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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알밤이 후두둑 떨어지던 지난 가을이었습니다. 아랫집 유씨 할아버지네 송아지가 집밖으로 뛰쳐나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저만치 내려다보니 다리를 저는 욕쟁이 할머니가 송아지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유씨 할아버지가 나섰을 터인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를 며칠 내내 볼 수 없었습니다. 송아지를 집 마당에 몰아주고 나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근디 할아버지는 워디 갔데유, 요 며칠 통 못 뵌 거 같은디"
"뱅원에 갔어…."

"병원엘? 언제유?"
"니미랄 메칠됐어, 어께가 돼지게 아퍼 갔는디, 지미랄 의사 놈들이 잘 안봐주네벼."

평소 욕을 반반 섞어 말하는 욕쟁이 할머니 말로는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자 치료비를 떼먹고 도망칠까봐 실실 감시만 하고 치료조차 잘 안 해 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네, 두 분 다 칠순이 넘었는데 서른이 채 안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집을 잃고 헤매는 아이를 주워와 길렀다고 합니다. 할머니 뱃속에서 나온 친아들은 아니지만 친부모, 친아들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사람 좋은 아들은 객지에서 자취방을 얻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오는 모양인데 사실 다른 집 자식들에 비하면 그래도 자주 찾아오는 편입니다. 헌데 욕쟁이 할머니가 전화조차 하기 힘든 문맹인지라 그 자식에게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모양입니다.

우리 부부는 곧바로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엄청 죄스러웠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는 밭작물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내게는 더없이 친절한 스승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농사일을 꿰차고 있는 척척 박사였습니다. 밭일을 물어보면 아주 상세하게 알려 줍니다. 내가 물어 본 것을 고마워하시며 아주 기분 좋게 알려 줍니다.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덧붙이고 주의사항까지 곁들여 주십니다.

나는 유씨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기 전에 먼저 옷부터 말끔하게 갈아입었습니다. 지난 여름, '평소 차림새'로 치과에 갔다가 홀대를 당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입성 좋게 차려입었습니다.

일전에 <오마이뉴스>에 '아빠 이제 어떻게 먹고살지'라는 제목으로 앞니 뽑은 사건을 잠깐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만난 치과의사에 대한 큰 불만을 우회적으로 썼습니다. 내친김에 이번에는 좀더 노골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속에 있는 불만을 속 시원하게 확 까발려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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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이제 어떻게 먹고 살지?"

그랬습니다. 그 날 '평소 차림새'로 치과에 갔습니다. 의사는 빠진 앞니 옆댕이 것들을 흔들어 보더니 가망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흔들리는 치아를 뽑아내고 새 이를 박아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아주 촌스럽게 물었습니다(나는 이빨 빼는 일 같은 '불안한 사태' 앞에서 엄청 촌스러워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빨이 왜 그래유? 그 옆댕이 것두 흔들리는 거 같던디…."
"조심했어야죠, 어떻게 할래요. 뽑으실래요?"
"거시기, 좋은 이빨루 박아 넣으려믄 돈이 얼마나 드나유?"

의사는 내 '평소 차림새'를 훌터 보더니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임플란트 라는 것이 있는데, 이백오십이요."

'당신 이 백 오십 짜리 3개를 박아 넣을 수 있겠어'라는 말투였는데 나는 꾹 참고 임플란트에 대해 아는 척 했습니다.

"아, 그거 새로 개발됐다는 그 이빨 말이쥬? 한 개에 이백 오십이라는 거쥬, 그거 말구 그냥 좀 싼 이빨은 없나유?"
"임플란트는 아니고, 이십 오만원 정도 하는 게 있습니다."
"아, 그래유, 그람 흔들리는 거마저 빠지고 나면 그때 가서 생각하기루 하고, 그냥 임시 치아 하구 다니믄 안돼나유?"

치과 의사는 다시 한번 내 '평소 차림새'를 내리 깔아 보며 짜증스럽게 말했습니다.

"이거 뽑아요? 말아요?"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말투였습니다. 나의 '평소 차림새'를 보면 그럴 만도 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평소 차림새'가 어떠하기에 그런 푸대접을 받았냐구요?

나는 보통 여름이면 맨발에 검정 고무신, 그것도 한 ‘구탱이’가 찢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덕지덕지 깁은 헐렁한 핫바지에 다 낡아 색까지 바랜 티셔츠 차림을 하고 다니는 편입니다. 거기에다가 덥수룩하니 얼굴을 뒤덮는 수염에 앞니까지 빠져 있으니 한마디로 형편없는 몰골이었습니다.

내 딴엔 편한 차림새라고는 하지만 고상하고 말끔한 신사 양반들이 본다면 행려병자나 거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몰골로 병원에 찾아갔던 내 잘못도 있긴 한데 아무리 그렇다고 겉모습을 보고 환자를 함부로 대하며 되겠습니까?

돈 없고 차림새가 형편없다 하여 치아가 흔들리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또 아무런 예방책도 가르쳐 주지 않고, 흔들리는 치아를 무조건 뽑아야만 되는 것처럼 진단하면 되겠습니까? 그 날 치과에서 나오는데 기분이 참 씁쓸하더군요. 고장 난 다 낡은 중고 자동차를 끌고 카센터에 갔다가 온갖 괄시 다 받고 나오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아무튼 이 사건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아내의 '간곡한 충고'에 따라 유씨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을 때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말끔하게 차려입었습니다. 아내 말대로 내 형편없는 차림새 때문에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괄시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니까요.

헌데 욕쟁이 할머니 말처럼 유씨 할아버지의 담당 의사는 그리 매정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동네 사람이 보호자로 자청하고 나섰다는 것에 약간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유씨 할아버지의 병세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담당의사 말로는 유씨 할아버지의 어깨에 어떤 세균이 침투해 물이 찼다는 것입니다. 복수를 뽑아내듯 주사기로 그걸 뽑아내고 있는데 일주일 정도 더 입원하면 퇴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깨를 너무 무리하게 써서 물이 찬 것이라며 퇴원하고도 한동안 일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는 정말로 상머슴처럼 일을 했습니다. 칠순이 넘었는데도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그야말로 소처럼 농사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니 어깨가 온전할 리 있겠습니까?

의사에게 들었던 얘기를 설명해 주고 또 퇴원할 때 다시 와서 도와주겠다고 하자 유씨 할아버지는 엄청 고마워했습니다.

"거기, 우리 밤 있잖여, 그거 주워 다 먹어."
"아이구, 아녀유, 그걸 어떻게 저희들이…."
"아녀, 어차피 짐승덜이 먹을 거니께, 시간 날 때 주어다 먹으라구."
"시간 나믄 주워다 드릴께유."
"올해는 약을 제대로 주지 않아 행편읎을겨, 팔지도 못할꺼니께 그냥 부담 갖지 말구 주어먹어."

우리 집 옆 산에는 유씨 할아버지네 밤나무 밭이 있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는 어림잡아 20여 그루쯤 되는 이 밤나무로 얼마간 수입을 올리고 있었는데 올해는 몸이 좋지 않아 농약도 제대로 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이 삼일에 한번씩 옆 산에 올라가 밤을 주웠습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주운 밤을 죄다 갔다 드렸습니다. 지난 봄부터 바지런히 밤 가지를 쳐주었던 유씨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우리가 날름 가져다 먹기에는 염치가 없었습니다.

헌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말로 요상하더군요. 처음에는 아이들 삶아 주겠다고 두어 주먹씩 얻어오다가 점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유씨 할아버지는 셈이 정확한 분입니다. 신세 지고는 못 사는 분입니다. 밤을 주워 다 준 것에 대해 언젠가는 그 신세를 갚을 것이었습니다. 차를 태워주면 태워줬다고 콩 한줌이라도 쥐어줍니다. '이러시면 다음부터 차를 태워드리지 못 한다'고 해도 한사코 그래왔던 분입니다.

생각 끝에 '일한 대가를 받아도 될 것이다. 할아버지네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라는 식의 핑계를 삼아 유씨 할아버지네와 나누기로 했습니다.

"에이 참, 그냥 다 갖다 먹어라니께, 거기는 손님덜도 많이 오구 하니께, 뒀다가 손님덜 갈 때 쥐어주기도 하구 그려."
"그람 반만 가져 갈께유."

그렇게 유씨 할아버지가 퇴원하여 어깨 붕대를 풀고 밤 밭에 나설 때까지 몇 차례에 걸쳐 나눴습니다. 그 밤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또 삶아 먹기도 했는데 대부분 밤들이 썩었거나 벌레가 먹었습니다. 10개 중에 8개가 먹을 수 없을 만치 상해 있었습니다. 본래 밤나무에 약을 치지 않아 벌레가 심하게 먹었는데 거기에다가 주워 온 밤에 약품처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지만 고소한 산밤이 그리워졌습니다. 큼직한 유씨 할아버지네 신종 밤에 눈이 멀어 그동안 찬밥 취급을 했던 산밤을 따러 뒷산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산밤은 이미 거의 다 떨어져 산짐승들이 물어간 뒤였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네 신종 밤을 줍는 동안 토종 산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큼직한 밤을 얼마든지 주워먹을 수 있는데 굳이 뱀에게 위협까지 당해가며 쥐방울만한 산밤을 힘들게 주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는 산에서 주워온 신종 밤에 비해 반 만한 크기의 작은 토종 산밤을 보면서 누군가의 눈빛을 떠올렸습니다. 거지같은 차림새에 앞니까지 빠진 내 형편없는 몰골을 훑어 보던 치과 의사의 눈빛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겉모습만 보고 나를 차별했던 치과의사와 나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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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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