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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불명의 옥외간판이 산만하게 들어서 있는 대전 은행동 일대
ⓒ 임성식
오는 10월 9일 훈민정음 반포 제 558돌 한글날에 즈음하여 대전시 은행동 일대 도심거리를 둘러보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국적불명의 외국어 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간판에 표기되어 있는 내용만으로는 저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짐작이 안 갈 정도로 헛갈린다.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이곳은 도시 미관은 접어두더라도 외국어와 외래어 일색으로 표기된 옥외광고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혼란스럽다.

일반적으로 광고물의 목적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고 그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하는데, 이런 간판으로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없다. 직접 상품 진열대까지 가야만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외국어 옥외광고물 공해 속에 살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일부 사람들은 이런 혼란스러운 외국어 표기 광고물에 익숙해졌는지 별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늘 보아왔기 때문에 무분별한 외국어 표기 광고물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나이가 드신 분들은 다니다 보면 간판이 영어로 쓰여져 있어 모르는 단어가 많아 불편하고, 모르니까 발걸음을 끊게 된다고 한다. 또한 알아보기 쉽게 한글로 표기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 이곳이 한국인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리 곳곳이 외국어 표기 등 일색이다.
ⓒ 임성식
도심 특성상 젊은층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정작 나이 드신 분들을 배제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배려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그냥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세대간 단절과 같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국적불명의 외국어로 표기된 간판을 보면 서양 문화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느낌이고, 요즘에는 오히려 순수 한글 간판이 어색하고 촌스럽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지자체도 외국어를 남발한다

▲ 교차로 한가운데 떡 하고 버티고 있는 선전탑 'It`s Daejeon'이 눈에 띈다.
ⓒ 임성식
거리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대전시에서 제작하여 도로 곳곳에 설치했을 듯한, 도로변 중앙에 떡하고 서 있는 선전탑이다.

▲ 주변경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국어 표기 플래카드 'Heart of Korea'가 뭘까??
ⓒ 임성식
자세히 가까이 가서보니 "It`s Daejeon"이라고 쓰여져 있다. 또 인근 충청남도 청사 벽면에 걸려있는 플래카드에는 빨강 글씨체로 "Heart of Korea"라고 쓰여져 있다.

서울시는 "Hi Seoul"과 같은 로고를 만들어 서울시 전역에, 심지어는 택시까지 써 붙여 한글관련 단체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고, 또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에서는 영어 공용화 발언 등과 같은 서울시 우리말 정책에 대하여 감사원에 시민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 '지상군페스티벌2004'와 '벤처국방마트'가 눈에 들어온다. 낯선 외래어를 사용해 무슨 내용인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 임성식
우리말 쓰기에 앞장서야할 지자체들이 이율배반적으로 외국어를 남용하고 있어 한글날의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얼마나 외국어나 외래어가 관공서 같은 우리 주변에 들어와 마치 우리 한글인 양 일상화되고 있는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외국어 간판은 나이 드신 분들이 기억 못해요"

▲ 재래시장 광고물은 난잡하지 않으면서 알아보기 쉬워서 좋다.
ⓒ 임성식
외국어 표기 일색인 도심과는 달리 재래시장은 확연히 달라 보인다. 간판 이름을 보면 단순한 지명 등을 따다가 붙인 까닭에 친근하면서 가지런히 정돈된 간판이 한눈에 들어와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도심과는 달리 많은 생각을 않고서도 저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쉽게 알 수 있어 편리하다.

▲ 조잡하게 외국어 등으로 표기된 도심 광고물보다 더 깔끔해 보이고 한눈에 들어온다.
ⓒ 임성식
이곳에는 어려운 외국어와 같은 혼란스러운 광고물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어 한 상인한테 물었다.

"재래시장은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들이 자주 오시니까 어려운 영어 같은 단어를 쓰면 손님들이 안 찾아와요. 그래서 다음이라도 또 오실 수 있도록 쉬운 한글 간판을 선호합니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할 만큼 과학적이고 뛰어난 한글을 홀대하고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이곳에서만큼은 한글 광고물이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최근 한글학회 등 우리말을 지키려는 단체에서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환원시키자고 주장하는 가운데, 작게는 우리 일상에서 한글 사용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우리말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한글의 날 행사도 일과성에 그칠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한글을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현행 옥외광고물관리법령을 대폭 손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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