게 되었는데 나무 다리였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올라왔다고 하여 사람들은 꼽추다리라고 불렀다. 숭어와 은어가 회귀하는 시기에는 고기들이 내항을 지나 형산강을 타고 올라가기 위하여 이 다리 밑을 가득 채웠다. 이를 잡기 위해 인근 사람들이 몰려들곤 했는데 이들은 가마니를 다리 밑에 쌓아두고 숭어나 은어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뛰어 오르다가 가마니 위로 떨어지면 손으로 주워 담았다. 고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주워 담기 바쁠 정도였다고 한다.

영일만에는 산란을 위해 모여든 고기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정어리 가공 공장과 유지 공장이 들어서 있던 송도 다리 북쪽 길에는 생선 비늘이 길을 덮을 만큼 많이 쌓여 있었으며 발목이 잠길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야말로 영일만에는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을 생선 비늘과 다리 밑의 고기잡이를 통하여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수많은 인파가 찬 1970년대 송도해수욕장 전경
ⓒ 포항시
송도의 또 다른 이야깃거리로 염전을 빼놓을 수 없다. 염전은 송도다리 남쪽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이 지역을 소금 굽는 마을이라 하여 염둥골로 불렀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만 해도 딴봉 지역(형산강 지류에 의해 송도 남쪽과 해도 사이에 있던 작은 섬. 포스코가 부지 확장을 위해 형산강 흐름을 변경시키면서 사라졌음. 지금의 형산강 하류 가운데쯤에 위치했음)에 2만 평, 청어등택 공장과 정어리 공장이 폐쇄된 자리에 1만 5천 평, 그리고 큰 길 북쪽 서너 곳에도 소규모의 염전이 있었다.

소금 생산이 한창일 때는 이 소금을 시장으로 실어 나르는 마차와 짐꾼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 전쟁이 끝난 후부터 연료비 상승으로 인하여 생산단가가 높아지면서 서해안에서 생산된 천일염과의 가격 경쟁에 뒤지면서 송도와 해도 일대의 소금 생산은 도산 위기에 빠지게 된다.

더 이상 소금 생산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얻을 수 없게 되자 1950년대 후반 정부에서는 전매서를 통해 제염 업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전업을 종용하기에 이른다. 송도 제염업은 이 때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해일과 철강공단 개발로 폐허로 변해 버린 해수욕장

포항 송도 해수욕장은 형산강 제방공사 전에는 대송면 송정리의 어링불과 연결이 되어 있었으며 엄청나게 긴 백사장을 갖고 있었다. 또 몸에 달라붙지 않는 모래,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바다, 검푸른 솔숲과 어울리면서 그야말로 원시 자연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포항이 읍으로 승격되던 1931년 정식으로 해수욕장으로 개장되면서 백사송림(白砂松林)의 휴양지로 전국적인 이름을 얻게 되었다.

포항의 방풍림인 송림을 배경으로 긴 사구와 이어진 백사장을 가지고 있는 송도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모래가 고르고 고우며, 모래사장의 폭이 70m에 달할 정도로 넓고, 또한 간만의 차이가 거의 없으며 수심 또한 얕아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북한의 원산 해수욕장과 함께 송도 해수욕장은 동해안 최고를 자랑했다. 송정까지 길게 이어진 숲과 모래사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장관이었다.

▲ 1970년대 송도해수욕장 전경
ⓒ 포항시
1935년 형산강 제방 축조 공사가 끝나고 송정 바다와 분리되면서 그 규모는 반으로 줄어들게 되었지만, 광복 후에도 포항하면 송도해수욕장을 말할 정도로 포항을 대표하였다. 그 명성을 따라 전국 각처에서 해수욕객이 몰려와 포항발전에 큰 몫을 차지해 왔다.

그러나 1968년 이후 이 고장에 철강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점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울러 송도 자체도 도시화되면서 송림을 잠식하게 되었으며, 1970년대 말 두 차례의 큰 해일로 백사장이 사라지자 이를 막기 위하여 방파제를 설치하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동안 해수욕장 일대는 1977년에 유원지시설로 지정되었고, 1983년에는 국민관광지로 변경되었다가, 지난 2002년에 상업지역으로 결정돼 현재 송도종합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이 진행 중에 있다. 앞으로 천혜의 송도해수욕장을 살리는 노력이 범시민적 차원에서 꾸준히 전개되어 지난날의 모습이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 현재의 포항송도해수욕장
ⓒ 김일광

▲ 현재의 포항송도해수욕장
ⓒ 김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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