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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 우연히 풍물을 보는 것은 황소 뒷걸음질에 뭐를 잡는 행운이다. 지난 3일 강원도 진부를 지나면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려고 읍내에서 '천원 김밥'집을 찾는데 거리 좌판 폼새가 심상치 않아 물어 보니 진부 장날이란다. 가는 날이 장날이요, 간만에 보는 시골 장날이구나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스케치도 하고 '다라이' 하나로 좌판을 연 할머니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진부장은 "고개(대관령) 서쪽"에선 큰 장에 든다고 했다. 장사가 쏠쏠해서 제천에서 영주 사과를 싣고 온 과일전이며 양양에서 "내가 직접 태양에 말린 때깔 좋고 찰진 쌀"을 가지고 대관령을 넘어온 할머니도 계셨다. "힘들게 양양에서 여기까지 오시느냐"고 여쭈니 그래도 장이 커서 차비는 빠진다고 한다.

어릴 적, 시골에 가서 본 5일장은 해 저물도록 흥정이 이어졌는데 요즘 5일장은 점심 시간만 지나면 전을 걷는다. 진부장도 오후 두시쯤 되자 이미 파장 분위기였다.

필자처럼 우연히 장을 만난 외지인들이 촌에서 띄운 진짜배기 청국장과 따끈한 촌두부, 담긴 그릇대로 식어 크기와 모양이 들쭉날쭉이지만 값은 하나로 받는 도토리 묵을 넉넉히 사가는 게 눈에 띄었다. 개중에는 아예 작정을 하고 날을 꼽았다가 오는 사람도 있는 듯했다.

고무신, 양말, 손톱깎이, 팬티 고무줄도 사고 무뎌진 톱날도 벼리고, 살 거 없거나 돈이 없으면 한나절 떠들다가도 가는 장날. 장에서 거래되는 물건은 바뀌었지만 사가는 사람, 파는 사람의 모습이 팍팍하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 곽교신
대형 마트가 도심지 사무실이라면, 시골 5일장의 모습은 아직은 명절에나 찾아가는 우리 마음의 고향 같았다.

양양에서 온 할머니는 집 앞 감나무에 매달린 채 연시가 된 감을 호박잎에 싸왔는데 인상적이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봤다. 일부는 터져서 호박잎에 벌건 감살이 묻었다.

"엄청 달어유"하시는 정감 있는 강원도 사투리와 맛을 절대 보장한다는 자신있고 야무진 표정을 곁들인 노련한 할머니의 상술에 필자는 천원에 떨이로 감을 몽땅 샀다.

ⓒ 곽교신
강원도 사투리도 충청도처럼 어미를 "유~"로 끝낸다. 하지만 충청도 사투리는 어미를 길게 끌면서 남의 말을 대신 전하듯 툭툭 내뱉는 반면 강원도 사투리는 짧으면서 들이마시는 호흡의 억양이어서 충청도보다 살에 붙는 맛이 있다.

좀 더 갖고 나오시지 그랬냐고 핀잔처럼 눈을 흘기자 콩을 까시던 할머니는 "그래두 다 팔면 사만원은 넘어유~" 하신다. 할머니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왼편에서 콩다발을 가져 오고 콩을 깐 후 깍지를 오른쪽으로 던지는 동작을 연이어 하신다. 말하기와 콩까기 이 두 동작이 전혀 차질없이 착착 진행됐다.

ⓒ 곽교신
이 콩을 파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옆의 밤 할머니가 필자에게 밤을 팔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말씀을 하신다. 그 밤을 팔아 드려야 했는데 다른 손님이 오고 또 사진을 찍다 보니 어찌어찌 그냥 오고 말았다. 밤 할머니가 "요망진 서울내기"라고 욕하지 않았을까.

"작은 솥은 밥 맛 좋다고 사가고, 큰 솥은 큰 일 치른다고 사가고, 무쇠 '후라이판'은 삼겹살 구워 먹으면 좋고, 어쩌구 저쩌구……".

ⓒ 곽교신
찾는 사람이 있어 팔리기는 하나 싶어 말을 건 주물장수 아주머니는 무뚝뚝할 줄 알았더니 말씀이 청산유수다. 옳다, 손님도 없고 심심한데 너 잘 걸렸다 한 것인지. 하지만 말씀과는 달리 손님은 없었다. 맨 오른쪽에 있어서 사진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오랫만에 손으로 돌려 바람을 보내 장작불의 화력을 높이던 무쇠 손풍구도 보았다.

진부장에서 가장 야했던 속옷 가게. 꽃무늬 붉은 팬티는 뜯으면 서울 거리 속옷 가게에 걸린 아가씨 팬티 너댓장은 나오겠다 싶게 풍신했다.

ⓒ 곽교신
왼쪽의 보라색 팬티도 역시 '줌마 사이즈'였으나 양가랭이 가장자리에 제법 '야시꼬리한' 레이스가 달리고 사이즈도 조금 작은, 적당히 야한 '뉴 패션'이었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진동해 가 보니 들기름을 발라 숯불에 일일이 한장씩 굽는, 정말 오랫만에 보는 옛날식 김이 아닌가. 들어가는 손품이며 정성으로 치면 비싸게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열장에 천원이었다.


ⓒ 곽교신
고소한 들기름 향이 솔솔 도는 게 따끈한 밥에 얹어 먹으면 다른 반찬 모조리 물리치겠다 싶었다. 사진 찍으면서도 침이 꼴깍했다.

하지만 이곳 진부장도 일부를 제외하곤 짚물은 거의 중국산이 점령했다. 빗자루 등의 생활용품은 거의 중국산이라고 보면 틀림없었다. 국산과 자세히 비교해 보면 중국산은 마무리가 거친 걸 금방 알 수 있다.

짚물은 실용물보다 장식 용도의 소형물이 전체 물건의 80%는 되어 보였다. 이제 농촌에서도 짚물을 실제로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나무의 본고장이고 부근 죽물의 집합지인 전라남도 담양까지도 중국산이 점령한 판이니 진부 5일장은 오죽하겠는가.

ⓒ 곽교신
영주에서 트럭으로 유명한 '영주사과'를 "잇빠이" 싣고 와서 진부 과일가게에 "소매로 뿌리고" 나머지는 좌판을 펴고 직접 팔고 간다는 제천 아줌마의 과일전. 과일이 실하고 서울보다는 가격이 조금 쌌다.

과일전 아주머니는 세련되게 화장을 한 '미시'였는데, 요즘 5일장의 전문 장돌뱅이는 남자고 여자고 나이가 젊은 편이다. 물건을 싣고 트럭이나 승합차 등의 차량으로 움직이는 민첩한 기동력이 5일장의 모습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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