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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수학과 수학자들의 삶이 기계론적 합리성에만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자연현상 또는 종교와도 맞닿아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기획한 것입니다.

대학에서 수학과 공학을 가르치는 제가 예술이나 문학을 하는 지인들에게 수학이 예술과 문학과 공유할 수 있는 신비의 영역이라는 것을 설명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앞으로 <오마이뉴스>를 통해 30여 회에 걸쳐 하고픈 '숨쉬는 수학 이야기'가 수학에 등돌린 이들과 상상력의 세계를 공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필자주>


▲ 피타고라스
'숨쉬는 수학'의 첫 주인공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가 수학사에서 위대하다는 것은 수학자가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피타고라스의 중요한 업적 중 대표적인 것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란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길이의 제곱과 같다는 정리다.

이 유명한 정리의 증명법은 피타고라스 이후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여 거의 모든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이며 그 방법의 총수가 280가지 정도다. 그 중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유클리드의 증명이 가장 유명하다.

피타고라스는 수의 절대성, 완전성을 믿어 수를 종교의 경지까지 끌어 올려놓았다. 피타고라스를 중심으로 그 제자들로 구성된 피타고라스 학파는 윤리적, 종교적으로 집단화되어 하나의 교단을 이루게 되었다. 이들은 수의 완전성과 절대성을 믿었으며 숫자 사이의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우주의 본질과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수는 자연수(1,2,3,4 …)와 분수(1/2,1/3,1/4 …)로 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들에게는 자연수와 분수를 아우른 유리수(rational number)가 합리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숫자들의 전부였던 것이다.

이런 믿음을 통해 이들은 완전수(perfect number)에 깊은 관심을 두었다. 수의 완전성을 좌우하는 것은 어떤 수의 약수(원래의 수를 나누어 나머지가 없는 수)들이며, 이들 약수를 모두 더한 합이 원래의 수와 같은 경우 이를 '완전한 수'라 보았다.

그 약수의 합이 원래의 수보다 큰 경우는 '초과수'라 하고, 작은 경우는 '불완전수'라 하였다. 완전수로 나타나는 처음 두 수는 6(=1+2+3) 과 28(=1+2+4++7+14)이다. 이들 완전수는 '달의 공전 주기가 28일이며 기독교의 신이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기독교 신앙체계와도 우연하고도 신기하게 일치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완전수는 그 약수의 합이 자신의 값과 같다는 특징 이외에도 항상 연속되는 자연수의 합으로 표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6 과 28 다음 완전수가 496, 8128 인데 496은 1+2+3+4+5+...+8+9+....+30+31이고, 8128은 1+2+3+4+5+...+8+9+...+126+127 이다.

이 수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496의 마지막 연속되는 두 개의 값 30, 31 은 정확히 태양력의 큰 달과 작은 달의 값이 된다. 나아가 8128을 이루는 연속되는 값들의 최대값인 127은 현재 컴퓨터 자료 표현의 기본 단위인 1 BYTE 가 표현할 수 있는 양의 정수 최대값이 된다.

수학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신비롭게 본 이들은 그들의 가장 위대한 여러 수학 업적에도 불구하고 수학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수가 유리수(자연수와 분수)로 구성돼 이 수가 순수하고 완전하다고 믿은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유리수 이외 수를 발견한 같은 학파의 구성원을 살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정수와 정수의 비로 모든 수학 대상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히파수스라는 이 학파의 젊은 학자는 위에서 설명한 피타고라스 정리를 유리수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피타고라스정리
ⓒ 이근무
그는 한 변의 길이가 1인 직각 삼각형의 빗변의 길이를 나타낼 수 있는 분수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 경우 빗변의 길이는 무리수인 2의 제곱근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빗변의 값이 되는 유리수 값을 찾지는 못하였지만 어떤 정수의 비로서 유리수가 존재할 거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오지 않을 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피타고라스 학파는 다른 수의 존재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수학은 그들의 삶에서 이제 독단에 가득찬 종교 신념이 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부정하고 무리수의 존재를 외부에 유출시킨 죄를 물어 히파수스를 교단의 우물에 밀어 넣어 죽였다고 한다(혹자는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고도 한다).

수학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벌어진 이 사건이 오늘날 독단과 아집의 수렁에 빠져있는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데 거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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