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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자에 실린 '고려대 설립자 이용익 선생 재평가 돼야'(최재원 기자) 기사에 대해 도서출판 '중심'의 윤덕한 대표의 반론('이용익은 과연 항일 독립투사인가')기사가 22일자에 실렸습니다. 이에 대해 이용익 선생의 외고손자인 허종씨가 다시 반론을 보내와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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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설립자 이용익 선생 재평가돼야"

먼저 윤덕한씨는 이용익 선생은 무식하고 미천하고 보부상 출신이고 세계정세에 무지하고 극단적으로 수구적이고 부패분자로 지탄받았다는 친일식민사관에 젖어 있는 일부 인간들이 쓰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견과 전제하에 엉터리 글을 쓰고 있다. 과연 그럴까?

첫째, 이용익 선생이 무식하다는 점에 대하여:

옛말에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물며 면장도 이렇거늘 선생이 무식하였다면 어떻게 일국의 탁지부 대신, 군부대신, 내장원경, 중앙은행 부총재, 헌병사령관, 육군부장, 경상북도, 강원도 관찰사 등의 그 수많은 관직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그 당시나 지금이나 국가의 중요 업무는 거의 다 문서로 (물론 한문 위주) 처리, 결재하였습니다. 고종실록이나 승정원 일기 등에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 군부대신 시절의 이용익 선생
한문으로 된 그 수많은 공용 결재 서류들을 해독, 이해를 못하면서 일국의 대신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윤씨가 말하는 유,무식의 기준이 무엇이며 무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추상명사가 아닌가? 당신이 이용익 선생의 지식 테스트를 해보았습니까? 이용익 선생께서 지으신 한시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둘째, 미천한 출신이라는 점에 대하여:

이용익 선생의 부친인 이병효 선생은 함경북도 고산현감을 지내셨고 또 조카인 이윤재 선생은 문과급제하여 함경북도 관찰사 (요즘 도지사급)를 역임하였습니다. 윤씨가 말하는 미천함과 고귀함의 기준을 모르겠으나 유교적인 봉건왕조인 양반계급사회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낸 집안이면 최소한 미천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그리고 이용익 선생이 조선태조 이성계의 형 이원계 (완풍대군)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그 출처가 궁금하다니까 알려주겠습니다.

전주이씨 대종회에 가면 전주이씨 완풍대군파 세보라는 8권으로 된 족보책이 있으며, 그 족보책 제4권에 그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준 열사도 완풍대군의 후손입니다.

윤씨는 이용익 선생의 외손인 제가 주장하는 바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기 자신이 먼저 사실 여부를 확인해볼 노력도 없이 일단 아닌 방향으로 부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셋째, 보부상(부보상이라는 명칭이 맞다는 견해도 있음) 출신이라는 점에 대하여:

윤씨는 그 당시의 어떤 문헌과 기록에 기초하여 이용익 선생이 보부상 출신이라고 주장합니까? 물론 선생은 보부상이 아니고, 정치가입니다. 그리고 윤씨의 글의 뉘앙스는 보부상은 무식하고 미천하다는 냄새를 풍기는데, 윤씨는 혹시 이렇게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독립협회는 선이고, 보부상이 중심인 황국협회는 악이다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쓰여 있는 역사책을 내던지고 이렇게 달리 생각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그의 행적에 의하여 생전, 사후에 평가되어진다고 저는 봅니다.

독립협회는 친일 매국노 이완용, 친일 변절자 윤치호가 주요 간부로 활동한 단체이며, 독립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도 일제로부터의 독립보다는 청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반면, 황국협회의 길영수 선생은 1904년의 굴욕적인 한일의정서 강제 체결에 반대하다가 일제로부터 수배당하여 해외로 망명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그 당시 일본외교문서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보부상들은 자신은 물론 가족의 부양을 위하여 생업에 열중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우리 땅의 백성이고 민초입니다.

넷째, 세계정세에 무지하다는 점에 대하여:

이용익 선생은 세계열강들이 약소국인 대한제국을 침탈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국제 정세를 이미 간파하고(특히 일제의 대한제국 합병흉계) 국력이 미약한 대한제국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중립국화라고 판단하여 러시아, 일본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는 중립국 선언을 세계만방에 선포하였습니다.

이에 당황한 일제는 고종황제에게 중립국 선언을 취소하도록 강요하여 약소국의 비애로 그 실효는 거두지 못하였으나 그 구상과 실천은 그 당시의 현실 상황에서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이 역시 일본외교문서 제37권 1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중립을 선언한 선생이 어찌 국제 정세에 무지하고 친러파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설령 백번을 양보하여 친러파라고 한다면 러시아를 위한 파벌과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일본을 위한 친일파들은 일진회라는 친일매국노들의 조직이 있었음) 그 조직 이름과 구성원을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섯째, 극단적으로 수구적이라는 데 대하여:

윤씨도 인정하였듯이 암울했던 시대에 일본을 궁극적으로 극복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는 교육구국과 뚜렷한 민족, 국가관을 가진 인재양성에 있다고 예견하여 근대적인 민족교육 전문대학인 고려대학의 전신 보성전문학교를 벌써 100년 전에 설립하신 선생이(그 당시는 아직도 조선시대 유교전통적인 서당, 서원 등이 주요 교육기관 이었음) 극단적으로 수구적이라면 과연 어떤 것이 진보적입니까?

일제시대의 보성전문학교와 지금의 고려대학에서 수많은 항일애국지사와 여러 학문 분야에서 국가의 초석이 될 수많은 인재들을 지금 현재도 배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그 당시 100여년 전 열악한 교통여건 하에서도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불란서, 러시아, 중국 등을 경유하며 항일구국운동을 펼치신 선생이 진보적일까요, 수구적일까요?

지금도 제가 알기로는 현대 최첨단 과학문명시대인 21세기에도 불란서, 러시아 등의 해외를 나간다는 것이 그렇게 수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용익 선생이 불란서, 러시아, 중국 등을 경유할 때마다 일제는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두려워하여 주재국 공관에 훈령을 보내 이용익 선생이 모든 관직을 박탈당한 개인자격 방문임을 그 주재국에 알리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외교 문서와 그 당시 주한일본공사 하야시곤스케와 일본본국외무성 사이에 오고 간 전보, 문서 등의 주한일본공사관 기록 등에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일제는 해외에서의 선생의 항일구국운동을 두려워하여 그 행적을 계속 감시,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혹시 수구와 진보의 개념을 거꾸로 혼동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도 우기신다면 이용익 선생의 어떤 점이 극단적 수구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섯째, 부패분자로 지탄 받은 인물이라는 데에 대하여:

상대방을 비난할 때는 그 비난하는 주체와 비난받는 객체의 정체성과 상호관계와 동기가 중요합니다. 또한 그와 더불어 실체적 진실인지 거짓주장인지도 물론 중요하고요.

우선 이용익 선생을 모함하고 규탄상소를 올렸던 자들의 면면을 들자면 윤택영, 윤덕영, 민영소, 김성근, 성기운, 조동윤, 이용태, 윤웅렬, 정낙용, 이재극 등이 있습니다. 이 자들은 모두 일제가 조선을 강제 합병하는 데 공헌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후작, 자작, 남작 등의 작위와 재물을 받고(한국인물 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일제시대는 물론 광복 후에도 대를 이어 호위호식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또한 일제의 주구 일진회놈들은 이용익 선생 집앞에 상주하다시피하며 거의 매일 난동을 부렸으니 이러한 자들이 누구를 비난하고 규탄합니까? 이런 것이 바로 적반하장입니다.

선생은 일반백성에게는 결코 지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윤효정의 풍운한말비사에 보면 "법부가 이용익에 대해 서류와 장부 등을 압수하여 조사한 결과 그에게 부정이 없었을 뿐더러 자손을 위한 축재조차 없어서 정적조차도 공공무여함을 인정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윤씨의 주장대로 이용익 선생이 부패하고 축재를 많이 하였다면 어찌하여 선생이 설립하고 그 손자인 항일 독립운동가 이종호 선생이 교장을 역임한, 고려대학의 전신 보성전문학교가 재정난에 빠져 그 운영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애국자를 매도하는 위험한 짓을 제발 그만하십시오

그리고 윤씨는 이용익의 배일적 성향도 격하시키기 위하여 명성황후(윤씨는 친일잔재청산 한다는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이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일제식민사관에 젖은 자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민비라는 용어를 계속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정왕후, 인현왕후라고 부르듯이 똑같이 명성황후가 맞는 호칭입니다. 왜 유독 일제의 침략정책에 방해가 되었던 명성황후만 민비라고 격하해서 부를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를 시해한 일본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감을 그 한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당신은 우리나라이며 약소국인 대한제국의 황후가 시해과정도 참혹하게 일제에 의하여 처참하게 살해당한 데 대하여 이용익 선생, 우리 온 민족같이 일본에 대한 증오심이 안 생깁니까? 같은 민족으로서 분노가 끓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무서운 실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제에 반대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애국지사대접을 하는 것은 역사를 너무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라고. 그런 당신의 논리라면 안중근, 윤봉길 의사, 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 등 그 외에도 수 많은 순국선열과 애국독립지사들은 일제에 반대한 한 가지 이유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어야 애국지사 대접을 이성적으로 제대로 받겠군요.

일제식민지배 시대에 수많은 우리 민족과 독립애국선열지사들이 질곡과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일제에 반대한 항일 독립정신 이외에 또 다른 어떤 가치와 이유가 그 당시에 중요한지 묻고 싶군요. 물론 일제에 아부한 친일매국노들은 일제식민지배시대가 오히려 그들의 부와 직위를 상승시키는 절호의 기회였겠지만요.

그리고 이용익 선생은 그 당시 사회기득권층인 탁지부대신(지금의 재경부장관급)의 직위에 있으면서 과감히 기존 개인의 직위와 안위를 포기하며 1904년의 굴욕적 한일의정서 강압체결에 항거, 반대하다가 일본에 1년여 강제 납치 당하셨습니다.

당신은 일국의 대신이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국제법도 무시한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강제체포,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같은 한민족으로서 분개심과 굴욕감이 안 생깁니까?

당신은 이용익 선생의 업적과 항일정신, 교육구국이념정신을 인정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비중이 적게 기술하고 있으며 모든 면에서 근거도 없이 이용익 선생에 대한 부정적수사와 동기를 앞세우면서 비난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했다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 집안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이용익선생의 아들 이현재 선생과 손자 이종만 선생은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톡에서 항일애국지사 이동휘, 이동녕, 이갑, 안정근, 안공근 등 여러 선생과 함께 일제의 감시 대상에 올라 추방해 달라는 문서도 있음)- 한국독립운동사 자료34 러시아편I, 국사편찬위원회.

그리고 또 명망 있는 항일독립운동가이며 교육사업가인 이용익 선생의 손자 이종호 선생은 1962년도에 항일독립운동 공적이 국가로부터 인정되어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바 있습니다.

이종호 선생의 공적은 웬만한 독립운동사료에는 거의 빠짐없이 나와 있습니다. 정 모르면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학자에게 문의해 보십시오. 모든 역사는 문헌과 사료에 의하여 기록되어집니다.

윤씨에게 충고합니다. 근거문헌도 제시 못하면서 추상적, 주관적인 부정적 용어를 써가면서 국가를 위하여 노심초사 애쓰다 타국에서 서거하신 애국자를 매도하는 위험한 짓을 제발 그만하십시오.

가정을 전제로 이완용과 비교하다니

당신의 마지막 구절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한 것이기는 하지만 만일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다면" 운운하는 것을 읽고 러시아에 안 먹히고 일제에 먹혀서 일제식민지배가 축복이라는 한승조의 망발하고 어쩌면 그렇게 논리와 생각이 똑같습니까?

당신을 용서할 수 없는 점은 존재하지도 않는 사실을 가정을 전제로하여 부국강병과 사회개혁을 위하여 진력하신 이용익 선생을 친일매국노 이완용과 은연 중에 비교하여 헐뜯고 있다는 점입니다. 명예훼손죄는 살아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고인에게도 적용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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