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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으로 찍어 그다지 선명하진 않습니다. 아이가 새학기 책을 한아름 가지고 와서 자랑합니다.
ⓒ 김현자
오랫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운 저녁에 둘째는 다음 학년에 배워야 할 교과서를 들고 왔습니다.책마다 비닐 책표지가 씌어져 있었습니다.아이가 무얼 말하려는지 싶은 기대감으로 흘깃거리며 그렇게 조금 기다려 보았습니다.자. 이제부터 아이는 책마다 뒷장에 매직으로 쓴 제이름하며, 캐릭터가 그려진 비닐 책표지 싼것을 마구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 요즘 초등학생 교과서는 동화책처럼 이쁜 그림이 가득합니다.
ⓒ 김현자
"수연아, 이 책을 한번 만져 보고......옳지. 이 책을 또 만져 보아라. 어떤 쪽이 좋은지...질감이 좋은지, 편안한지...."

아이는 시키는대로 비닐로 책표지 싼것과, 전학년도 교과서 세권 중 하나를 집어 들어 만져 보았습니다. 눈을 감고 비교해보라고 하였더니, 아이는 책표지를 싸지 않은 것에 느낌 좋음의 점수를 금방 매겼습니다.

▲ 책속 내용만이 아니라, 책표지도 무척 이쁘고 그 질감도 기분이 좋지요
ⓒ 김현자
"자, 그렇다면 책표지를 싸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보아라."

아이는 이담에 동생들에게 물려 주어야 하는 거니 깨끗하게 써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책표지를 싸야만 한다는 것인데, 제가 알기로는 요즘 아이들 책 물려받거나 물려주지 않으며 대형서점에서조차 일년내내 손쉽게 살 수도 있습니다. 뿐만인 가요. 요즘의 아이들에게 교과서나 학용품에 대한 가치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닙니다.

▲ 이 비닐로 된 책표지는 아이가 교육을 마치고 성장하여 사회인이 된이후에도 땅속에서 맑은 물줄기를 가로 막을겁니다
ⓒ 김현자
자, 이제는 엄마가 책표지 싸는 걸 반대하는 이유를 말해주마. 첫째는 환경오염이다. 이것은 비닐로 만들어졌지. 이건 수연이가 교육을 모두 마치고 어른이 되어서도 썩지 못하고 땅속에서 맑은 물의 흐름을 막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요즘에 교과서는 엄마가 학교 다닐 때와는 그 차원이 달라서 쉽게 헤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동생에게 물려주거나 그러진 않는 걸로 알고 있단다. 이 책은 수연이가 배우고 학교에 제출하면 폐지로 재활용 될뿐이다.

▲ 이제라도 아이에게 제대로 알려주어서 좋습니다.
ⓒ 김현자
셋째 이유를 미처 꺼내기도 전에 아이는 미련없이 책갈피를 모두 빼어버렸습니다.

어렸을때 생각이 납니다. 두껍기도 두꺼울 뿐더러 지면 가득 빼곡하게 들어찬 활자, 일년을 모두 공부하고서도 다시 후배에게 물려 주어야만 하였고, 반대로 물려 받는 입장에서는 어떡하면 좀더 깨끗한 책이 나에게도 돌아오나 순전히 운에만 맡기며 그렇게 기다렸던 교과서에 대한 기억. 그러고도 너덜해진 교과서를 몇번이고 읽고 자라난 그런 어린시절이었습니다.

▲ 책표지 싸는 것,일부러 말리고 싶습니다
ⓒ 김현자
그 뿐인가요. 김치국물이 대책없이 흘러 나와 책을 얼마간 적시는 건 특별 하달 수 없는 흔해 빠진 사건이었습니다. 혹은 우산 없이 하교하는 통에 반쯤은 이미 눅눅하게 젖기도 하는 그런 교과서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교과서는 정말 보호해가면서, 애지중지해가면서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책표지를 싸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미 손 때가 가득 묻어버린 책을 받았기 때문에 새학년 고스란히 공부해 내야만 하기에 밀가루 푸대속 종이를 펴고 펴서 책을 쌌고, 지나간 달력 잘라서 그렇게 또 책을 싸고 싸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형제 많은 집 아이가 아둥 바둥으로 책표지를 쌌건만 책의 질은 그리 오래 버텨주지 못했습니다.

▲ 이렇게 이쁜 교과서...어린 날들의 교과서 생각이 납니다
ⓒ 김현자
올해 중학생이 되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교과서를 받아 들던 날, 아이보다 제마음이 더 설레고 뛰었습니다. 새하얀 종이위에 그린 그림들이 어쩜 그렇게 이쁘던지, 그리고 어쩜 그리 뽀얀 느낌이던지, 동화책처럼 이쁜 교과서를 아주 자주 넘겨보고 아이와 함께 틈나는대로 노래도 불렀습니다. 혼자서 그렇게 얼마나 넘겨 보았는지 모릅니다.

한 해는 어느 서점에서 무료로 주는 책싸는 종이를 가져다가 아이 교과서를 싸주었습니다. 밀가루 포대속지에 대한 향수도 어렴풋해져서 싸주었는데, 얼마 못가서 껍질을 모두 벗겨내고 말았습니다. 앞 뒤 책표지의 그림들이 무척 예뻤기 때문이고 종이로 가려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음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 아트지로 만들어 진 미술책입니다
ⓒ 김현자
대부분 초등학교 교과서가 폐지로 재활용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미술책은 아트지를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 교과서들도 아이가 한 학기 공부를 끝내고도 새 것이기 일쑤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교과서속에 관련된 그림들은 아주 우수합니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피어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만날 수도 있고, 맑고 푸르른 하늘과 강산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요.

환경 오염이 우려되어 재활용 가능한 종이로 책표지를 싸주는 것도 전 말리고 싶습니다. 종이 속에 묻어두기에는 그림이 너무 예쁘다는 것, 바라만 보아도 미소가 피어 오른다는 것, 호사스럽게, 덧붙이자면 비닐의 감촉보다는 종이의 감촉이 우리 사람에게 훨씬 편하고 안심된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워 책표지 사는 걸 말리고 싶습니다. 그것도 일삼아 일부러 말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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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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