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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도 지우지 못할 '살의 기억'
- 권지예 소설집 <꽃게 무덤>


ⓒ 문학동네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44)가 신작 소설집을 냈다. <꽃게 무덤>(문학동네). 표제작은 모딜리아니 또는, 에곤 실레의 음울하고 기형적인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해지는 서쪽 바다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 했던 여자. 우연히 그곳을 찾았다가 여자를 구해내는 남자. 남자의 집으로 온 여자는 미친 듯 게살에만 탐닉한다. 폭풍처럼 거칠고, 용암처럼 뜨거운 섹스를 끝낸 후 벌거벗은 몸으로 간장에 절여진 게의 다리와 몸통을 소리내어 발라먹는 여자. 그 여자를 두려운 눈길로 훔쳐보는 남자.

여자의 지나친 '게 탐식'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여자의 옛 연인이 서해에서 죽었고, 게는 익사한 시체를 가장 먼저 뜯어먹는 바다생물 중 하나라는 상식만이 탐식의 이유를 푸는 열쇠일 뿐. 여자는 혹시, 게가 아닌 애인의 살과 영혼을 파먹고 있었던 건 아닐지.

'꽃게 무덤'은 권지예의 소설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도적 가벼움에서 진중함으로, 생에 대한 조소에서 아픈 성찰로, 삶의 문제에서 죽음의 문제로. 이는 단지 외형만의 변화일까, 아니면 자신과 자신의 문학에 대한 성찰 끝에 온 방향전환일까?

또 다른 수록작 '산장카페 설국 1Km'도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챌 매력적인 작품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물론, 인간도)은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그 사라짐이란 끝이 아닌 시작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명치끝을 시리게 한다. 소품이긴 하지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도 감칠맛이 색다르다.

동료 소설가 전경린은 "배배 꼬는 계산이나 내숭이 없어 통쾌하고 천연덕스럽고 개운하다"는 말로 권지예의 최근 작품에 관심을 표했다.

가슴 속, 아직도 걷어내지 못한 철조망
- 전성태 소설집 <국경을 넘는 일>


ⓒ 창비
거대역사에 짓밟힌 개인의 황폐와 사회적 폭압에 의한 인간의 피폐 그리고, 그 황폐와 피폐의 극복이 문학적 주제 혹은, 소재가 되었던 시대는 갔다.

그러나, 작가들의 관심 유무와는 별개로 여전히 우리의 일상은 누군가 휘두르는 무형의 폭력에 상처받고 있다. 바뀐 세기에도 마찬가지다.

전성태(36)는 30대 작가로서는 드물게 이 '상처'에 주목한다. 매사 진지하고, 농담이 없는 그의 성정 탓이리라. 첫 소설집 <매향> 이후 오랜 시간 침묵했던 그가 6년만에 새 작품집을 들고 독자들을 찾았다. <국경을 넘는 일>(창비).

캄보디아와 태국을 여행하는 한국 사내. 여행 도중 만난 동독 출신 젊은이와 20대 초반의 자유분방한 일본여성, 그리고, 캄보디아 국경을 지키는 경찰은 사내에게 '나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국민'이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던져준다. 국경의 철조망을 넘는 것이 죽음으로 직결되는 나라. 그 나라가 강제한 시스템이 사내의 일상을 파괴한 것이다.

전세계 여행객 중 누구도 긴장하지 않는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의 다리에서 저 혼자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가슴 졸이다 어린아이의 장난스런 호각소리에 미친 듯 뛰어가는 사내를 묘사한 대목은 '분단국의 국민'인 기자를 아프게 했다. 우리들 가슴 안에 여전히 건재한 국경의 철조망. 전성태는 그 철조망을 걷어내는 방법을 묻고 싶었을까?

위의 언급만을 보고 <국경을 넘는 일>이 딱딱하고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함께 수록된 '소를 줍다'는 마냥 낄낄대며 웃을 수 있는 '그리운 그 시절' 이야기고, '퇴역레슬러' 역시 질박하고 촘촘한 전성태 문장의 행간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한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자음과모음
고우영의 만화 <열국지>(자음과모음)

수많은 영웅과 호걸이 천하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던 춘추전국시대. 그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열국지>를 고우영이 만화로 옮겼다. 이번에 출간된 것은 80년대 초반 군사독재의 검열에 의해 삭제된 장면을 복원시킨 이른바 '무삭제 완전판'이다.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를 보기 편하고, 읽기 쉬운 만화로 새롭게 펴내 온 고우영. 비단 <열국지> 뿐일까. 그가 그리고 쓴 <삼국지>와 <십팔사략> 등을 다시 펼쳐볼 독자들에겐 4월 말 그의 죽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김종해·김종철 공동시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문학수첩)
이순을 훌쩍 넘긴 형 김종해(64), 회갑을 목전에 둔 동생 김종철(58). 두 형제시인이 부르는 눈물겨운 사모곡. 모든 시인의 시와 존재의 고향은 결국 어머니였음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장석주 평론집 <풍경의 탄생>(인디북)
'문학의 죽음'이 끊임없이 이야기되는 세상이지만, 작가들은 '쓰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작품들을 해석해야 할 평론가의 몫도 여전할 터. 장석주의 자유로운 프리즘을 통과한 오늘의 한국문학을 본다.

요코야마 유지의 <선사예술기행>(사계절)
선사시대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빛 한 점 들지 않는 컴컴한 동굴 속에 그림을 그렸을까? 그리고, 그림의 소재가 된 들소와 사슴은 '풍요'를 비는 주술적 소재에 불과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질만한 책이다.

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휴먼앤북스)
'천하의 바람둥이' '영악한 사기꾼'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카사노바. 그는 과연 '여자를 등치며 먹고 산' 삼류 건달에 불과했을까. 경직된 시대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자유를 꿈꾸어온 선각자로 평가받을 수도 있는 한 헌걸 찬 사내의 일대기.

소설가 김성동의 <김성동 서당>(청년사·전2권)
뛰어난 한문적 소양을 지닌 소설가 김성동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펴낸 책. 기초 한자어 공부를 통해 사물의 기본개념을 깨닫게 해준다.

열국지 1 - 고우영만화대전집 14

고우영, 우석출판사(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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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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