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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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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에서는 두개의 유명 스포츠 바 간에 벌어진 소송 건이 호사가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플로리다 주 연방법원은 지난해 12월 2일 자사의 비즈니스 콘셉트를 도용했다며 스포츠 바 후터스(Hooters)가 타 동종업소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여기에서 타 동종업소란 윙하우스(Winghouse)를 가리킨다.

이들 레스토랑은 8등신 미녀 웨이트리스들에게 가슴과 다리가 거의 드러나는 섹시한 복장을 입혀 닭 날개 요리와 맥주 등을 판매해왔다. 이 같은 영업방식으로 인해 최근 브레스토랑(Brestaurant)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을 정도.

'브레스토랑'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새로운 영업방식

▲ 플로리다 알타몬트스프링스지역에 있는 후터스 빌보드. 하단 광고문구에 윙하우스의 '도전'에 대한 '응전'의 표시로 '오리지널'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 김명곤
후터스는 재판과정에서 윙하우스를 '카피캣(Copycat 모방꾼)'이라고 내몰며 자신들의 모든 것을 윙하우스가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윙하우스의 '윙하우스걸'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후터걸'을 모방해 고객들을 혼동시키고 있다고 열을 올렸으며 "로날드 맥도널드가 맥도널드 햄버거점의 등록상표인 것처럼, 후터걸은 후터스의 등록 상표"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법정은 양 업소의 웨이트리스들을 '증거물' 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웨이트리스들은 법정에서 선정적인 유니폼과 서비스 모습을 그대로 시범해 보였고, 엄숙해야 할 법정에서 한동안 '미녀들의 쇼'가 벌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후터스는 윙하우스가 후터걸들의 훌라후프 시범을 모방한 것은 물론, 양피지 메뉴판, 식당 벽에 붙인 스태프 캘린더와 기념사진, 천장에 매단 서핑보드 및 불빛 장식, 심지어는 벽에 붙인 '더블 커브길, 요주의! 블론드 사고' 등의 교통신호 스타일의 선전문구까지 따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결국 18개월을 끌어온 후터스와 윙하우스간의 법정투쟁에서 윙하우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안네 콘 웨이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합리적인 재판관이라면 온통 검정색 복장을 한 윙하우스의 웨이트리스와 오렌지 색 팬츠와 흰색 상의를 입은 후터스의 웨이트리스를 혼동할 수 없다"고 판결사유를 밝혔다.

이로 인해 후터스는 신청했던 400만불의 보상금은 커녕 오히려 120만불의 손해배상금을 윙하우스 측에 지불하라는 판결까지 받았고 막대한 변호사 비용만 날리고 말았다.

윙하우스의 사장 크로포드 커(Crawford Ker)는 소송에서 이긴 뒤 "후터스가 우리의 명성을 더해준 꼴이 됐다"며 "후터스가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맥도널드라고 한 만큼 후터스는 바야흐로 '버거킹'을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윙하우스 "후터스가 맥도널드라면 우린 버거킹"

▲ '후터스' 빌보드가 있는 위치에서 100 미터 전방에 세워져 있는 '윙하우스' 빌보드. 웨이트리스의 복장이 후터스와 유사하다.
ⓒ 김명곤
그렇다면 어떻게 이같은 '몸매경쟁'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1983년 플로리다 중서부 클리어 워터 시에 처음 문을 연 후터스 스포츠 바는 날로 성장을 거듭, 이제 전 세계 4백여 개의 체인점에서 연 7억5천만불의 수익을 올리는 대 요식업체로 성장했다. 후터스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곳에서도 문을 열 채비를 하고 있다.

후터스의 웨이트리스인 '후터걸'들은 가슴 곡선을 상당부분 드러낸 민소매 티셔츠(탱크톱)와 초미니 조깅 팬츠, 러닝화 등을 신고 서빙을 한다. 흰색 티셔츠 가슴 쪽에는 올빼미의 양 눈이 크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후터스가 본래 올빼미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성 가슴' 을 의미하는 속뜻을 지니고 있어 선정적인 영업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후터걸들은 음식을 서빙하다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각본대로 훌라후프를 돌리며 흥이 난 손님들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기도 한다. 또 보통 식당의 웨이트리스들이 허리춤에 걸친 에이프런에서 메뉴와 주문서를 꺼내고 팁을 모으는 반면, 후터걸들은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복부 하반부 양다리 사이에 매달려 있는 주머니를 사용한다.

이처럼 후터스는 '밤업소' 등급을 받을만한 요소들을 영리하게 비켜가면서 떳떳하게 대낮에도 남성 손님들을 끌어모으면서 급성장을 해왔다.

후터스가 엄청난 인기를 끌자 후터스와 비슷한 영업 개념을 딴 스포츠 바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이번 재판과정에서 후터스가 밝힌 자칭 '모방꾼' 업소 이름만 하더라도 '멜론스', '쇼우-미', '부즈카스' 등 다양하다.

특히 재판정에서 윙하우스 사장 크로포드 커는 자신이 후터스를 모방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후터스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체 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을 봐라, 샌드위치를 만드는 서브웨이는 블림피와 퀴즈노를 옆에 두고 있으며 맥도널드는 버거킹을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라고 응수함으로써 브레스토랑들의 몸매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문제는 여성의 성 상업화 "여성의 몸 이용해 치부 말라"

그러나 이들 업소의 '몸매경쟁'을 저지하려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01년, 후터스는 매사추세츠 주 북쪽 도시인 피바디시에 레스토랑을 열기 위해 시 정부에 허가를 신청했으나 '섹시 이미지' 때문에 두차례나 거부당했으며, 위스콘신, 캘리포니아 주 등의 여러 도시에서도 벽에 부딪쳐야 했다.

특히 여성단체들은 "(후터스 등의 스포츠 바들이) 여성의 명예를 더럽힌다"며 법적 대응은 물론, '문 못 열게 하기' 캠페인을 벌여왔다. 이들 스포츠 바들이 상업주의의 터널 속을 교묘하게 뚫고 들어와 남성들의 '관음증'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여성의 인격권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것.

캘리포니아의 한 여성단체는 캘리포니아 모데스토 시에 후터스가 들어오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 "당신의 딸들을 생각하라"며 정치인들에게 항의 서신을 띄우는 것은 물론, 지역 부동산업자들과 소유주들을 찾아다니며 후터스에 건물을 임대하거나 땅을 팔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봄 전 미국 여성위원회(NOW)는 캘리포니아 웨스트 코비아의 한 후터스 레스토랑에서 후터걸 응모자들의 옷 갈아입는 장면이 비밀리에 촬영된 사건을 들어 "후터스가 범죄에 불을 지르고 있으며, 여성의 명예를 추락시켰다"면서 후터스 불매운동을 벌였다.

같은 해 2월, 조지아주 사바나 시 교육청은 한 여고생이 방과 후에 후터스 레스토랑에서 일하려는 것을 불허했다. "후터스가 꽉 조이는 타이즈와 가슴이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히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성희롱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유였다.

캘리포니아의 '여성권익위원회' 대변인 이본 알렌은 "후터스의 올빼미 눈 로고는 여성의 가슴을 모방한 것이며, 그들이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한입 가득 그 이상(More than a mouthful)', '수탉만이 한 조각의 더 좋은 치킨을 얻는다(Only a rooster gets a better piece of chicken)'는 고기를 여성에 비유한 것"이라며 "그들은 여성의 몸을 이용해 버거 류와 맥주를 팔아 치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노던 일리노이 대학 신방과의 로라 바케즈 교수는 "스포츠 바는 대중문화에서 성의 과시를 부추기는 역할을 해왔다"면서 "가장 나쁜 것은 이 일(웨이트리스)이 우리의 딸들이 밖에 나가 있을 때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성적매력 이용해 생계 꾸리는 것도 여성의 권리"

▲ 후터스 홈페이지 첫 화면
▲ 윙하우스 홈페이지 첫 화면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텔레비전 매체를 가르치고 있는 한국계 김 교수(L. S. Kim)는 최근 <시카고 트리뷴>지에 "웨이트리스는 그냥 웨이트리스일 뿐이며, 더 좋은 팁을 얻기 위해 일하고 있다"면서 "여성의 파워는 바로 '성적 매력'에서 나온다는 신념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 여성이 성적 매력을 팔 때 그것이 그녀를 진정으로 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고 덧붙이면서 "이는 아직 해답이 없는 '빅토리아즈 시크리트 페미니즘'(Victoria's Secret Feminism)"이라고 지칭했다.

스포츠바 옹호론자들은 스포츠바가 매력적인 여성들의 성을 오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NFL이 몸집이 크고 빠른 남성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스포츠바 웨이트리스들은 슈퍼모델 신디크로포드나 나오미 켐벨처럼 타고난 매력을 이용해 생계를 꾸려나갈 권리가 있다는 것.

후터스의 설립자인 에드 드로스트 또한 <시카고 트리뷴> 지난해 10월 27일 "이같은 항의들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리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면서 "우리는 피켓 라인을 뚫고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면서 '여성의 성 상업화'에 대한 반발 여론을 묵살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브레스토랑의 수는 팽창일로에 있으며 이 곳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여성들도 줄을 잇고 있다. 여성단체들의 "당신의 딸들을 생각하라"는 호소는 미녀들의 현란한 서비스, 그리고 입맛 돋우는 닭 날개 요리와 맥주잔에 점차 묻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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