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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로원을 방문 치매노인들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있는 '배차장파 전 두목' 심상덕씨
ⓒ 민성진
10여년 전 국내 주먹세계를 좌지우지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폭력조직 '이리 배차장파' 보스 심상덕(59)씨.

그런 그가 어두운 과거를 속죄하며 사업가로 변신하여 남몰래 선행을 베풀고 있다는 소식에 그를 만나봤다.

심상덕씨는 지난 1994년 '부산사건'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장본인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후 1994년도까지 BBS(
Big Brothers and Sisters movement) 한국중앙연맹 서울 서초구 회장을 지내면서 불우한 학생 20여명에게 장학금을 주었고, 지금도 집안형편이 넉넉치 못한 학생들을 도와주며 사회 어두운 곳을 찾아 선행을 베풀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3시, 마침 구정을 앞두고 치매 노인들을 치료하고 있는 요양원을 방문한다는 직원들의 말을 듣고 선행의 현장을 동행해 보기로 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3동에 소재한 '천사노인요양원'은 지난 1986년도에 설립되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 노인들을 선별해 치료, 요양 서비스와 생활지원을 하는 노인의료복지 시설이다.

특히 심상덕 회장이 좋은 일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 (주)삼양식품 홍보실 최남석 부장은 노인들에게 라면 30박스를 보내 선행에 동참을 하였다.

노인들은 만난 심 회장은 "치매와 중풍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해 조그만 성의를 갖고 찾았습니다. 저는 일찍 부모님을 잃고 이렇게 노인분들을 만나면 부모님을 대하듯 마음이 평안해져 좋다"고 방문소감을 밝혔다.

이날 심 회장과 (주)기조테크 간부들은 정성스럽게 준비한 과일, 떡, 라면, 과자류 등을 노인들에게 대접하며 빨리 지병들이 호전되기를 기원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심상덕씨는 10여년 전 이리 배차장파의 두목이면서 서방파 김태촌, 양은이파 조양은과 함께 국내 조직폭력계를 좌지우지하던 주먹계의 대부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어둠을 털고 사업가로 변신, 보람있는 사회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일반에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지난 1980년대 이후 전국 주먹계를 주름잡던 '이리 배차장파'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배차장파는 조직폭력계 최대 계파였고, 심상덕씨는 그 조직을 결성한 두목이었다. 10년 전 신문들을 뒤져보면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의 이름 앞에 '조직폭력계의 대부'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그러나 그는 지난 1994년 '부산사건'으로 검찰에 검거된 이후 조직폭력계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세인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는 지난 1997년 출소했으나 '급성 간경화'로 사실상 시한부 인생의 선고를 받았다.

심상덕씨는 "갑자기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에 갔습니다. 당시 정말 힘들었습니다. 울화병에다 간경화가 심해지면서 생을 포기하려 했죠. 체중이 20kg가량 줄었죠. 그러나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인간으로 단 하루라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지게 했습니다"라고 그때의 심경을 피력했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간으로 살아보겠다는 그의 투병의지는 결국 병마를 극복하고 오늘의 그가 있게 했다. 그는 혼자서 고독한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춘천 의암댐 밑에서 텐트를 치고 낚시질을 하면서 요양을 했다. 물론 즐겨마시던 술 담배도 끊었다. 이후 용인 근처 산골인 둥지골로 이사 직접 밭농사을 지으며 병을 다스렸다.

그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이완법으로 순간순간의 고통을 이겨냈다. 4~5년간 이런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다.

심 회장은 "당시 이완법을 배웠죠. 마음의 병으로 다스리는 법이죠. 의암댐 밑에서 텐트를 치고 전혀 해보지도 않았던 낚시를 한 것도 이때문입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생활의 패턴까지 동시에 바꾸기란 정말 힘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직폭력계의 보스 생활을 돌이켜보면 여기서 다시 무너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더 이상 어두운 그늘에서는 살고 싶지 않았고 보다 주먹계의 '보스'가 아닌 인간 심상덕이라는 떳떳한 이름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고 말한다.

심 회장은 "과거 주먹을 쓰면서 칼을 몇 번이나 맞았습니다. 칼을 맞고 몇 달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던 적도 있었죠. 당시 함께 있던 후배는 죽었는데 그는 외아들이었습니다"라고 지난 일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투병-재기-사업으로 이어진 지난 10년간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몸이 점차 나아지면서 한줄기 새로운 인생의 빛으로 다가왔다.

거의 6년간의 투병 끝에 몸을 추스리고 일어선 그는 지난 2001년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다. 사업을 하면서 실의에 빠진 적이 없진 않았지만 배차장파 보스가 아닌 올바른 인간 심상덕으로 살아야 된다는 각오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남들처럼 가정을 꾸려 가족과 오손도손 살아볼 기회조차 놓쳐 버렸다. 현재 독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심 회장은 "물론 지금이라도 가정을 갖고 싶지만 과거 조직폭력배 보스를 따뜻하게 맞아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기회가 닿는다면 남들처럼 가족의 정을 느끼면서 살고 싶습니다"라고 외로움도 간접적으로 밝혔다.

그가 가족에 대한 애착이 많은 것은 불행한 그의 가족사도 한몫을 했다. 그는 6형제 중 장남이다. 하지만 동생 3명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에 대해 심 회장은 "그 이유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동생들에게 제가 지은 죄가 많은 것이죠. 철모르던 시절 그러나 황금기였던 젊은 시절을 부질없이 날려버렸지만 지금도 사회에 한몫을 하는 필요한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특히 동생들에게 진정한 형 노릇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그의 활발한 사회봉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불우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경로당이나 양로원 등을 찾아다니며 노인들을 돌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그가 갖고 있는 직함은 (주)기조테크 회장. 업체가 비록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사업이 점차 기반을 잡아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내년이면 충분히 본 궤도에 오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의 주력 사업은 무역이다. 주로 중국과 베트남을 상대로 의류와 모피를 취급하고 있다. 중국 길림성에서도 대규모 관광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그는 최근에 베트남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중국보다는 한국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베트남쪽의 사업성이 높은 데다 그쪽에 일부 기업가들과 교분도 있어 베트남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상덕 회장은 앞으로의 계획을 "사업을 잘 운영해 열심히 돈도 벌어 어려운 주변이나 조금씩 도움을 주는 것이 지난 일을 속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살겠다. 이를 위해 담배와 술도 절제를 하자고 마음 속으로 다짐도 했다(웃음)"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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