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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동공항
ⓒ 김정은
어느날 아침 습관처럼 거울을 보다가 문득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무슨 일일까? 분명 거울 속 모습은 바로 그 앞에 서 있는 나인데 왜 이리 낯설고 무기력하게 보일까? 언제부터인가 삶에 친숙해진다는 건 내 삶의 그릇이 가벼워질 때까지 비우고 또 비우는 것일 거라고, 그러니 조금은 허전하더라도 열심히 비워보리라 마음 먹었다.

그런데 비우면 채울 수 있으리라던 내 삶의 허전함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고, 채워지지 않은 허전한 공간에는 무기력만 남아 가슴 속 생채기의 통증을 무디어지게 만든다. 무디어진다는 것, 아직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을 텐데 아픔만 무디어진다면 그냥 이대로 굳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통증에 무디어진 채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그대로 굳어지는 것이 무서워 떠나고 싶었다.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아직도 박차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죽음을 맞을 용기가 부족한 탓일까? 나는 아직 살아있는데, 내 뜨거운 심장은 이렇게 펄떡펄떡 뛰고 있는데….

삶의 한 과정에 친숙해져서
친밀감을 가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무기력이 우리를 위협한다
박차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굳어지는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설령 죽음의 순간을 맞는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시작은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삶의 의지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으리…….
자, 심장이여, 힘차게 이별을 고하고 새롭게 태어나라

헤르만 헤세/ <계단> 중


박차고 나올 수 없다면 잠시 잠깐 내 삶의 허전함에 자그마한 흥정을 하기로 했다. 박차고 나오는 대신 며칠간만이라도 이곳을 떠나 보자.

9월 15일 나를 태운 비행기는 중국 상하이의 푸동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 설렘과 여행 중의 수만가지 느낌과 여행 후의 노곤함 속에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의 흔적을 추억하는 것일 게다. 추억할 느낌의 흔적이 많을수록 아픔에 무뎌져 치유되지 못한 굳어진 상처는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번 나의 흥정이 성공해서 거울 속의 무기력한 내 모습이 사라지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어느새 비행기는 중국 상하이의 푸동 공항에 도착했다.

9월 상하이, 맑음, 그리고 안개

▲ 상해임시정부 청사 건물
ⓒ 김정은
우리 나라의 인천 공항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상하이 푸동공항을 떠나 푸동 지역을 벗어나는 순간 눈 앞에 세련된 기차 한 대가 왔다가 재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바로 지난 2003년 세계 최초로 상용 운행하고 있는 무인 자기부상열차였다.

상하이 도심과 공항을 연결하는 상하이 자기부상열차는 구간거리 30km, 최고 시속이 430km에 달하는 상하이의 명물이다. 부러움과 타고 싶은 호기심에 기차가 지나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독일에서 들여온 이 자기부상열차는 상하이 도심에서 푸동공항까지 사고 없이 무사히 달리면 7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가끔 원인 불명으로 서 있는 경우가 있답니다. 살인적인 상하이의 교통 정체를 피하고 제시간에 맞춰 빠르게 공항에 가려고 자기부상열차를 탔다가 재수 없게 멈춰서는 바람에 비행기 시간에 맞추지 못한 낭패를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좀 불안하긴 하죠."

무슨 소리지? 상하이 자기부상열차가 지난 7월 3일 별 사고 없이 100만명 승객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네들의 선전과는 달리 아직까지 운행 시스템이 불안하다는 이야기인가?

세계 최초의 자기부상열차, 88층짜리 빌딩…. 상하이는 지금 한창 개발 중이다. 어디를 둘러 보나 넓게 뻗은 도로와 하루가 다르게 세워지는 이름 모를 초고층 건축물들이 낯선 외국인들에게 생동감 넘치는 도시 상하이를 잘 보여 준다. 분명 상하이는 변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변화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정신 없으며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 부족함이란 마치 잘 나가다가 가끔 아무 곳에서나 멈춰 버리는 불안정한 시스템의 자기부상열차와 같은 것이 아닐까.

어느새 버스는 푸동 지역을 빠져나가 첫 도착지인 상해임시정부 건물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 태극기

▲ 상해임시정부 현판
ⓒ 김정은
시내 중심가인 루완구 마당로 푸칭리 306롱 4호에 자리잡고 있는 상해임시정부 청사.

▲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태극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문서를 장식하는 문장으로도 사용됐다.
ⓒ 김정은
청사 정면 벽에 매우 오래된 태극기 한쌍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떨린다. 이 태극기야말로 상해임시정부의 명멸을 함께 한 바로 그 태극기가 아닌가? 임시정부의 각종 문서에도 등장하는 태극기 문장의 모델이기도 한 태극기. 세월은 흘러 하얀 색깔이 어느덧 누렇게 변했지만 그 뜻만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이 상해임시정부를 지키는 증인이 되었다.

▲ 김구 선생의 집무실
ⓒ 김정은
행여 유적이 상할까봐 비닐로 만든 덧신을 신고 청사 안을 둘러보았다. 김구 선생의 집무실을 보다 보니 문득 선생께서 쓴 <나의 소원>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칠십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 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일찍이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던 백범 섬생. 선생이 그렇게 바라던 대한민국의 완전한 독립은 아직까지도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기에 선생의 빈 자리가 더 커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저런 아쉬움을 묻은 채 버스는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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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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