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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 상사는 아침 6시 반에 출근해서 부하 모병관들과 함께 그날의 모병계획을 치밀하게 작성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여러 번의 작전토의를 거친 후 점심시간이 되면 입대원서를 들고 고등학교 인근의 맥도널드 햄버거 점 등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을 전전한다. 학교가 파하는 오후 2시 45분쯤부터는 모병소에 돌아와 귀가해 있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화를 건다. 초저녁에는 '세븐-일레븐'이나 주유소 등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잡기 위해서다. 저녁 식사 끝나면 밤 10시 30분까지 학생들이 다닐만한 서점이나 쇼핑센터, 공원 등을 배회한다."

▲ 이라크에 파병할 미국의 빈곤층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미 해병 모병관들. 영화 <화씨 9/11>의 한 장면.
위는 지난 3월 19일자 <디트로이트 뉴스>가 이라크 전 2주년을 맞아 특집기사를 내면서 메릴랜드 모병소의 모병관이자 이라크 전에 참전했던 스펄전 셸리 상사의 하루 일과를 그린 것이다. 모병관 셸리 상사의 이 같은 일상사는 지난해 여름 출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에 비친 장면과 매우 유사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시종 비아냥거린 <화씨 9/11>에는 모병관들이 가난한 동네의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앳되고 어수룩해 보이는 청년들을 쫓아다니며 군대에 입대하라고 조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무어가 의사당 앞에서 출근하는 의원들을 붙잡고 "당신의 아들을 군대에 입대시키라"며 입대원서를 내밀자 모두가 슬금슬금 내빼는 광경이 등장한다. 무어는 미국에서 군대에 입대하는 청년들이 주로 '돈 없고 힘없는' 청년들이라는 것을 희화적 터치로 그려냈다.

그러나 지난달 19일로 이라크 침공 두 돌을 넘긴 지금 부시 행정부는 장기화 되고 있는 이라크 전으로 말미암아 군 병력의 고갈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들 '돈 없고 힘없는' 청년들조차도 군 입대를 꺼리는 바람에 병력의 충원에 차질이 생겨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라크 전 장기화로 미군 심각한 병력 고갈

"전쟁에 찬성하신다니 의원님의 자제분을 전쟁터로 지원해서 보내주시지요." 영화 <화씨 9/11>의 한 장면.
리처드 코디 육군 부참모장은 지난 3월 중순 의회 청문회에서 "나를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은 과연 2007년에 가서도 현재 수준의 육군 인력이 유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라고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이라크전은 국내외 위협에 대처할 만한 지상군 병력의 전체적인 능력을 저하시켜 왔다고 주장하며 시급한 대책을 촉구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앤 스콧 타이슨 군사전문 기자는 지난 3월 19일 의회와 군사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군사력을 집중해 온 미국은 한반도 같은 곳에서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지상군이 태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미 육군은 베트남 전 당시 40개 사단에 달했으나, 냉전이 끝난 1980년대에는 28개 사단으로 줄었으며, 현재는 18개 사단만 남아있다.

<에이피(AP) 통신>은 지난 4월 16일자에서 지상군 부족으로 예비 병력까지 끌어다 써야 할 상황이 됐으며, 이는 예비군들의 이라크 전 투입비율을 한국전쟁 이후 최고로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육군의 작전 사령관인 제임스 러브레이스 중장은 지난 3월 19일, <디트로이트 뉴스>에 "우리는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근무하는 군인들, 알래스카에서 근무하는 군인들, 그리고 유사시 전투를 위해 배치되어 있던 한국 주둔 군인들까지 끌어와 이라크에 배치했다"고 말한 바 있다.

리처드 코디 장군도 "육군은 충분히 준비 되지 않은 채 이 전쟁을 시작했다"며 "정말 스트레스를 쌓이게 만드는 것은 각 주의 방위군이 7개의 전투여단으로 편성되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여기에다 장비의 노후화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 장비의 30%, 육군 장비의 40%는 이라크에 있는데, 이들은 보통 사용 연한보다 6배 이상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유럽과 서남아시아에 있는 군 장비들은 바닥이 드러나 낡아서 쓸모없는 장비들도 속출하고 있으나 이들을 교체하거나 보충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전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육군 당국의 분석이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지난 3월 8일 <에이피통신>에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해 있기 때문에 북한이나 이란과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현재의 군사력으로 이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특히 미국 내의 각 주 방위군과 예비군이 인력과 장비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투입된 군대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수준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군사력 저하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6개월간 매일 16시간씩 모병 홍보... 4명 응모"

▲ 이라크 전에 반대하는 이라크전 참전군인들의 사이트 IVAW.
그런데 더욱 부시행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미군의 병력 고갈 상태가 쉽게 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스펄전 셸리 상사는 <디트로이트 뉴스>에 "지난 6개월간 매일 16시간씩 모병에 나섰지만 단 4명이 응모했다"면서 "모병이 전투보다 더 어렵다"고 실토했을 정도다.

국방성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4도에는 최근 5년중 가장 낮은 수치의 신병 모집율을 보여 주었으며, 2005년도 육군의 경우, 목표의 75%밖에 달성되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군당국의 신병 모집에 주요 목표물이 되어 온 가난한 흑인 청년들과 비시민권자 청년들의 입대 지원율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는 것도 고민을 더해 주고 있다.

<에이피 통신>은 지난 3월 8일자에서 "한동안 흑인청년들에게 군입대가 인기가 있었지만 이라크 전으로 시들해지고 있으며, 미군 당국은 계속된 모병실적 감소로 고충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 육군의 23%가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최근 수년 동안의 흑인 지원율은 이를 훨씬 밑돌고 있다.

특히 지난 2001년의 911 테러 사건을 기점으로 흑인 모병율은 대폭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군모병 본부의 더글러스 스미스 대변인이 <에이피통신>에 제공한 바에 따르면, 2001년 9월 당시 22.7%이던 모병율이 2002년에 19.9%, 2003년 16.4%, 2004년 15.9%, 올 2월 9일 현재 13.9%로 떨어졌다.

또 하나의 주요 목표물이던 비시민권자 청년들에 대한 모병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시민권 획득의 지름길' 이라는 유혹적 문구를 내세워 미군에 입대하는 비시민권 이민자 출신 병사들의 입대 숫자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흑인-비시민권자 청년들 입대 비율 대폭 줄어

비시민권 입대자 수를 늘리기 위한 국방부의 노력에 대해 노스웨스턴 대학의 군사사회학 전문가인 찰스 모스코스는 <에이피통신>에 "현재 미군은 나라를 위해 죽을 중산층 출신의 아이들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시민권자의 입대를 늘리는 것은 예상된 순서"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비시민권자들의 군 입대 역사는 남북전쟁 때부터 시작된다. 남북전쟁 때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대거 입대했으며 2차 대전 때는 유럽 국적을 가진 10만여 명의 이민자들이 미군에 입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애미 <선 센티널지> 13일자에 따르면, 미국 군대에는 142개국 국적을 가진 3만 명 이상의 비시민권 군인이 있으며, 비시민권자의 미군 지원율은 4%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2002년 7월 부시 미 대통령은 9·11사태 이후 입대한 비시민권 군인들 중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에게는 자동으로 시민권을 주고 만약 비시민권 군인이 사망했을 경우 가족에게 시민권이 돌아가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2003년 11월에는 이들의 시민권 신청자격을 위한 최소 근무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줄였다.

이 같은 시민권 발급의 확대는 보수층으로부터 너무 많은 외국인이 입대를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감소하는 비시민권 입대자의 수는 그러한 우려를 말끔히 잠재웠다.

비시민권 입대자의 수는 2001년 1만1829명에서 2004년에는 9477명으로 20%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시민권 입대자의 수가 26만4832명에서 23만2957명으로 약 12%가 감소한 것과 견주면 매우 큰 폭의 감소율이다.

"인기 없는 전쟁, 목숨 내놓고 군대 왜 가나"

▲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재향군인회 사이트.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흑인과 비시민권자 청년들의 입대 비율이 이처럼 대폭 감소한 것일까.

<에이피통신>은 지난 2004년 8월에 미 육군이 발표한 조사 보고서를 인용 "과거에는 군대생활에서 겪을 부자유함과 다른 직업에 대한 매력 때문에 모병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금은 전쟁에서의 죽음과 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함께 회복되고 있는 경제로 인한 직업시장의 확대와 고졸자들의 대학입학율 증가를 원인으로 들고 있으나, 미 언론과 국방 관계자들은 신규 입대자 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이라는 분석에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전에 미국의 젊은층은 군복무를 그리 위험스런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특히 해외주둔에 대한 매력이 이들을 군문으로 끌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외근무의 매력도 이라크전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복귀가 어려워지고 전쟁 참여에 대한 두려움으로 점차 인기가 시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91년의 걸프전이 소수의 사망자만 남긴 채 100시간 만에 종료되었으며, 1999년 코소보에 대한 공중 공격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았던 것에 비해 현재의 '테러전'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미 육군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특히 부모들이 자녀의 입대를 만류하는 경우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2004년 7월 육군 모병소의 조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백인 자녀의 부모들에 비해 흑인 자녀의 부모들은 군대에 대한 신뢰감이 적었으며, 군복무에 대한 도덕적 반대가 더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경우는 비시민권자 자녀를 둔 부모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10년 전 멕시코에서 부모를 따라 이민 온 산타 모니카 대학 학생인 빅터 레이고사라는 학생은 학교로 찾아 온 모병관의 제의를 거절한 사실을 밝히며 "어머니가 입대를 가장 심하게 반대했다"면서 "시민권 신청서 제출이 군대에 가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나는 인기 없는 전쟁에 참여하기보다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시민권을) 기다리기로 했다"고 <에이피통신>에 말했다.

"왜 우리의 전사자들은 밤에 도둑처럼 귀환해야 하는가"

결국 계속된 이라크 전에서 사망자와 치명상을 당한 부상자가 늘어나고 있고, 이라크 전 자체가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만한 전쟁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4월 21일 현재 이라크 전 미군 사망자는 1562명, 부상자는 1만2022명에 달한다. 부상자들 가운데 72시간 내에 복귀한 군인은 5970명으로 복귀율이 50%를 채 넘지 않고 있다.

현재 미 육군당국은 모병관들의 수를 늘리고 당장 입대신청을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2만불의 보너스 지급을 고려하고 있으며, 2500명 이상의 모병관들을 전국 곳곳에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어느 전쟁보다도 인기 없는 전쟁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려 할 청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 게일 햄버그 교수의 글이 실린 <인터벤션 매가진>.
시카고 루즈벨트 대학의 게일 햄버그 교수가 지난 3월 22일 이라크전 두 돌을 맞아 <인터벤션 매가진>에 쏟아 놓은 항변은 미국 젊은이들과 그들의 가족 사이에서 인식되고 있는 이라크 전의 현주소는 물론 그들이 부시 행정부의 악착같은 모병 노력에도 불구하고 뒷걸음질 치고 있는 이유를 적절히 설명해 주고 있다.

"뜨거운 모래바람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우리 병사들은 더 이상 국민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 채 사라져가고 있다. 대통령은 여전히 이라크 전사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숭고한 이상을 위해 싸운다면 대통령이 전사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왜 우리의 전사자들은 밤에 도둑처럼 귀환해야 하는가.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들에게 결단과 용기를 요청해 온 부시 행정부는 죽어서 돌아올 그들을 껴안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덧붙이는 글 | koreaweeklyfl.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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