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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제정을 계기로 폭발된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동안 조용하던 우리 정부도 이젠 일본 정부에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온 국민이 나서서 일본을 질타하고 해경함정을 증파하고, 독도 접안시설을 확충하며, 관광객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는 등의 대책만으로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의 망언을 잠재울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일련의 방법들이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것만으로 일본의 야욕을 꺾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일본을 나무라기 전 우리의 반성

▲ 무심코 쓰는 일본말 찌꺼기들
ⓒ 김영조
이에 앞서 그동안 우리가 가져왔던 태도를 먼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반성을 먼저 해야만 그들을 극복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그동안 해온 문화생활을 보면 그들의 망언을 자초한 측면이 다분하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무심코 해온 것일 수도 있지만 군국주의를 확장시키기 위한 일본 우익들에겐 아주 좋은 빌미를 제공한 것일 수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생활에 무심코 쓰는 일본말이나 일본식 한자말, 외래어 등을 찾아 이를 쓰지 않도록 하자는 ‘일본말 찌꺼기’라는 필자의 글에 많은 사람들은 박수를 쳤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여태껏 아무 문제없이 잘 쓰고 있는데 왜 시비냐고 눈을 흘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훌륭한 말글이 있는데도 남의 말이나 빌려 쓰거나 잘못된 말을 예사로 쓰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무시 받을만한 행동은 아닐까?

‘민소매’ 대신 ‘소데나시(そでなし)’를 쓰고, 아름다운 말 ‘구름다리’ 대신 ‘육교’를 쓰며, ‘외투’ 대신 ‘over coat’가 아닌 ‘오바’를 쓰는 것은 물론 음식점엔 모두 ‘닭도리탕’이란 잘못된 말 일색이 되어버린 지금의 우리의 말글생활이 떳떳한 일은 아닐 것이다.

또 4월만 되면 온 나라가 교통이 마비되고, 정부의 예산까지 써가며 벚꽃축제를 하는 것을 비판하는 글 ‘민족의 자존심으로 생각하는 벚꽃잔치’라는 필자의 글에 달린 독자의견을 보면 꽃을 좋아하는 것에 왜 초를 치느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결혼식장에서 손님들에게 벚꽃차나 탕(湯:さくらゆ:소금에 절인 벚꽃잎을 더운물에 넣은 것)을 대접하는 것이 풍습이다. 또 일본에는 화견(花見:はなみ)이라는 말이 있는데 화견은 꽃구경, 특히 벚꽃 구경이며 벚꽃이 피면 식구나 친구와 함께 음식도 나누어 먹고, 이야기도 하며, 봄날을 즐긴다. 도쿄 우에노공원은 벚꽃 계절엔 24시간 문을 여는데, 등불을 밝히고 벛꽃놀이(夜櫻:よざくら)에 취한다고 한다.

▲ 일본의 벚꽃전선
ⓒ 김영조
4월이 되면 일본의 일기예보시간에는 으레 ‘벚꽃전선:さくら前線(ぜんせん)’에 대한 예보가 나오기도 한다. 도쿄는 4월 둘째 주 정도면 벚꽃이 피는데, 도쿄에서 벚꽃이 피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신주꾸(新宿區)의 정국신사(靖國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에 있는 벚꽃 나무가 그 기준이다. 일본의 봄은 벚꽃과 함께 시작하고 끝난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 겨레는 매화나 난초를 좋아했지 그림이나 문집에도 벚꽃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일본의 벚꽃놀음을 본떠 전국 몇 십 군데에서 벚꽃축제로 난리를 치르며, 심지어 이순신 장군을 기린다는 진해군항제까지 벚꽃 중심의 잔치를 치른다. 이런 것을 보면서 과연 일본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또 우리는 일본에서 역수입된 녹차와 다도를 즐겨왔다. 흔히 전통차로 알고 있는 녹차는 일본의 ‘야부기다종’이며, 다도 역시 일본에서 일본에 맞게 발전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차를 즐겼던 정약용 선생이나 초의선사가 무릎을 꿇고 차를 마셨다는 얘기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는데도 일본 것을 마치 우리 것인 양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일본의 차나 다도를 즐기는 것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차 문화 역시 도자기 등 다른 문화들과 함께 우리나라가 일본에 전해 준 것들이다. 우리는 적어도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문화선진국이 분명한데도 그들에 맞게 개량된 것들을 우리의 전통처럼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역시 부끄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일본의 망언들을 보면 한일합방은 조선이 원한 것이라는 망발도 들어있다. 우리가 일본의 찌꺼기 말을 예사로 쓰고, 벚꽃축제에 열을 올리고, 일본의 녹차와 다도를 우리의 전통으로 아는 한 한일합방이 강탈자에 의한 억지였다고 주장할 근거가 약해진다.

문화에 대한 자부심만이 그들을 이길 수 있다

우리가 강대국 일본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정치, 외교, 군사, 경제 그 어느 부분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오직 문화만이 그들을 앞서 있기에 우리 스스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망언을 막아내는 것이라 믿는다.

한자를 고쳐 가타카나를 만들어 쓰는 일본에 비해 우리는 세계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가지고 있으며, 위대한 음식 김치와 된장, 아름답고 편한 한복, 황토와 한지 그리고 옹기, 종묘제례악, 판소리, 풍물굿 등 세계에서 인정받는 자랑스러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말 찌꺼기를 쓰고, 일제 된장을 사먹으며, 한복 입은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풍물굿을 시끄럽다고 한다면 일본인들은 여지없이 우리를 짓밟으려 하지 않을까? 우리가 명함을 한자와 영어 일색으로 만드는 문화사대주의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을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우리 조선 소나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먼저 알린 까닭에 ‘일본소나무(Japanese red pine)’로 세계에 알려졌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이상재 선생은 일본의 거물정치인 오자키가 집을 찾아왔을 때, 뒷산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편 뒤 '우리 응접실'에 앉을 것을 권했다고 한다. 오자키는 일본으로 돌아가 “조선에 가서 무서운 영감을 만났다. 그는 세속적인 인간이 아니라 몇 백 년 된 소나무와 한 몸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두루마기 차림으로 조선 소나무 아래에서 우리의 돗자리를 깔고, 우리의 응접실을 차린 이상재 선생의 모습에 일본의 거물 정치인이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망언이 극에 달한 지금 이상재 선생의 기개가 새삼 그리운 것은 나 혼자만의 감정일까? 우리는 이제라도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무장하여 일본인들이 쉽게 군국주의 야욕에 의한 망언을 하지 못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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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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