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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낀 공릉 숲길.
ⓒ 한성희
공릉을 다니다보면 관람객의 유형이 저절로 보인다. 가족 동반, 친구들끼리, 연인끼리, 나 홀로 주의, 문화유적 답사반으로 대충 나뉜다. 이중 가족 동반일 때, 부부와 아이가 기본이지만 의외로 부모와 부부, 손자들의 3대가 오는 경우도 많다. 부모와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나란히 능에 와서 둘러보고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보기도 좋다.

능에 다니면서 관람객과 마주칠 때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친다. 그러다가 안내문 앞에 서서 글을 읽고 있거나, 능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이면 "이곳 역사유적을 해설해 드릴까요?" 묻는다. 재미있는 것은 3대가 함께 올 때 해설을 반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시어머니와 임신해서 배가 부른 젊은 며느리와 아들, 손자들이 함께 공릉에 들렀다. 해설을 마친 후에 석물을 보겠느냐니까 올라가고 싶다며 좋아한다. 임신한 며느리의 배가 부른 것이 걱정스러워 힘들면 올라가지 말라 했더니 올라가겠다고 한다.

그리 높은 곳은 아니지만 능상에 올라가는 동안 내내 신경이 쓰여 조심하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 절을 권하며 며느리에게는 몸이 불편하면 안 해도 된다 했는데 굳이 하겠다는 것이다. 절을 할 때 대부분 관람객들이 몇 번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4배 하세요."

어떤 식으로 절을 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에게는 이마를 땅에 대고 몸을 일으키지 말고 한 뼘 가량 머리만 들고 1배, 다시 땅에 대고 머리 들고 2배, 하는 식으로 4배를 한 후 몸을 일으켜서 마치라 하지만, 굳이 본인이 절하는 방법을 말리지는 않는다. 형식보다야 정성이 중요한 거니까.

"여기 와서 절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게 할까봐 못 했어요."

시어머니는 아주 흐뭇한지 얼른 불교식 절을 하기 시작했다. 왜 절이 하고 싶었을까? 모르는 사람 무덤에도 경의를 표하는 것이 우리네 풍습이다. 죽은 사람에게 절을 하는 것은 산 자의 기본예의가 아닐까? 며느리의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마도 왕비님이 예쁜 아이를 무사히 순산하게 도와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절까지 마친 배가 불룩한 이 며느리가 능을 내려오면서 하는 말은 신세대다웠다.

▲ 경기 고양시에 있는 중종 계비 장경왕후 희릉.
ⓒ 한성희
"저 능 말이죠. 발굴 아직 안 했나요? 뭐가 나오지 않았나요?"

또 되풀이 조선왕릉은 파봐야 나올 게 별로 없다는 소리만 해줄 수밖에. 공릉에서 문화유산해설사로 있으면서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질문 내용은 약간씩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무덤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는 얘기였다. 조선왕릉에 금은보화나 명품 도자기가 들어 있지 않다는 얘기는 이미 여러 차례 했다.

문종의 부장품과 하현궁(하관)

수양대군은 문종이 일찍 죽을 거라는 가정 하에 왕위를 노렸을까? 그건 좀 의문이 생긴다. 세종의 맏아들이며 5대 임금인 문종은 28년 동안이나 제왕학을 공부하고 학습한 준비된 군주다.

문종은 8세에 왕세자로 책봉돼 36세에 왕위에 오른 제왕이다. 그리고 39세에 조선조의 많은 왕들처럼 종기를 앓다가 터져 죽었다. 조선왕조의 제왕 평균수명이 42세라는 걸 보면 그리 일찍 죽은 건 아니다.

문종은 이미 세종이 병환 중에 있을 때 대신 정사를 돌본 경험이 있다. 병환이 나도 옥체를 돌보지 않고 정사에 골몰하는 것을 걱정한 신하들은 하루 걸러 한 번씩 정사를 하기를 청했으나 "군주가 향락을 즐긴다면 천년을 살더라도 부족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1년이라도 만족할 것이다. 반드시 나라를 근심하고 정사를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이며 스스로 안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랜 동안 갈고 닦은 제왕학을 채 펼치기도 전에 문종 3년(1452) 종기가 터져 5월14일 유시(17-19시)에 죽었고 8월28일 자정에 발인하여 오시에 도착한다.

이때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남동쪽 혈에 자리잡은 산릉을 답사하고 결정한 사람은 수양대군, 황보인, 김종서, 정인지 등과 풍수학랑관이다. 9월1일 축시(01-03시)에 장례 지내고 우의정이 흙 아홉 삽을 떠서 뿌리자, 산릉도감이 작공(作工)들을 거느려 삽질을 계속해 일을 마친 뒤 지석을 묻는 것으로 끝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문종의 무덤에 넣은 명기와 복완의 부장품 기록이다.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제왕의 무덤에 넣는 부장품을 기록에 남겼다.

대충 살펴본다면, 소 8개, 와조 2개, 와잔 3개, 와병 1개, 와궤 2개, 금 1개, 우 1개, 장고 1개, 대금 1개, 현금 1개, 동궁 1개, 착(窄) 1개, 갑옷 한 벌, 투구 1 개, 세숫대야 1 개, 젓가락 1 개, 식탁 1개, 기타 등등이다.

광중에 부장품으로 넣은 복완(服玩·의류와 완구)은 증백·청의·중단·폐슬·홍말·수건·거울·토등상(대나무 그릇)·주칠간자 3개 등이었다.

제왕의 염습과정을 보면 습에 흰 비단 수의 9벌을 입히고, 소렴에 19벌, 대렴에 90벌을 입힌다. 왕세자나 세자일 경우는 조금 적지만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 대렴에 70벌을 입혔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그 많은 옷을 과연 입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것은 가능하고 정확한 기록이라 본다. 왕위에 오르는 해에 소나무 3치(9cm) 이상의 황장목으로 미리 내관을 준비해 둔다. 물론 국상이 나면 붉은 비단과 푸른 비단을 바르고 옻칠을 해서 관의 안팎을 장식한다.

예전에 '파평 윤씨 모자 미라'의 내관에서 나온 복식 류가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많은 66점에 이르렀다. 당시 최상류층이던 미라였지만 첩실의 딸이며 여인이라는 걸 감안해도 많은 의류가 나왔는데 왕과 왕비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관을 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관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형편에 따라 약간씩 달라진다.

▲ 위로부터 빙반, 잔상, 잔방.
ⓒ <고려·조선릉지>(목을수 저)
대렴 이후에 새로운 왕이 등극하고 국장을 주관하게 된다. 염습이 끝난 후 왕의 시신이 썩지 않게 하기 위한 빙반을 만든다. 잔상(대나무 평상)을 얼음을 담은 빙반 위에 올려놓고 빙반을 중심으로 사면에 얼음을 담은 잔방을 두게 된다.

이 빙반은 사면에 큰 고리쇠를 걸고 겹친 베를 고리에 꿰는데 얼음을 갈 때 들기 편하게 하려는 뜻에서 이렇게 한다. 날씨가 그리 덥지 않으면 전목반(全木槃)에 얼음을 담아서 평상 아래와 사면에 적당하게 두기도 한다.

▲ 인조와 인열왕후 합장릉인 장릉.
ⓒ 한성희

▲ 방상씨
ⓒ <고려·조선릉지>
합장릉일 때 광중 깊이는 10자, 너비는 29자(9m), 길이는 25자(7.6m)로 판다. 석곽을 쓰지 말라한 세조 이후 회곽을 쓰게 된다. 이 회곽의 재료는 석회 3/5, 황토와 세사(細沙)를 각각 1/5씩 배합해 느릅나무 삶은 물로 반죽한다. 광중은 왕과 왕비 두 개의 방으로 나뉘며 각 방이 길이 10자(3m), 너비 5자5촌(1.6m)이다.

남쪽으로 길을 임시로 내어 하관할 시각이 되면 방상씨(方相氏) 4명이 먼저 들어가 창으로 네 귀퉁이를 친다. 이 방상씨는 흉사를 막아주는 역할로 국장행렬에도 앞장서서 미친 척 하는 시늉을 하며 영구를 인도한다. 황금으로 눈을 4개 만든 가면을 쓰고 검정상의와 붉은 치마를 입고, 곰 가죽을 쓰며 창과 방패를 치켜들어 악귀가 두려워하게 한다.

광중 넓이는 겨우 관만 들어갈 정도라서 사람이 들어가서 일하기 힘들기 때문에 윤여(輪輿)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윤여는 재궁을 대여에 실을 때와 현궁(무덤)에 관을 넣을 때 사용한다. 윤전을 편리하게 하고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무를 끼운 구멍에 꿀을 탄 기름을 바른다. 대관(외관)에 재궁(관)을 넣고 윤여를 이용해 하관한다.

▲ 윤여
ⓒ <고려·조선릉지>
하관하고 난 후에 명기와 복완 등 부장품을 넣는다. 부장품 넣는 일이 끝나면 왕과 종친, 문무백관은 그곳을 떠나고, 산릉도감 제조가 관원을 거느리고 현궁을 닫는데 영의정과 사헌부 집례가 닫는 것을 함께 감독한다.

▲ 재궁(관)을 윤여위로 밀어넣는 모습.
ⓒ <고려·조선릉지>
그리고 우의정이 흙 9삽을 떠서 덮으면 본격적으로 흙을 덮기 시작해 높이 10자(3m)에서 15자(4.5m)의 능상이 완료되는 것이다.

▲ 재궁(관)을 현궁(무덤)에 넣은 뒤 윤여를 물려내는 모습
ⓒ <고려·조선릉지>
마지막으로 지석을 묻고 난 후, 관상감 관원이 토지신에게 후토제(后土祭)를 지내고 대여 등을 불사르는 것으로 기나긴 국장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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