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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연구기금의 주요사업 내역이 담긴 2003년도 연차 보고서 표지. 공교롭게도 배경지도에 있는 동해의 영문 지명은 일본해(Sea of Japan)으로 되어있다.
ⓒ 아시아연구기금
연세대학교가 10년 전 극우성향의 일본인 사업가로부터 받은 지원금이 또 다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연세대는 기금설립 초기부터 물의를 빚은 자금을 편법으로 운용하다가 120년 전통의 학교 이미지가 실추될 위기에 처했다.

연세대 교수협의회는 30일 <새롭게 시작된 반민족적 친일의 역사 : 누가 일본 극우세력의 검은 돈, 아시아연구기금을 연세로 끌어들였는가>라는 15장 분량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의 골자는 일본의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일본재단의 출연기금이 '아시아연구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0년간 연세대에 유입되었다는 것.

교수협의회는 "아시아 연구기금은 아시아 침략을 '대동아 해방'으로 보는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의 역사관을 그대로 계승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온상이었다"며 정창영 총장을 비롯해 전현직 총장 3명과 정갑영 교무처장 등이 기금 운영에 참여해왔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연구기금은 법적으로는 연세대와 무관하지만, 연대 전현직 교직원들이 연구기금의 이사진을 장악하고 있고 학내에 사무실(새천년관 7층)을 두는 등 연세대가 사실상의 운영주체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10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는 정창영 연세대 총장이 이사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박태규(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장·경제학과 교수), 한성신(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김달중(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정구현(삼성경제연구소장, 전 연세대 경영대학원장)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 손자의 국적포기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공로명 전 외무장관이 이사를 맡고 있고, '행담도 의혹'에 휩싸인 문정인 전 대통령자문동북아시대위원장도 연구사업을 기획하는 프로그램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교수협의회 "총장이 대국민 사과하고 기금 해체해야"

교수협의회는 정 총장 및 학교당국에 1학기가 끝나기 전까지 대 국민사과와 기금해체, 관련교수들의 보직 해임 등을 요구했다. 교수협의회의 움직임에 학내에서도 이번 기회에 연구기금 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31일 교수협의회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학생위원회는 "수많은 연세인들이 과거사청산을 제기하는 지금, 학교가 앞으로는 학내친일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세미나까지 열어놓고는 뒤로는 일제의 A급 전범을 비롯한 극우세력의 돈을 받아쓰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냐?"며 교수협의회의 요구사항을 이행해줄 것을 촉구했다. 학생위원회는 1일 정오 교내에서 항의시위를 계획중이다.

아시아연구기금은 그 동안 언론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받았지만, 학내에서 이 문제가 9년만에 다시 공론화됨에 따라 기금 존폐를 둘러싼 논란의 가닥이 잡힐 지 주목된다.

▲ 95년 12월4일의 한일협력연구기금 조인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당시 연대 총동문회장 자격으로 조인식에 참석했다.
ⓒ 조선일보 PDF
문제가 된 아시아연구기금의 뿌리는 95년 일본선박진흥회(현 일본재단)가 출연한 10억엔의 한일협력연구기금.

연세대는 같은해 12월 4일 사사카와 료헤이 일본선박진흥회 이사장(이하 당시 직책)과 송자 총장, 방우영 총동문회장, 이원경 전 외무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조인식을 가지기도 했다.

연세대는 "동북아 안보와 경제협력, 문화교류 등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기금을 운용하겠다"고 했지만, 일본선박진흥회의 설립자 사사카와 료이치가 일본의 1급 전범으로 3년간 수감된 전과자이고 재단 기금이 경정(모터보트 도박) 수익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학내에서 큰 파문이 일었다.

일부 학교들이 사사카와 이사장의 전력을 문제삼아 기부를 거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연세대는 더더욱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됐고, 급기야 교수평의회의 반대성명과 총학생회의 기금반환 운동이 벌어졌다.

연세대는 이듬해 5월 "한일협력기금 반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같은 약속은 결국 '노력'에 그쳤다. 연세대는 문제의 기금을 아시아연구기금으로 개칭하고 국내 지원금 5억원을 더해 매년 20여 명의 국내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급해왔다.

그러나 아시아연구기금은 교수협의회의 문제제기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아시아연구기금 "일본쪽 이사들은 기금운영에 불간섭"

연구기금 사무총장을 맡고있는 유석춘(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본재단 설립자의 이력 때문에 재단 출연금을 극우세력의 돈으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본재단쪽 이사들이 새역모(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핵심활동가들이라는 것도 확인되지 않았고, 이들은 이름만 올려놓았을 뿐 기금운영에 간섭하는 일이 없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유 교수는 심지어 "일본쪽 이사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96년이나 지금이나 학내에서 연구기금이 논란이 되는 것은 '학내 정치' 때문이다. 전현직 총장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이를 자꾸 이슈화하려고 하는데, 96년에 반대했다가 나중에 연구기금을 받은 교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시아연구기금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학내에서는 연구기금의 존재 자체가 학교 이미지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을 우려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연세대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ififiuui)은 "윤동주라는 자랑스러운 선배를 가지고 있는 우리학교에서 A급 전범의 돈이라니... 이번 일을 그냥 넘긴다면 연대는 통일연세가 아닌 친일연세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네티즌(hj801)도 "그런 돈을 받으려고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는 교수들이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는 연구 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며 기금 해체를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몰이에 당해서 학교재정에서 돈을 내주어야 하나? 일본에 돈을 돌려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친일청산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연구소를 설립하자"는 의견도 함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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