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서재경의 <산을 오르듯 나를 경영하라>
ⓒ 예지
화려한 것보다는 단아한 것이 마음에 더 오래 머문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미문(美文)의 현란함보다는 진심이 담긴 소박한 글이 읽는 이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긴다.

추사 김정희는 한 편의 글에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없다면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공자는 시(詩)란 마음에 사함이 없는 사무사(思無邪)의 경지를 뜻한다고 했다. 진실한 마음과 기운이 좋은 글의 요건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말을 화려한 수식으로 엮어 책으로 내는 일은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이다.

하루에도 수십 종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과연 지극한 마음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책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유명한 작가나 광고를 크게 하는 책보다는 그렇지 않은 책들을 먼저 살펴본다. <산을 오르듯 나를 경영하라>라는 책을 읽게 된 경위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산을 오르듯 나를 경영하라>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본다면 ‘인생과 산행은 비슷하다’는, 어찌 보면 누구나 한 번은 생각해봄직한 평범한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을 풀어나가는 저자의 진실한 마음과 작은 깨달음들이 내용의 평범함에 깊이와 무게를 더해준다. 국내 굴지의 기업이라 할 수 있는 대우그룹의 부사장을 지냈던 저자는 다년간의 직장생활로 이름 모를 병에 시달리다 의사로부터 산행을 해보라는 권고를 받고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모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를 말리는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다보면 몸과 정신이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치료를 위한 산행을 하던 저자는 어느 날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산행이 고생에서 고행으로 바뀌었습니다. 고생은 타율이지만 고행은 자율입니다. 그래서 둘 다 힘들어도 고행에는 즐거움이 따르고 고생에는 괴로움이 따릅니다”라는 깨달음을 통해 자기 경영의 요체를 인식하게 된다.

인생에서 순도 1백퍼센트의 행복이나 즐거움은 존재할 수 없다. 삶은 늘 이런저런 어려움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생의 행복과 성공은 타율에 의한 고생이 아닌 자율에 의한 고행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저자의 논지에 더욱 공감이 간다.

<산을 오르듯 나를 경영하라>의 부제는 ‘산에서 배우는 134가지 경영의 지혜’다. 여기서 말하는 경영의 지혜는 조직 운영의 지혜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실존적 삶을 바르게 경영하는 지혜를 뜻한다.

이 책의 매력은 산행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으로 ‘등정과 정복의 희열’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하산과 겸손의 행복’을 알려준다는 점에 있다. “산에서 길 잃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일반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길을 놓친 곳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다”, “산행이 끝날 무렵이면 누구나 끝나는 산행을 아쉬워한다. 그렇지만 아쉬워도 산을 내려와야 한다.

사람들이 살 곳은 산이 아니라 결국 산 아래의 마을이기 때문이다”는 말은 일견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볼수록 그 맛과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표현이다.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는 유명 등산가의 말보다 내려오기 위해 산행을 하는 저자의 생각이 더 마음에 끌리는 이유를 이 글에서 굳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독자 스스로가 독서를 통해 감식하고 맛보아야할 절대 권리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현란한 것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현실에서 담박하고 진솔한 깨달음의 이야기를 만난다는 것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서재경의 <산을 오르듯 나를 경영하라>는 이해득실과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의 각박함 속에서 균형과 조화, 겸손과 평화의 삶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뒤돌아보게 해준다.

산을 오르듯 나를 경영하라

서재경 지음, 예지(Wisdom)(2005)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