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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뒷산에서 바라본 동트기 전 계룡산
ⓒ 송성영
저녁 내내 신나게 놀다 지친 아이들을 깨우기가 미안해 홀로 새벽 산행을 나섰습니다. 요즘 새벽 산행길이 참 좋습니다. 간간이 내린 서릿발에 여름내 무성했던 잡풀도 누워 있습니다. 낙엽들이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낙엽 밟는 느낌이 좋습니다.

나는 늘 그랬듯이 큰 소나무 아래 솔잎 방석으로 앉아 숨고르기를 합니다. 한참을 앉아 있으면 저만치 눈앞으로 계룡산 삼불봉 왼쪽 어깨쯤에서 아침 해가 솟아오릅니다. 아침 햇살이 시나브로 눈이 부시게 솟아오릅니다.

여태 바래지 않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의 이파리들이 아침 햇살을 만나 곱게 빛납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낙엽들은 '사그락 사그락' 아주 작은 소리를 내고 숲이 일제히 일어섭니다. 나무 둥치 사이로 숲 속이 훤히 내보입니다. 숲은 내 마음 속 깊숙이 감춰진 속내처럼 훤히 드러나 보입니다.

숲은 침묵의 언어로 다가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그 어떤 존재의 음성처럼 다가옵니다. 귀 기울이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 숲 속 깊은 곳으로 나는 잠시 사라집니다. 감은 눈 속으로 아주 잠깐 사라집니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러고 싶은데도 그러질 못합니다. 숲이 참으로 편안하다고 느끼는 순간 애석하게도, 나는 닫혀 버리고 눈을 뜹니다. 다시 눈앞에 펼쳐진 숲을 봅니다.

나는 이런저런 잡념에 휘둘리다가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보았습니다. 손가락 마디와 마디 사이에 털이 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 손가락에 털이 나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손가락에도 털이 나 있다는 사실이 신비로웠습니다. 나는 그 신비감에 젖어 귀를 만져 봅니다. 발가락도 만져 봅니다. 나는 내 몸을 샅샅이 봅니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참으로 신비합니다. 생각해 보니 내 몸이 신비하게 다가온 것은 내 몸이 본래의 나와 별개의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잠깐 집착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내 몸에 대해 신비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그 만큼 온갖 것에 집착하고 살아왔다는 반증이었습니다. 먹을 것에 대해, 입는 것에 대해, 잠자는 것에 대해 집착을 하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집착을 하게 되면 눈이 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 몸조차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진실로 내 몸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내 아내를, 내 자식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 형제 내 이웃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렇게 나는 내 몸을 보듯이 아내와 자식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참으로 신비하기만 다가왔습니다. 나와 인연을 맺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본래 나하고는 전혀 낯선, 전혀 상관없는 아내였습니다. 자식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녀석들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나와 자식들은 생김새가 닮았다고는 하지만 분명 나와는 다르게 생겼습니다. 성만 같을 뿐 이름도 다릅니다. 세상에서 아주 가까운 존재일 뿐 자식들은 내가 아닙니다. 육신도 다르고 영혼도 다릅니다. 내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고 같은 음식을 먹고, 잠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영화 필름의 앞부분을 잘라 내듯이 이전에 맺어 온 인연을 싹둑 잘라내 놓고 지금 현재만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내는 나와 한 몸이 되고 자식들은 수염 뒤덮인 내 얼굴에 얼굴을 비벼 대고 목말을 타기도 합니다. 나를 언제 봤다고 그럽니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들 같습니다. 내 형제도 이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잠시 잠깐 동안이었지만 모든 것들이 신비롭게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주변의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등 뒤로 2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어떤 녀석의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돌리는데 갑자기 인기척을 느꼈는지 후다닥 저만치로 냅다 뛰어갔습니다. 겁 많은 노루 녀석이었습니다. 나 또한 놀랐습니다.

돌아오는 산모퉁이에서 한 움큼 뽑혀 있는 노루 털을 보았습니다. 나무 둥치에 몸을 비빌 때 뽑혀 나온 것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 물끄러미 쪼그려 앉아 만지작거리다가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들도 신기해 할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노루에 얽힌 짤막한 동화 한 편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아빠 노루 만났다. 노루하구 나란히 앉어 있다가 왔다"
"에이 거짓말!"
"이것 봐라 인마, 노루 털이 그 증거여"

눈치 빠른 큰 아이 인효는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지만 작은 아이 인상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노루 털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노루 발자국은 산에 오를 때마다 늘 만났지만 노루 털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 진짜여? 이거 노루털여?"
"그려, 있다가 아침 먹고 가자, 노루가 기다리고 있으니께."
"워디서?"
"우리 자주 가는디 있지, 갈대 숲 있는디, 거기서 기다린다구 했어."
"정말? 아빠 가자, 지금 가자."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것이 '몰라'인 인상이 녀석은 당장 가자고 합니다. 먼발치에서 여러 차례 노루를 보았던 녀석이기에 이번에는 기필코 노루를 쓰다듬어 보겠다는 '굳은 결의'마저 보였습니다. 언젠가 녀석은 노루를 보고 나서 혼자말로 '노루 만져 보고 싶다' 그랬거든요.

"나는 도전 지구 탐험대 봐야 하는디…."
"노루가 임마 그거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 거 같혀?"
"에이, 좋다. 밥 먹구 얼른 갔다와서 보면 되지 뭐…."

결국 반신반의하던 인효 녀석도 '노루의 숲'으로 기분 좋게 빠져들었습니다. 녀석들은 밥을 먹으면서 노루에 대한 오만 상상을 다 했습니다. 노루를 만나는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니들 노루 만나면 뭐 할래?"
"같이 놀지"
"뭐 하구?"
"그냥 고양이하고 노는 거처럼."
"노루는 고양이 보다 크잖어"
"그럼 갑돌이(우리 집 진돗개 이름) 하고 놀 때처럼 하지."

"집으루 데려오면 안돼?"
"안 되지, 노루는 숲이 집인디."
"아참 그렇지."

아이들은 어른들의 편리대로 만든 '진실'이라는 틀에 옭아매 놓지 않는 이상 본래 모든 것에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가부좌 틀고 앉아 눈감고 있지 않아도 이미 동화 속 같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세상,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진실' 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노루의 숲'을 말입니다.

아침 밥 먹고 나서 아이들하고 노루를 만나러 갔냐고요? 그건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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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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