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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12년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도록 감금당했다면? 7세의 소녀가 캄캄한 방에 갇힌 채 학대당하다가 굶어죽었다면? 그리고 이 어린 소년소녀를 가두고 학대한 사람이 그들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라면?

잇따라 발생한 상상을 초월한 잔인한 아동학대 사건에 독일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영유아 감금, 폭행... 가해자는 '부모'

▲ 황폐한 집에 방치된 아이들 모습. 독일 시사주간지 <디 짜이트> 4월 21일자.
사례1… 2005년 4월 18일. 독일 북부의 랑엔호른에 사는 14세의 소년이 생후 12년간 아버지에 의해 집 안에 감금된 채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학대당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15평의 좁은 집에 엄마와 함께 갇혀 있던 미하엘(가명)은 2년 전 아빠가 사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미하엘의 아버지는 함부르크의 이름난 회사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는데 그는 아내의 신분증을 없애고 집밖 출입을 완전히 통제한 채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다스렸다. 그의 직장 동료들은 물론 주변 이웃들도 언론보도를 통해서야 미하엘의 존재를 접했다.

미하엘은 <함부르크 모르겐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빠는 나를 학교에 못 가게 했어요, 늘 창문을 통해 다른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걸 지켜봤어요"라고 말했다.

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미하엘의 엄마는 "남편이 나보다 나이가 많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두려웠다"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가능한 많이 아이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했다"라고 변명했다.

사례2… 2004년 3월. 함부르크 옌펠트 지역에서 7세의 여아 제시카가 부모의 학대 속에서 아사한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제시카의 키와 체중은 110cm, 9.5kg.

수년 동안 난방도 장난감도 없이 빛이 차단된 캄캄한 방에 갇혀 있다가 굶어죽은 것으로 밝혀진 제시카의 몸에서는 학대를 당하면서 강제로 삼켜야 했던 카펫 조각, 머리카락 등이 나왔다.

함부르그 일간지 <함부르그 아벤트블라트>는 "검은 비닐로 창문이 가려진 채 딱딱한 침대 하나만 놓여 있는 캄캄한 방에서 아사했던 제시카는 도와달라고 외칠 힘마저 없어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 시사주간지 슈피겔 온라인판에 실린 카롤리나 사건의 가해자, 엄마와 동거남 기사. 기사의 제목은 "나는 그저 아이가 조용하기만 바랐다".
사례3… 2004년 1월. 3세 카롤리나가 심하게 학대당한 채 병원 여자화장실에 버려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카롤리나의 엄마와 동거남.

카롤리나의 사망은 엄마가 범죄 전력이 있는 마약중독자와 동거에 들어간 뒤 3주만에 발생했다.

이 기간에 카롤리나는 잠을 자지 않거나 밥을 늦게 먹는다는 이유로 심하게 구타당했으며 영하의 날씨에 캄캄한 지하실에 갇히기도 했다. 아이가 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웃들은 카롤리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경찰조사 결과, 카롤리나의 엄마는 심하게 다쳐 부어오른 아이의 머리를 빡빡 깎은 후 "이 후레자식 좀 봐, 꼭 권투선수 같지 않아"라고 비웃으며 남편에게 말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살인죄로 기소된 카롤리나의 아빠 메흐메트는 재판과정에서 "아이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단지 좀 조용하기만 바랐다, 자네타(엄마)도 아이를 때리고는 했다. 계획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즉흥적으로 그랬을 뿐이다"라고 법원에서 말했다.


가해자가 된 희생자들... 어릴 적 기억은 '학대뿐'

경찰에 따르면 독일내에서 학대로 사망하는 4세 이하 아동의 숫자는 매년 100여명 수준이며, 2003년 한 해 동안 경찰에 집계된 아동학대 사건은 4천여 건에 달했다. 그러나 경찰은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아동학대를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알려진 사건은 전체의 10% 수준이라는 것.

한편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의 가해자 중 90%가 가족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5%가 제 3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가해자의 대다수는 부모(특히 의붓 부모)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가해자가 된 부모의 대부분이 어린 시절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함부르크 대학 청소년 심리클리닉 센터장 리더제어 교수는 <함부르크 아벤트블라트> 3월 4일자에서 "학대, 폭력 등을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람들이 나중에 부모가 되어서 자신이 겪었던 방식으로 아이에게 반응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며 "제시카 사건은 아동학대 사건을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 19세 엄마로 부터 방치된 18개월된 여아. <디 짜이트>
함부르크 법의학자 자이페트의 조사에 따르면 아동 학대 가해자의 상당수가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태어났거나,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났거나 고아 출신 등이며, 사건 당시 가해자의 17%만이 직업을 갖고 있었다.

아이를 학대하고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고 방치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단골 선술집을 드나들었던 제시카의 엄마 말리에스(36)는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말리에스는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하면서 성장했고 나중에는 보육기관에서 자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엄마 또한 20년 동안 말리에스와 연락을 두절한 채 살았다.

새로운 동반녀의 3세 여아 카롤리나를 학대해 죽인 터키계 독일인 마호메트도 어릴 때의 열악한 성장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마호메트는 범죄심리학자의 검사 결과 사디즘적 증상, 마약 중독 등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철저히 파괴된 상태라는 소견을 받았다.

사회적 무관심과 폭력 묵인, 아동학대 부추겨

개인적 요인 외에 사회적 요인 또한 중요한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실업, 낮은 교육수준, 사회적 관계의 미비, 극도로 열악한 가정의 물리적 환경, 알코올 중독, 경제적 빈곤 등이 가정 내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면서 결국 가장 약자인 아이들이 그로 인해 희생되기 쉽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아동학대는 경제적으로 하위계층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하위계층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 휴가나 아이양육 보조인을 고용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 경제적으로 하위계층에 있는 살아가는 사람 등의 경우 스트레스를 해소할만한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빈곤은 이러한 아동학대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제적 빈곤 속에서도 아동을 학대하지 않는 다수의 가정이 존재하고 있으며 아사한 제시카 사건의 경우도 절대적 빈곤이 아닌 부모의 비정상적 행동으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디 짜이트>는 4월 21일자에서 아동학대를 유발하는 근본적 요인으로 사회에서 존재하는 아이에 대한 폭력을 허용하는 분위기를 지적했다. 지난 2000년부터 아이에 대한 체벌, 폭력 금지가 법적으로 명문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교육' 명목의 체벌, 폭력이 묵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디 짜이트>는 또한 일부 법의학자들의 말을 빌어 관공서의 방관적 자세, 사회적 무관심, 학대당한 아이를 대하는 의사의 인식 부족 등이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적인 이유로 학대당한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충분히 확충하지 못한 채 학대부모에게 아이들을 다시 돌려보내는 관광서나 아이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충분한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환자정보 보호'라는 미명하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의사들,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 살던 아이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타인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그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분위기 등이 그것이다.

이제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 아이들을 아동학대로부터 보호하려면? 사진은 베를린 시내로 견학온 초등학교 학생들.
ⓒ 강구섭
제시카 사건 이후 지역신문 <함부르크 아벤트블라트>에 올라온 독자의견은 아동학대 사건을 접한 시민들의 참담한 심정과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을 대변하고 있다.

"어떻게 아이를 캄캄하고 차가운 냉방에 몇 개월씩 가둬둘 수 있을까. 어떻게 먹을 것, 마실 것을 달라고 간청하는 굶주린 아이의 말을 차갑게 외면할 수 있을까. 제시카 주변에 살았던 이웃들, 가해자의 친구들이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 있는 익명성, 무관심이 아이의 죽음을 가져왔다. 제시카의 죽음은 아이 부모의 책임일 뿐 아니라 전체 사회, 공공기관, 이웃 모두의 책임이다."


경찰은 아동보호 캠페인을 하거나 공익광고를 통해 선도를 시도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학대를 당하고 있는 아동의 주변에 사는 이웃들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회와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채 학대를 당하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변의 적극적 관심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또한 아동 학대가 발생할 수 있는 '잠재 요인'을 갖고 있는 가정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동시에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게 학대 아동의 경우 부모 동의 없이 입양이 가능토록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함부르크 사회복지단과대 게하르트 주에스 교수는 "청소년청이 남의 집에 참견하는 감시꾼이 아닌 그러한 가정을 돕기 위한 친구, 조력자로서 인식될 때 청소년청과 해당 부모 간의 협력이 가능하다"며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것에 대한 도움을 적극적으로 필요로 하는 부모들에게 교회를 비롯한 전문 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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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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