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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0일 도쿄 오차노미즈에 위치한 츄오대학 스루가다이 기념관에서 열린 "민족공조와 통일" 합동강연회. 400여명의 재일동포가 입추의 여지없이 빽빽이 들어차 강연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사진 중앙은 첫번째 강연자로 나선 한성대 윤경로 총장.
ⓒ 박철현

▲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의 참석자들.
ⓒ 박철현

20일 오후 1시 도쿄 오챠노미즈에 위치한 츄오대학 스루가다이 기념관이 북적거린다. 일생을 통일운동, 민족·민주화 운동에 바쳐온 노(老)전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낸다.

재일 민주화인사들이 한 자리에

30년 이상 한국 땅을 밟지 못한 채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통일운동가 정경모 선생이, 이미 30여년 전 재일조선인 인권문제와 정신대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가와사키의 이인하 목사님과 다정스럽게 인사를 나눈다.

▲ 사진 중앙이 통일운동가 정경모 선생. 81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꼿꼿이 앉아 연설을 경청하셨다.
ⓒ 박철현
71년 박정희 정권시절 조작된 형제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 리츠메이칸 대학의 서승 교수님은, 역시 마찬가지로 간첩단 누명을 썼던 재일한국인권센터의 최철교 선생님과 정답게 악수를 나눈다. 대회의 주최역을 담당한 조국통일평화협회(이하 '평통협')의 김수식 회장을 비롯한 평통협 회장단이 회장의 앞줄에 나란히 앉는다.

노전사들의 뒤편에 열정적으로 재일단체들과 연계활동을 해오고 있는 재일대한기독교회의 박수길 목사님과 츠다쥬쿠 대학의 림철 교수님이 한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고, 그들의 뒷편으로 젊은 통일세대 재일동포 2, 3세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차지한다.

모두가 오랜 세월을 이겨낸, 이제 통일이 되어 가고 있는 남북의 모습에 감개가 무량한 듯 들뜬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사회의 공공연한 차별을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노전사들의 뜻을 잇겠다는 각오로 충만하다.

한 데 모이기 쉽지 않은 이들을 모은 20일의 합동강연회의 제목은 '민족공조와 통일'. 매년 6.15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강연회로 열리고 있는, 이전에는 강만길 교수, 한완상 전 총리, 고 김남식 선생이 강연자로 나섰던 6, 7월의 연례행사다.

결론은 하나... "우리 민족끼리"

이번에는 이전처럼 한 명의 강연자가 단상에 오르는 것이 아닌, 각각 다른 영역에서 공동선언을 실천하고 있는 세 명의 연사가 초청되어 남북공동선언 5주년의 의미를 조명한다.

그러나 '민족공조와 통일'라는 강연회의 제목이 의미하듯 출신지와 활동영역이 다른 강연자들과 400여명에 달하는 참석자들의 결론은 일치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끼리'.

첫번째 강연자로 나선 윤경로 한성대 총장은 역사학 권위자의 명성에 걸맞게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지금을 살아가는 남북 해외 동포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통일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탁월한 의견을 내어 놓았다.

45분간 진행된 강연에서 윤 총장은 먼저 "민족공조와 통일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임을 강조하면서 "그 정체성 확립에 가장 힘써온 재일동포 사회를 무한히 존경한다"며 강연을 시작한다.

그는 이어 한민족의 역사성과 세계성, 그리고 이것을 말살하려 했던 19세기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열강들의 제국주의, 팍스아메리카나 정책 등에 대해 통사적 흐름을 짚어가며 설명한 후,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6.15선언 가장 큰 의미는 민족성 회복"

▲ 역사적 맥락에서 6.15 공동선언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윤경로 총장.
ⓒ 박철현
"6.15 공동선언은 남북이 갈라진 60년 동안 팽배해왔던 남북간의 상호불신과 적대적 관계를 민족공조로 전환시켜, 북한사회에 대한 폐쇄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는데 기여했다. 한 민족 한 동포임에도 불구하고 열강과 제국주의의 전술 아래 서로를 불신해왔던 것이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는 마음의 변화, 즉 '하나의 민족으로서 서로를 신뢰하는 민족성 회복'이 바로 6.15 공동선언이 가져온 가장 큰 의의다."

그는 덧붙여 "역사는 물을 퍼내고, 고기를 잡고, 그 다음에 잡은 고기를 먹는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면서 "우리는 죽어라 물을 퍼내는 것이 사명이며, 이 사명에 만족해야 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언급했다.

쉬운 예로 박정희 대통령이 빈곤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공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고기도 잡고 먹는 것 전부를 다하려는 바람에 유신과 군사독재, 즉 역사를 거꾸로 돌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윤 총장은 그렇기 때문에 "한눈을 팔지 않고, 오직 통일과 민족운동에 매진해 온, 한 우물만 파온 우리들의 노력이 이제는 결실을 보고 있다"며 "앞으로도 우리 모두 통일을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하자"고 강연을 맺었다.

"공동선언 방해 세력과 싸울 때"

▲ 왼쪽부터 재일대한기독교회의 박수길 목사, 츠다주큐 대학의 림철 교수, 재일한국인국제인권센터의 최철교 위원장.
ⓒ 박철현
두번째 강연자로 나선 일본 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의 한동성 교수는 "북이 왜 민족공조, 선군정치를 주장하는지에 대해 민족자주 100년 투쟁사의 역사 속에서 파악"해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6.15 공동선언은 항일광복과 이후 반외세투쟁으로 이어지는 민족자주 100년 투쟁사의 최종단계"임을 선언하며 "6.15 공동선언에 의해 민족자주를 위한 통일적 주체를 마련, 우리민족 대 외부세력의 대결구도도 비로소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공동선언 이후 친북이냐 친남이냐가 아닌 공동선언을 지지하느냐 지지하지 않느냐라는, 즉, 우리민족끼리 단합을 해서 통일을 하겠는가, 아니면 공동선언의 정신을 훼손하고 방해하려는 미국, 일본 등 주변 열강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냐라는 단순명료한 '도식'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공조를 지지하는 모든 세력은 공동선언을 방해하려는 세력과 어떻게 싸워 나갈 것인가를 앞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지금까지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다시 참석자들의 결의를 다졌다.

세번째 강연자는 당일 비행기로 도쿄에 도착해 바로 강연회장으로 달려온, 평양이 고향이라고 밝힌 열린우리당의 한명숙 의원. 그는 그간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달라진 변화와 현재의 핵심과제, 6자회담 등 당면현안들"을 심도 깊고 재미있게 밝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한 의원의 강연은, 최초의 민간 여성교류의 일환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1992년의 감회를 술회하며, 2005년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또 다른 경험을 나열하면서 시작된다.

13년 간극... 달라진 남북관계 실감

그는 이 두 차례의 경험에서 13년의 간극을 뛰어넘는 달라진 남북관계를 실감했다고 한다. 당국이 허락은 했지만, 가슴 한구석의 두려움을 가졌던 13년 전에 비해 지금은 남한 정부, 민간, 국회의원단 등 사회각계층이 민족공조라는 대의아래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참가할 수 있었다는, 마음의 변화가 이미 남한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72년 7.4 남북공동성명, 91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이 있었고 그 이후 조국통일 3대 원칙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등이 제창되었지만, 실제로 사상 이념이 틀리더라도 반 발짝씩 양보하자는 민족의 공통적 이념이 공유되고 통일원칙, 경제협력, 금강산 관광, 도로 및 철도 연결, 이산가족 상봉 등 실제적인 성과를 보여온 것은 6.15 공동선언 이후입니다."

▲ 마지막 연사로 나선 열린우리당의 한명숙 국회의원. 재미있고 풍부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 박철현
"금강산 관광을 한 100만명이라는 숫자만큼, 경의선 철도 공사를 하면서 만나는 남북의 군인들만큼, 개성공단에서 경제교류를 하고 있는 현실들이 바로 현재진행형의 통일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런 현재진행형인 통일의 기반에 있는 것이 남한 국민들의 의식변화라고 한다. 지난 5월 12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조사한 정기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남한의 동의없이 북한에 선제공격을 가했을 때,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47.6%가 북한 편에, 31.2%가 미국편에 서야 한다는 것, 또, 최근 북한에 200만kw의 전력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에 대해 찬성이 50% 이상을 넘었다는 여론조사는 그런 의식의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세 강연자는 공통적으로 이런 의식의 변화가 6.15 공동선언의 가장 큰 치적이라고 말한다. 과거 100년간 외세에 휘둘림을 당하며 질시, 반목해 왔던 남북한이 공동선언을 계기로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에 눈뜨게 된 것이다.

진지함과 웃음, 결의와 다짐이 교차한, 장장 4시간에 걸친 합동강연회는 이렇게 끝났다. 온갖 차별을 무릅쓰면서도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지켜오며 "한 우물만을 퍼왔던" 참석자들의 표정은 뿌듯해 보인다.

강연회가 끝난 후 가진 조촐한 뒤풀이 행사. 모두들 서로를 격려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자는 대화들이 오고간다. 그런 밝고 정겨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한명숙 의원이 강조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미 통일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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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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