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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의 한 클럽에서 주말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는 영국 여성들
ⓒ 박성진
불혹의 문턱에 들어선 영국여성 피오나 패티슨. 패티슨은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후 파리, 런던에서 영어 교사로 일 해왔으며 남편 혹은 남자친구와 15년째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그녀는 남편을 ‘남자 친구’라고 부른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아이를 갖지 않는 데 동의한 지 이미 오래됐고 이런 결정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며칠 전 파티에 갔더니 친구들이 묻더군요. 언제 아이 낳을 거냐고. 주변 여러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정말 대단한 일이고 그 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반대로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얼마나 많은 걸 잃고 포기해야 하는지 난 잘 알고 있죠. (아이 없는) 지금의 삶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패티슨은 무엇보다 자신이 아이를 갖지 않은 것은 삶을 다른 의미, 다른 방식으로 균형잡아 나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삶의 의미를 꼭 아이를 키우고 보람을 느끼는 데 두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 패티슨은 그렇다고 일 때문에 아이를 포기한 건 더더욱 아니라고 말한다.

"잘 알겠지만, 영어 선생이란 직업은 정말 박봉이고 전문직으로 대우 받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 일을 즐길 뿐이죠. 게다가 집을 가꾸고 요리하는 일도 엄청나게 좋아해요. 아이가 없다고 해서 이런 일이 무의미 한 것도 아니죠."

영국여성들의 흐름, ‘브리짓 존스’ 신드롬

▲ 브리짓 존스 속편이 상영중인 런던 시내 극장. 브리짓 존스 세대들에겐 별로 평가가 좋지 않다. 전편이 '딱' 좋았다는 게 중론.
ⓒ 박성진
30대를 지나 중년에 접어든, 2차 대전 후 60 후반~70년대 베이붐을 타고 태어난 패티슨과 같은 연령대는 영국 내에서 소위 ‘브리짓 존스 세대’초기의 여성들이라고 불린다.

1997년,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영국 전역 특히 도시의 젊은 여성들에게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수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곧이어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런던의 모든 성인 여성이 읽었다는 풍문이 진실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브리짓 존스 세대란?

1997년 <브리짓 존스 다이어리>가 출간되며 생긴 신조어. 영국 30대 미혼 여성들의 문화,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언론 등지에서 많이 사용한다. 90년대 후반 당시 30대 여성들이 그 원류격으로 종종 '386세대'처럼 특정 시대적 구분에 의한 기준을 두기도 한다.
‘브리짓 존스 세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이 책이 영국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 안에 바로 자신들(여성)의 모습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30대 초반의 브리짓 존스. 그럴 듯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서른을 넘겨 노처녀 반열에 들어섰다. 파티에서 무대를 장악하고 굴뚝처럼 담배를 피우고, 술고래에다 덜렁대기 일쑤에다 나이만큼이나 살집도 두둑하다. 이러다가 제대로 된 연애한 번 못해보는 거 아니냐는 걱정에 상대를 유혹할 방법도 고민해 보지만, 그렇다고 결혼 상대를 찾아 고민하는 것도 아니며 '흉측한 노처녀'라는 모욕적인 발언에도 별로 기죽지 않는다.’

이들은 2차 대전을 지나 극심한 경제적 침체기를 겪었던 이들의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여성의 사회 진출과 경제권의 성장이 이루어진 사회 속에 살고 있다.

현재 영국 내 여성 직장인의 비율은 전체의 43%. 영국 여성들은 30여 년 전만 해도 남성의 보증 없이는 주택 자금 대출도 받지 못했지만 2000년 이후 주택 자금 대출자의 1/4 가량이 미혼 여성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브리짓 존스 다이어리> 발간과 함께 ‘브리짓 존스 세대’라고 불리던 여성 중 상당수가 결혼을 한 뒤에도 ‘브리짓 존스’ 때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 가장 눈 여겨 볼만한 점은 엄마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는 것. ‘아이 없는 삶’이 트렌드화 될 정도다.

영국 국가 통계청에 따르면, 1940년 중반 영국 내에서 무자녀 여성 비율은 10% 를 넘지 않았지만 2004년 현재 영국 여성의 20%가 노후를 자녀 없이 보내게 될 것으로 예상 되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아이가 아닌 내 삶과 즐기며 산다

▲ 브리짓 존스 세대의 '차일드 프리'를 다룬 <인디펜던트>지 해당 기사면
11월 7일자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자식 없는(childless) 여성이라 부르지 말라, 아이로부터 자유로운(child-free) 여성이라고 불러 달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했다. 부모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서른 한 살의 네스타 핏제랄드. 골동품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20대 초반부터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가져봤지만, 이제는 아이가 없다고 해서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현재 미술학 석사 과정에 다니고 있고 앞으로도 일러스트레이터 등 하고 싶은 일이 많다”며 “아이를 기르게 되면 내 꿈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로 마흔이 된 여행전문가 레슬리 코스타벨. 결혼 전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던 남편이 결혼 후 마음을 바꾸자 고민 끝에 이혼을 선택했다. 남편이 “여성으로서 위대한 어머니로서 완성된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녀를 설득했지만 그녀의 입장은 완고했다. 그녀는 "그랬다면 아마 지금쯤 남편과 아이들을 원망하며 살고 있을 것"이라며 "지금 내 삶과 친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3년 전 결혼한 30십대 초반의 던컨과 린다 커플. 이들은 결혼 당시나 지금이나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아이는 이들 부부의 결혼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던 조건이다.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린다는 인터뷰에서 일터에서나 여가 시간 때나 자신의 능력을 키워가면서 여유롭게 살길 원한다며 "아이가 우리들의 삶을 장악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차일드 프리를 선언하는 여성들은 앞의 경우처럼 소위 '커리어 우먼'이 절대 다수를 이룰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신문이 인용한 영국 국가 통계청 미출간 자료에 따르면 실제 그 비율은 절반 정도다.

▲ '부모 되기 거부' 를 주장하는 차일드 프리 모임. www.childfree.com.au 첫 화면
불과 90년대 중반만 해도 전 세계 10개 미만이던 무자녀 동호회는 현재 1백 여 개를 넘어간다. 이 가운데는 국제적인 동호회를 지향하는 곳도 적지 않고 회원의 구성원은 슈퍼마켓 파트타임 직원이든 의사든 상관없이 여러 직종의 여성, 커플이 참여하고 있다.

신문은 이와 같은 현상을 소개하며 이들이 주장하는 ‘자녀 없는 삶’은 단지 ‘무자녀’ 차원이 아닌 적극적으로 출산 및 양육 거부를 표하는 ‘아이로부터 자유로움’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조명하고 있다. 아이 키우기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좋고 싫음을 분명히 말하는 자유와 삶의 균형잡기

영국내 여성지위 변화 관련 통계

* 1882년 이전 - 기혼여성의 독립사유재산 불인정.(기혼 여성 사유재산 법)
* 1928년 - 여성 투표권 허용.
* 1970년대 말까지 - 남성 보증인 없는 여성은 주택 자금 대출 불가능.
* 1998년 - 현재 직장인의 45%는 여성, 이중 34%는 파트타임 또는 임시직.
* 2003년 - 미혼 여성의 23%가 주택 자금 대출 받아 독립 주거 마련.
* 2003년 – 20세~24세 여성 중 37%만이 부모와 동거(남성 56%).
1997년 ‘브리짓 존스 일기’ 열풍을 보도한 미국 CNN 방송의 인터뷰에서 브리짓 존스 세대임을 자청하는 영국 여성 앤젤라 배렛은 "영국 역사에서 아마도 ‘싫다’ ‘좋다’를 분명히 말하는 자유를 맛본 첫 여성 세대”가 아니겠냐고 답한 바 있다.

이런 자유를 토대로 여성의 전통적인 의무로 여겨졌던 것들에서 벗어날 권리 주장을 하게 된다는 것. 당시 영국 여성지 <레드> 편집장 캐서린 브라운은 방송과 인터뷰에서 "브리짓 존스는 페미니스트라기보다는 한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고 평가한다.

▲ 런던의 한 주택가 공원, 유모차를 끌고 산책 중인 여성
ⓒ 박성진
이런 ‘브리짓 존스’ 세대들의 결혼과 자녀에 대한 변화된 가치관은 영국사회에 현실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1960년대 3명에 가깝던 여성 1인당 평균 자녀수는 현재 약 1.6명 수준으로 떨어졌고 2030년경에는 사망률이 출생률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영국 정부에서도 양육비 증가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큰 호응을 얻고 있지 않은 듯하다.

영국내 '차일드 프리'의 삶을 주장하는 여성 비율은 오히려 증가할 전망이다. 영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향후 10년 내에 현재 20% 수준의 무자녀 여성 비율이 25%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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