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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팀 = 박영신(프랑스)/김성수·박성진(영국)/강구섭(독일)/김은정(이탈리아)/서진석(발트3국) 기자

[기사대체 - 6월18일 낮3시] 결국 유럽연합헌법(이하 유럽헌법)에 대한 비준연기가 발표됐다. 향후 각국에서 시행될 예정인 국민투표를 모두 연기하기로 한 것.

프랑스, 네덜란드 양국의 연이은 '유럽헌법 비준 거부'로 일대 혼란에 빠졌던 유럽연합 25개 회원국들은 16일~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위와 같이 결정했다.

17일자 BBC 뉴스 인터넷 판 보도에 의하면, 바루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Commission) 의장은 "우리는 유럽연합 헌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나아갈 수는 없다. 유럽 각국은 현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고 토론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BBC 뉴스는 "유럽 정상들 중 일부는 이 상황을 마치 DVD 플레이어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일 뿐, 차후 끝까지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낙관적인 분석과 "터키뿐만 아니라 다른 발칸 국가들의 유럽연합 가입도 더 골치 아프게 된 것 만은 확실하다"라는 다소 비관적인 분석을 동시에 내놓았다.

이런 와중에서 <더 타임즈>17일자는 유럽연합의 예산, 환급 문제도 명확하게 처리되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보고했다. 헌법 부결에 이어 예산문제로까지 난항을 겪게 된 것.

결국 일각에서는 "유럽헌법이 유럽연합의 초석을 마련한 게 아니라 유럽연합을 약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너무 성급하게 유럽을 통합시키려 한 게 오히려 화근을 만들었다"는 비판과 우려들까지 제기되고 있다.

▲ EU의 본부인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EU집행위원회 건물.
ⓒ 김성수
총 25개 회원국 중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헌법 비준 여부를 밝힌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이외에 의회에서 비준을 통과시킨 독일,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등 12개국이 각각 입장을 밝힌 16일 현재 "휴식기를 갖자"며 유럽헌법 비준을 무기한 연기시켜 버린 영국, '인준국에서 '인준유보국'이 돼 버린 독일, 유럽헌법의 사망을 선고한 프랑스와 네덜란드,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전염될까 우려하는 덴마크, '문제가 다소 복잡해지기는 했으나' 유럽헌법 '찬성'을 향한 국민투표를 강행하겠다는 아일랜드, 체코, 포르투갈 등 이번 정상회담을 가로질렀던 공기는 지난달 29일 프랑스가 부결을 발표하던 순간보다 더 무거웠다.

18일자 BBC 뉴스 인터넷판에 의하면 EU 평의회의 융커 의장은 "외교관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유럽연합이 위기라고 하지 않겠지만, 사실 심각한 위기"라고 말했다. 독일 슈뢰더 총리는 "유럽 연합 사상 최악의 정치적 상황"이라 동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 모든 혼란은 지금으로부터 보름여 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쓰나미급' 충격에서 비롯됐다.

■ [프랑스=박영신 통신원] 우리는 왜 유럽헌법을 거부했나

무시무시한 파괴력과 화끈한 구경거리로 흥행여부가 결정되는 재난영화의 속편이 첫 회의 그늘에 가려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프랑스의 'NO'가 '에피소드1'이었다면 '에피소드2'의 제작기간은 단 사흘이었고 주인공은 네덜란드였다.

프랑스가 먼저 유럽헌법을 부결시켜 네덜란드에 면죄부를 쥐어준 것 같지만 '네덜란드의 부결은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다. 네덜란드에서 흘러나오는 나름의 분석에 따르면 심각한 이민문제, 유로화 도입에 따른 충격, 대마초 허용 여부와 안락사 관련 법안'에 상치하는 다른 유럽연합국들과의 충돌 등 제시된 대표적인 세 가지 이유가 다 유럽연합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네덜란드 매트 허벤 의원의 발언은 이 같은 불안감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네덜란드에 미국식 연방국가를 강요할 수 없다. 주권을 지키자."

▲ 프랑스의 유럽연합헌법 찬반국민투표 거부 후인 30일 프랑스일간지들. "이 사건은 유럽연합헌법에 치명타를 가했을 뿐만 아니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에게도 치욕을 안겨줬다"고 평했다.
ⓒ AP=연합뉴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TV 담화를 통해 "프랑스 국민의 유럽헌법 거부 의사를 인정"하고 "'유럽정상회의에서 나는 프랑스의 입장을 대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에 의해 태어나고 지스카르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이 원안 작성에 참여한 유럽헌법에 대해 이제는 시라크가 프랑스인의 입장 즉 '반대' 입장을 변호하며 싸워야 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게 된 것.

프랑스에서는 1958년 제5 공화국 출범 이래 총 10차례의 국민투표가 이뤄졌으나 대통령의 요구에 국민이 반기를 든 경우는 이번이 두 번째다. 1969년 4월 27일 상원 개혁과 지방 신설에 관한 법안 승인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프랑스 국민은 반대에 표를 던졌으며 드골 대통령은 즉각 사퇴했다. 당시의 국민투표는 "반대하면 사퇴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었으므로 드골의 자살골이었다는 후문이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헌법이란?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조인으로 출범한 EU(유럽연합)는 경제적 통합체인 EC(유럽공동체) 단계를 넘어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최근 동유럽 국가들의 가세로 EU는 25개 국가로 확장되었으며 2007년에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도 가입시킬 예정이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도 가입 후보국에 올라있다.

EU는 EU 평의회(Council), EU 의회(Parliament), EU 집행위원회(Commission)라는 세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기관은 의장을 따로 두고 있다. 이 중 가맹국 정상들의 모임인 EU 평의회가 실질적인 최고 기관이며, 각국이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평의회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의장국은 룩셈부르크이며 올 7월부터는 영국이 맡는다.

EU 헌법은 EU 내 기존의 모든 조약들과 법률들을 대치할 수 있는 최상위법으로 EU의 정치적 통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체계다. EU 헌법이 EU 소속 국가들에서 전부 통과되면, 가맹국들 모두는 실질적으로 동일 헌법을 갖게 되기 때문에 EU 전체가 하나의 국가라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된다.

현재 리투아니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그리스, 슬로베키아, 오스트리아, 독일, 라트비아는 의회투표를 통해, 스페인은 국민투표를 통해 EU 헌법을 승인했지만, 16일 브뤼셀 정상회담에서 유럽헌법 인준 연기가 발표됨으로써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다. / 김성수 통신원
한편 이번 유럽헌법 비준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는 처음으로 프랑스가 유럽에 관한 질문에 반대의사를 밝힌 '사건'인 동시에 최근 10년 새 가장 높은 투표율과 제 5공화국 아래 가장 높은 반대율로도 주목되고 있다. 1972년 4월 23일 68%의 프랑스인이 영국의 유럽공동체(EC)가입에 찬성한 바 있고 1992년 9월 20일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51.05%라는 아슬아슬한 찬성표로 통과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잉태부터 생산까지 유럽연합을 주도해온 프랑스가 뒤늦게 유럽연합을 부정하려는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9일 저녁 10시 파리 솔페리노에 위치한 사회당(PC) 당사에서 감지한 반응은 유럽연합이 아니라 '현 정부에 대한 징계'였다. 참담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사회당 당수 프랑수아 올랑드도 "이것은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 단호히 규정했다.

실제로 <프랑스2> TV가 국민투표 직후 복수 응답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유럽헌법 거부 이유로 46%의 응답자가 '유럽헌법은 프랑스의 실업을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갈 것''이라고 답했으며 40%는 '현 사회 상황에 대한 지긋지긋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35%는 '유럽헌법을 재협상하도록 할 것이라는 기대'였다고 했으며 34%는 유럽헌법 텍스트가 신자유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머지 34%는 '텍스트 자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은 최근 몇 년 새 프랑스를 휩쓸고 있는 사회적 불안, 세계화 바람에 유럽이 방패막이가 돼 주기는커녕 좀더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이전하는 공장 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실질적으로 프랑스인의 실업이 가중될 것이라는 위기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25개 국으로 덩치가 커진 유럽에서 프랑스가 실업, 교역 등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지난달 29일 국민투표 결과 유럽헌법 부결이 발표되자 사회당 당사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당수가 참담한 표정으로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박영신
주목할만한 점은 테크노크라트와 경제 관료들이 브뤼셀에 모여 만들어온 유럽헌법이라는 '괴물'에 대해 프랑스가 비로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각 정당을 중심으로 찬반이 나뉘어 진행된 2달여에 달하는 집중적인 캠페인 기간 중 프랑스인들은 열심히 텍스트를 읽고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448 항목, 36 의정조항, 50 선언문을 포함해 총191 쪽에 달하는 유럽헌법 원문을 읽고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1일부터 무료로 배포된 안내서 이외에 프랑스인들은 직접 서점을 찾아 수십 종에 이르는 관련 서적까지 구입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그 결과 물론 프랑스의 부결 사유가 '좀더 사회적인 유럽', '신자유주의 반대'와 '유럽에 반대' 혹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반대', '동유럽 국가에 반대' 등으로 각각 다른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보면 의회 위주로 진행되는 유럽연합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더 이상 테크노크라트와 경제관료 그리고 엘리트 집단인 언론의 손에 유럽을 맡기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자유경쟁'에 반대 혹은 찬성, '세계화'에 반대 혹은 찬성. 2005년 오늘의 프랑스는 '자본주의' 논쟁은 아니지만 철저한 동의어인 '자유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 [영국=김성수 박성진 통신원] 국민투표 무기한 연기

영국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연이은 유럽헌법 부결로 가장 곤란한 처지에 놓인 나라 중 하나다.

지난 5월 총선 당시 "유럽 내 영국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라는 이유로 유럽헌법에 찬성해왔던 노동당은 2006년 봄에 치를 예정이었던 국민투표를 연기했다. "유로화도 받아들이자"고 강조했던 제2야당 자유민주당도 난감해하긴 마찬가지다. 가장 곤란한 사람은 7월부터 룩셈부르크 융커 수상으로부터 유럽연합 평의회(EU Council) 의장직을 넘겨받는 토니 블레어 수상.

반면, 유로화 사용은 물론 유럽헌법에 대해 줄곧 반대해 왔던 보수당은 계속되는 부결로 신이 났다. 하워드 대표는 지난 10일 "유럽 헌법은 사망했다. 유럽 헌법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서명했던 블레어 수상은 유럽 헌법 백지화를 선언해야 할 것"이라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 "유럽헌법조약은 죽었다. 조약 만세!"라는 BBC 뉴스 6일자 기사. EU 헌법 반대 시위 현장 사진 속 플래카드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게 조약을 부결시켜줘서 고맙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상당수 영국인들도 유럽헌법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근 신입 회원국들의 가입으로 더욱 덩치가 커진 유런연합을 영국이 떠맡아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영국은 유럽 속의 영국이 아니라 영국일 뿐이다'라는 영국 특유의 민족주의적 국민 정서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이 민족주의적 국민 정서의 밑바탕에는 지리적으로 영국이 섬나라로서 갖는 독립된 지위뿐만 아니라, 과거 전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향수가 존재한다. 지난 해 영국내 유로화 도입 논쟁이 붙었을 때에도 일부 영국인은 "화폐 이름을 유로파운드화로 하자"라고 말했을 정도다.

BBC 뉴스 인터넷판 16일자는 지난 2월에 시행된 유럽헌법 국민의견 조사결과를 기사로 내보냈다. 당시 유럽헌법은 찬성 39%, 반대 39%, 모름 22% 였다. 그런데 "만일 내일 당장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찬성 또는 반대?"라는 물음에는 반대 54%, 찬성 26%, 모름 20%로 반대표가 과반수를 넘었다.

▲ "나는 유럽이 아니라 영국 출신"이라고 적어 넣은 네티즌.
유럽 내 영국의 위상과 국익에 충실하자며 유럽 헌법 지지를 주장하는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의 친유럽주의, 보수당의 강경한 반유럽주의 태도가 교차하는 가운데 영국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다. 영국은 16일 브뤼셀 정상회담 이후 국민투표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2006년 4월~6월 국민투표설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영국 내에서는 유럽 헌법 비준에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영국이 유럽에서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 동유럽 가맹국들의 경제적 부담을 떠맡아야 하는 현실, 대영제국 시절의 향수, 쉽게 떨치기 어려운 '독립된 영국'이란 정서. 영국에서 유럽 헌법 국민투표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 [이탈리아=김은정 통신원] "우리도 국민투표 다시 하자"

지난 4월, 상원의회의 EU헌법 비준 투표를 통해 217표라는 압도적 찬성의견(반대 16표)을 보였던 이탈리아에서도 프랑스, 네덜란드의 국민투표 부결과 이어진 회원국들의 동요에 "우리도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초기부터 EU헌법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여온 이탈리아 북부경제협력기구 위원장 움베르토 보시는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국민투표는 국민들의 승리"라며 "상원의회 투표를 무효화하고 이탈리아도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승리는 유럽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며 "유럽국민들에 의한 유럽연합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의회 위원장 피에르 페르디난도 카시니는 "다수의 생각도 존중해야한다"며 "유럽연합의 다수가 현재 비준을 통과시킨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적당한 선택을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카시니는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해 비준을 부결시킨 나라들의 입장을 듣고 그들 나라의 국민들의 의지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야당인 공산당의 피에르 페르디난도 카시니는 "프랑스의 비준 거부는 유럽연합에 치명적인 타격"이라며 "그렇지만 유럽연합의 행로를 저지할 수는 없을 것"라고 말했다.

■ [독일=강구섭 통신원] 인준국에서 인준유보국으로

지난 5월 상하원에서 의원 대다수의 찬성으로 유럽헌법을 비준한 바 있는 독일은 지난 15일 연방대통령 쾰러의 'EU헌법 비준 최종서명 유보' 발표로 새로운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5월12일 연방의회의 유럽헌법 인준 당시 기민/기사당 소속 동료의원 20명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던 기사당 소속 연방의회 가우바일러 의원은 "상하원에서 인준된 유럽헌법이 기본법에 입각한 연방의회의 권한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며 지난 5월말 연방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했다.

가우바일러 의원은 6월15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연방 상하원은 비록 2/3이 이상의 찬성이 있어도 독일의 기본법이 규정하고 있는 헌법질서를 제3의 헌법체제로 대체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이 없다"며 "이는 기본법 146조에 의거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할 사항"이라고 연방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한 배경을 밝혔다.

▲ 'EU'로 가는 버스. 프랑스, 네덜란드에서의 EU헌법 인준부결로 EU통합과정에 제동이 걸렸다.
ⓒ 강구섭
가우바일러 의원의 이의 제기에 대해 쾰러 연방대통령은 "최종결정권자로서 법률적 절차를 거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서명을 유보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에 따라 독일은 잠정적으로 유럽헌법 인준국에서 '인준유보국'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려면 최소 수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독일의 EU헌법 최종 인준과정은 당분간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유럽헌법 비준 무효를 주장하는 가우바일러 의원의 견해에 EU헌법 비준에 참여한 기민/기사 연합 정치인들조차 대다수가 반대의 입장을 보이는 등 그의 이의 제기는 그다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연방총리 슈뢰더는 이번 헌법인준 부결 사태를 계기로 유럽의 과제, 미래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가질 것을 유럽연합 각국에 제안하고 있다.

한편 독일의 뉴스 전문채널 < N – TV > 에서 지난 10일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유럽헌법 인준과정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2% 가 '아니오', 32 %만이 '예'라고 대답, 헌법인준 과정을 중단해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를 차지했다.

[발트3국] EU헌법도 싫지만 소련 그늘 벗어나려면...

프랑스에서 EU헌법이 부결되던 날, 리투아니아에서는 바로 그 전 주 현 경제부장관이자 리투아니아 최대 정당인 노동당 당수 빅토르 우스파키츠의 비리연루가 드러난 데 이어 아르투라스 주오카스의 연루설 등 국내뉴스로 시끄러웠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역시 러시아와의 국경문제로 머리 아픈 싸움을 하고 있던 때라 프랑스 국민투표 결과는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충격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발트3국은 그동안 국가정책의 제1호가 유럽연합 가입을 통한 정체성 확립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작년 5월 1일 꿈에 그리던 유럽연합 회원국이 됨으로서 독립 이후로도 지루하도록 꽁무니를 따라다닌 소련 공화국으로서의 어두운 그림자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아직 서유럽과 비교해 완전한 회원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발트3국의 정상들은 서둘러 현 상황에서 긍정적인 점을 찾아 부각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미 EU헌법 비준을 끝낸 리투아니아의 발다스 아담쿠스 대통령은 "프랑스인의 부정은 슬프긴 하지만 비극적인 것은 아니며, 그 부정은 단지 EU헌법비준 국민투표의 결과일 뿐 유럽연합의 가치에 대한 부정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라트비아도 6월 2일 의회에서 서둘러 비준을 통과시켰다. 지난 2004년 유럽연합 가입의사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로 간신히 국민투표를 성공시켰던 라트비아의 경우, 수도 리가와의 경제적 차이가 큰 동부 라트갈레 지역에서 80%가 넘는 인구가 반대표를 던졌을 정도로 유럽연합에 대한 반대가 거셌다. 라트갈레에 라트비아 총 인구의 3분의 1일 살고 있음에도 유럽연합 구조기금 혜택이 저조해 부와 재정이 집중돼 있는 리가와의 도농격차가 더 벌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재 발트3국은 에스토니아의 비준만 남겨놓고 있다. 에스토니아 내에서도 EU헌법 회의론자들과 찬성론자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러시아와 유럽연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회의론자들도 유럽연합 자체에 대한 불신보다 단지 과거 소련의 수도가 모스크바에서 브뤼셀로만 바뀌는 것 아니겠냐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 서진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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