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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릉 유적지를 찾아 휴일을 즐기는 관람객들.
ⓒ 한성희
계절의 여왕답게 화창한 날씨에 오전 공릉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많은 차들이 들어차 있다. 석탄일과 휴일이 겹친 일요일(15일)이면서도 스승의 날이라 오전부터 많은 관람객들이 공릉을 찾았다.

주차장 관리 아줌마가 인사를 하면서 울상이 돼서 하소연한다.

"저기 차들이 공릉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우겨요. 못 들어간다고 하는 중이에요."

음료수와 먹을 것 등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능 안으로 들어간다 못 들어간다 실랑이를 벌인 모양이다. 모든 유적지가 그렇듯이 차는 주차장에 세워야 하고 도시락 등 음식물은 들고 들어갈 수 있지만 술이나 공이나 운동 기구, 자전거, 악기 등은 아예 반입이 금지된다.

부처님 오신 날, 공릉 앞 실랑이

문화유산해설사 사무소로 향하자 수표소 입구에 봉고차 한 대와 승용차 한 대가 서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왜 차가 저기까지 들어왔을까? 황급히 가보니 수표소 이 여사와 오씨 아저씨가 관람객과 차가 못 들어간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교회에서 야외 예배를 보러 온 모양이다.

"차가 여기까지 들어올 수도 없는데 능 안으로는 못 들어갑니다. 손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 것만 들고 가시고 차를 얼른 빼세요."
"저기서 들어가라고 했는데 왜 못 들어갑니까?"
"누가 들어가라고 했어요?"
"주차장에서요."
"주차장은 주차장만 관리하는 거지 여기 들어가라고 할 권리가 없어요."

오씨 아저씨는 빨리 짐을 내리라고 언성을 높였다. 방금 주차장에서 차를 못 들어가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들어온 길인데 거짓말도 잘한다. 다른 길로 가는 척하면서 들어와서 장애물을 치우고 수표소까지 차를 몰고 들어온 것이다.

그래도 짐이 많으니 차를 몰고 들어가겠다고 우겨대는 교회 사람들과 오씨 아저씨와 이 여사의 입씨름은 계속 됐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여기는 공릉 관리소장이라도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유적지인 왕릉은 관리소장뿐 아니라 문화재청장이나 대통령이라도 능 안에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없다.

"여기까지 차를 몰고 들어온 것도 잘못된 거구요. 이 안은 유적지라 더구나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이 역사 유적지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거 아니에요? 이런 행동을 하면 안되지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소리에 그제서야 짐을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국통, 김치통, 음식이 들은 커다란 프라스틱통, 음료수 박스 등등이 마치 이삿짐을 방불케 했다.

많은 신도들이 왔으니 하나씩 들고 들어가는 것이 그리 힘들지도 않을 텐데 몇 걸음 걷기 싫다고 차를 몰고 들어가겠다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니 유적지의 시민의식이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서도 두어 차례 실랑이가 더 벌어졌다.

기타를 맡기고 들어가라 하자 또 한차례 항의가 왔고 벤치처럼 생긴 커다란 목재 평상을 가지고 들어가겠다고 우기는 것도 막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스승의 날이라면서 난초가 담긴 화분까지 두 개 실어온 것을 보니 교회를 통째로 옮겨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겨우 한숨 돌리자 또 다른 교회에서 입장하면서 한 차례 입씨름이 오갔다. 입장객이 밀리는 이런 휴일에는 입장객을 파악하고 표를 받는 것만도 바쁜 이 여사는 기타를 들고 들어가려는 교인과 또 다툼을 벌여야 했다.

"이 기타 무지 비싼 건데 없어지면 책임질래요?"
"책임질 테니 맡기고 들어가세요."
"기타 연주 안 할 테니 그냥 가지고 들어갈래요."
"안돼요."

곱지 않은 태도로 몇 번을 더 우겨보다가 안되겠는지 차에 갖다두겠다고 한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렇게 우겨대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슨 심보인가. 교회에서 왕릉으로 야외 예배를 나오면 무척 피곤하다. 수십 명에서 100여명이 왕릉이 떠나가라 찬송가를 계속 불러대서 관람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항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유적지에서 제발 찬송가 부르지 마세요

태릉에서는 아예 찬송가 부르는 것을 금지해 버렸다고 하는데 유적지에서 고성방가와 음주가무를 금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찬송가도 금지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교인들은 찬송가 부르는 것을 고성방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교인들에게는 신의 찬미겠지만 듣는 사람에겐 소음 공해라는 것을 생각해서 제발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공중도덕을 지켰으면 좋겠다.

이날 하루만 해도 무려 다섯 교회에서 야외 예배를 왔다. 왕릉에 찬송가가 곳곳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관리 아저씨들이 순릉 쪽에서 인상을 쓰고 오면서 저쪽에서 앰프까지 사용한다고 좀 가보라고 한다. 차로 들어가겠다고 우겼던 교회 사람들이 몰래 가지고 들어간 모양이다.

이 사람들이 정말? 교회를 다니면 신이 내린 면책특권이라도 있는 줄 아는 모양이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도 화가 치밀어서 순릉으로 갔다.

순릉으로 가는 도중에도 찬송가는 영릉 숲에서도 들려왔다. 야외에서 예배를 보고 교인들과 모처럼 점심을 나누며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유적지에서 찬송가는 생략했으면 좋겠고 정 부르겠다면 1절만 조용히 부르고 그치는 예의도 좀 갖췄으면 한다.

순릉에 가보니 듣던 것과는 달리 마이크는 사용하지 않고 찬송가를 부르는 중이라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조금 있으니 김 소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스피커를 사용한다는 보고를 듣고 온 모양이다.

"공릉에서도 찬송가를 금지했으면 좋겠네요."
"미리 교회에서 단체로 오겠다고 전화 문의가 올 때는 주의를 줍니다만 이렇게 예고 없이 오는 경우에는 도리가 없어요."

교회에서 왔다고 다 시끄러운 것은 아니다. 영릉에 있던 한 교회는 본받을 만했다. 찬송가 소리도 들리지 않은 걸로 보아 생략한 듯했다. 나중에 그 곳을 들르자 비각 뒤편에 쌓은 박스와 음식이 담긴 그릇을 치워야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1000여명의 관람객이 붐빈 석탄일,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입구로 나오던 관람객과 교인의 입씨름이 들렸다.

"교인들 찬송가 좀 안 불렀으면 좋겠어요. 시끄럽잖아요."
"영혼이 지옥불에 떨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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