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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수상이 올 초부터 계속된 고이즈미 일본 수상의 끈질긴 구애에 수개월째 '무응답'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과 관련 해석이 분분하다.

고이즈미 일본 수상은 올 1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5~6월 중 샤론 이스라엘 수상의 일본 방문을 추진해 왔다. 이는 일본 측의 대중동정책 변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으로, 고이즈미 수상은 이-팔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며 팔레스타인 수반 아바스와 샤론 이스라엘 수상의 동시 초청을 시도했으나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게 됐다.

이스라엘 최대신문인 <예디옷아하로노트> 6월 12일자는 '수치당한 일본'이란 제하의 보도에서 "8월 중순 시작되는 가자 철수 완료 이전에는 일본 방문은 불가능하다"는 샤론 수상 측근의 말을 인용, 사실상 고이즈미의 초청계획이 실패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일본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공고화를 모색하던 일 관료들은 최근 계속된 방문 요청에도 불구하고 수개월째 무응답으로 일관한 샤론 수상의 태도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위로 끝난 네번에 걸친 고이즈미의 구애

지난 3월 9일, 일본 외무성의 중동 아프리카 국장 요시카와 모토히데는 이스라엘 샤론 수상과 팔레스타인 수반 아바스를 일본으로 초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이즈미 수상의 중재 아래 5월말 일본에서 아리엘 샤론 수상과 마흐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의 3자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것. 당시 일본 주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 대표부 모두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 아바스는 지난 5월 16일 사흘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의 샤론 이스라엘 총리 초청계획은 보다 적극적이었다.

이스라엘 외교부에 따르면 고이즈미 일본 수상은 적어도 4차례에 걸쳐 샤론 수상의 방문을 제안해왔다. 일본 정부가 샤론 수상의 방일을 위해 본격적인 외교작업을 벌인 것은 지난 1월, 일 외상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시작됐다. 일 외상 노브타가 마키무라는 이스라엘을 이 자리에서 고이즈미 수상의 초청의사를 전달했다. 이어 지난 4월, 이스라엘 부수상이며 산업 무역장관을 겸한 에후드 올머르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일본 측은 다시 한 번 샤론 수상의 방일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샤론 수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일본 고이즈미 수상은 지난 5월 25일 일본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저를 찾아 샤론 수상의 방일을 직접 제안했다. 사진은 이스라엘 전통음식 펠라펠을 먹고 있는 고이즈미 일본 수상. 이스라엘 일간지 <예디옷아하로노트> 5월25일자 1면.
이쯤 되자 고이즈미 수상 본인이 직접 나섰다. 5월 중순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 아바스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일본 수상은 직접 샤론 총리가 일본을 방문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리고 지난 5월 24일, 고이즈미 수상은 아예 일본 주재 이스라엘 대사공관으로 직접 찾아갔다. 당시 외교적으로도 관례가 드문 고이즈미 수상의 이스라엘 대사공관 방문은 '고이즈미의 저녁'이란 제목의 핫뉴스를 만들기도 했다. 저녁 만찬을 겸한 이스라엘 대사관 주최의 한 음악회에 고이즈미 수상이 4명의 보좌관들을 대동하고 찾아간 것.

"일본에 온 지 채 1년도 안 되었는데, 내 공관에서 일본 수상을 맞다니…" 이스라엘 대사 엘리코헨은 그날 저녁 대사 공관에서 만찬과 음악회를 함께한 고이즈미 수상과의 만남에 감격으로 답했다.

이스라엘 대사관에 해당 국가의 수장이 찾아간 것은 이스라엘 외교부로서도 극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수많은 일본 현지 기자들이 공관 앞에 진을 쳤다. 다음날 이스라엘 언론인 <예디옷아하로노트>도 메노라(유대국가 상징물) 앞에서 펠라펠 이스라엘 전통음식을 먹는 고이즈미 수상의 사진을 일면 헤드라인에 배치했다.

"샤론 수상을 존경한다. 언제든 샤론 수상의 방문을 환영한다."

고이즈미 일본 수상이 모든 행사를 마치고 떠나기 전 대사공관에 남긴 말이다. 결국 고이즈미 일본 수상은 이 한마디의 구애를 전하기 위해 대사 공관을 찾은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수상이 방문해 줄 것으로 예정한 5, 6월이 지나가는데도 아직까지 샤론 수상은 이렇다 할 대답도 없이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방일을 제안한 일본의 체면만 적지 않게 손상된 것.

석연치 않은 이스라엘의 방일 거부, 이유는?

지난 5월 중순 팔레스타인 수반의 마흐무드 아바스의 일본 방문은 중동 평화에 대해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고이즈미 수상을 한껏 고무시킨 순간이었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개의 국가 공존 체제를 지지하면서 앞으로 이스라엘과 수교관계가 없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 아시아권 회교 국가들과의 수교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시아에서 일본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인 중동평화에 공헌하겠다는 자평도 이어졌다.

그러나 후속작업인 샤론 수상 방일 계획은 초청 시한이 다 되어가는 데도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유대인 학살 역사박물관 개관식에 일본만 초청대상에서 제외했던 이스라엘 측의 처사를 떠올려, '이스라엘은 일본을 초청하지도 않고, 초청받지도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3월 15일 예루살렘에서 열린 유대인 학살 역사박물관 개관식에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일본을 초대하지 않았다. 이 행사에는 당시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세계 40개국 정상들과 장관들이 참석했으며, 95년 고 이츠하크 라빈 수상의 장례식 이후 이스라엘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국제적 행사였다.

이스라엘 수상의 무응답에 대해 일본 외교부는 "8월 가자 철수와 관련된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 때문일 것으로 안다"며, "아직 어떠한 확실한 답변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주재 이스라엘 대사 엘리코헨은 이스라엘 일간지 <예디옷아하로노트>에 단순히 가자 철수 때문만은 아니라고 전해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암시했다.

현지 분위기를 종합해 볼 때 이번 고이즈미 수상의 샤론 수상 초청 무산은 다음 두 가지의 견해에서 기인된 것으로 본다.

첫 번째는 지금 시기가 세계열강들이 이-팔 평화정착 단계에 앞 다퉈 공헌경쟁을 벌이는 시기라는 점이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내부적인 여러 문제에 봉착해 있지만, 팔레스타인 수반 아바스 체제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협상이 진전을 보이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중동을 방문했을 때 모스크바 중동평화회담 개최를 제안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당시 이스라엘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서 그간 중동평화 외교에 이렇다할 기여도 없었고 노력도 보이지 않던 일본이 갑자기 중동평화의 해결사를 자처하며 이-팔 두 정상을 초청, 중동평화의 결실을 자신들의 공으로 가져가려 한다는 데 대한 반감이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일본이 경제 대국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역사의식이나 대 이스라엘 관계에서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주재 한국대사관의 한 외교관의 말을 빌자면 이스라엘의 대 아시아권 외교에서 일본은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샤론 수상이 중동평화의 해결사를 자처하는 일본에 간다는 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것.

상당수의 이스라엘 네티즌들도 "샤론 수상은 스시(김밥) 보다 피자를 더 좋아한다" "일본에 가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라. 일본은 침략적인 자신들의 평화 방법을 가르칠 텐데, 20세기 그들의 역사를 보라, 자신들의 실수에서 무엇을 배웠는가?"라며 샤론의 무응답을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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