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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카레, 에드가 앨런 포, 아가사 크리스티, 그리고 김성종. 이들의 공통점은? '007스파이 하우스'의 중요한 멤버라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세계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도서관으로서 국내 최초로 설립된, 그리고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위치한, 김성종 추리문학관에 가면 이들 유명한 추리 소설가들을 맘껏 만날 수 있다.

▲ 화강석과 유리의 추리 궁전
ⓒ 김대갑
지난 1992년 3월에 이 시대의 탁월한 추리소설가인 김성종씨가 사재를 털어 건립한 추리문학관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획기적인 문화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시대를 앞서 가는 행위였고, 그래서 고독하고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는데, 추리문학관은 주로 추리문학 관계 자료들을 모아둔 사립전문도서관으로 개관한 특이한 시설인 셈이다.

▲ 추리문학관의 랜드마크
ⓒ 김대갑
올해로 개관 14년째를 맞는 추리문학관은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위치하여 부산의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책자나 인터넷 홈페이지마다 추리문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장소로 소개될 정도로 타지에서 더 성가를 높여온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추리문학관은 지하 1층, 지상 5층의 건물 안에 추리소설 6천권을 포함해 모두 3만여권의 장서를 구비해 놓았는데, 외국의 도서관 전문교수들이 연구도서관으로써 다녀갈 정도로 국외에서도 특이한 장소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 북카페를 연상시키는 1층의 분위기
ⓒ 김대갑
추리문학관 입구로 막 들어서면,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는 것은 입구에 붙은 '셜록 홈즈의 방'이라고 이름 붙은 작은 포스터이다. 그 생각지도 못한 환대를 받으며 1층에 들어서면 은은한 커피향과 바다향이 어우러진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카페가 연상된다. 원탁과 긴 사각 테이블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 벽돌 틈에 책들이 꽂혀 있는 이 곳엔 일반 문학도서는 물론 신문이나 최근 잡지도 볼 수 있다.

▲ 셜록 홈즈의 파이프가 이채롭다
ⓒ 김대갑
▲ 본격적인 도서관의 분위기가 물씬
ⓒ 김대갑
일반인은 4천원, 학생은 3천원을 내면 차 한 잔을 대접받고, 하루 종일 책을 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1층이 '셜록 홈즈의 방'이라면 2층은 '여명의 눈동자'라고 불린다.

1층이 다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도서관보다는 카페 분위기가 넘친다면 2층부터는 본격적으로 도서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리고 이곳에선 대형 유리창을 통해 청사포의 넓고 푸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물론 3층이나 4층에 가면 이 조망은 훨씬 좋아진다.

▲ 책을 한 번 보실까요
ⓒ 김대갑
참 특이하고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문학사나 단편적인 소설을 통해서 어렴풋이 이야기만 듣던 세계 추리문학계의 거장들을 생생한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거장들은 때론 엄격한 얼굴로, 또 때론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포근한 인상으로 도서관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는데, 독자들은 이 거장들과 푸른 바다를 앞에 놓고 인생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이들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추리문학관에는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아득한 그 무엇이 있다.

▲ 창에서 나오는 빛의 조화
ⓒ 김대갑
▲ 멀리 청사포의 전설이 보인다
ⓒ 김대갑
이 추리문학관을 세운 장본인인 김성종씨는 전남 구례 출생으로 지난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1970년 <현대문학> 소설 추천 완료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1986년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하는 등 우리나라 추리문학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소설가이다.

<최후의 증인>이나 <제5열> 등은 가장 많은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이기도 한데 특히 <최후의 증인>은 과거 최불암씨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이미연과 안성기, 이정재가 출연한 <흑수선>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이 <최후의 증인>은 당시로선 아주 시대를 앞선 작품이다.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를 인간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승화시킨, 정말 명작 중의 명작이라 할 수 있다.

▲ 3층에서 무슨 책을 볼까
ⓒ 김대갑
추리문학관은 단순한 전문도서관 역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산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수시로 모여 문화를 논하는 '문화사랑방' 역할과, 뜻있는 이들이 모여 사회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발언대의 임무를 맡고 있기도 하다.

'추리문학의 밤', '금요일의 시인들', '지식강좌' 등을 수시로 개최하고 있는데, 근래 들어 계속 누적되는 적자로 이들 행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추리 문학관은 부산이, 아니 한국이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이 독보적인 문화공간을 정부나 지자체가 앞장서서 지원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다른 사설 문화도서관이 많이 생겨 이 땅의 갈급한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 원형 나선 계단에서 무엇을 추리해볼까
ⓒ 김대갑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진한 원두커피 향과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서향에 취한다면 이 보다 더한 즐거움은 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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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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