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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씨가 94년 12월 펴낸 <하품의 일본인>의 서문.
ⓒ 구영식

전여옥 대변인(한나라당)의 베스트셀러인 <일본은 없다>가 출간된 지 1년 후인 94년 12월 한국과 일본에서는 '체험적 일본비평서' 한권이 동시에 대중들에게 선을 보였다. 전 대변인의 KBS 동경특파원 시절 절친한 친구사이였던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씨의 <하품(下品)의 일본인>이 그것.

특히 유씨가 <하품의 일본인> 서문('아직도 한국인은 일본인을 모른다')에서 전 대변인의 도용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해 더욱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또한 그는 "분노와 억울함과 배신감"으로 가득찬 자신의 심정을 가감없이 쏟아냈다.

유씨는 서문에서 "목이 마비되어 3개월간 원고지 한 장 쓰지 못했다"거나 "그녀에게 도용당한 내 오리지널 원고에 대한 애착과 미련 때문에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밤이 수없이 많았다"고 표현해 당시 전 대변인의 도용의혹에 따른 충격이 매우 컸음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유씨는 서문에서 전 대변인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친구'(혹은 '저자')라고만 표현돼 있긴 하지만 그 '친구'가 바로 전 대변인임은 분명하다.

"도용에 대한 충격으로 목이 마비돼 3개월간 글을 못써"

유씨는 먼저 "이 책이 나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통이 있었다"며 "작년 연말 한국에서 출판된 한권의 책 때문에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최대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고 운을 뗐다. "작년 연말 한국에서 출판된 한 권의 책"이란 다름아닌 전 대변인의 <일본은 없다>.

"내가 그동안 발로 뛰며 취재했던 내용과 자료들이 그 책에 반 이상이 그대로 복사판처럼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저자가 취재하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 그 책에 나오는 그 현장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취재를 한 사람은 바로 나였으니까."

유씨는 전 대변인이 동경특파원으로 발령된 직후 한 중앙일간지의 문화부 기자인 자신의 친구로부터 그를 소개받아 이후 '막역지우(莫逆之友)'로 지냈다. 유씨는 "친구사이"였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없이 그에게 자신의 자료와 원고·취재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들려주었다고 밝혔다.

"그 저자는 현장보다는 사무실에서 텔레비전을 모니터하는 시간이 많은 방송국 기자였고 나는 현장을 뛰어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르포라이터였기 때문에 나는 이를 믿고 나의 자료와 원고·취재기를 들려 주었다. 또한 우리집도 그녀에게는 언제든지 열려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내가 어떤 테마, 어떤 내용, 어떤 취재를 했는지를 누구보다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유씨의 주장에 따르면 전 대변인은 그의 믿음을 저버렸다. 그가 믿고 보여주었거나 들려주었던 내용을 <일본은 없다>에 그대로 도용했다는 것으로 이는 그가 직접 표현한 대로 "친구에게 도둑을 맞"은 셈이다.

"그 내용들이 한 치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1백 퍼센트 인용되었는가 하면, 어떤 내용은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취재한 이야기(특히 역사문제에 대하여)를 그녀에게 들려준 것이 역으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취재한 것처럼 그 책에 둔갑되어 있었다. 취재현장에는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던 그였다. 대개 이런 식으로 나의 취재내용이 그에 의해 도용되었다. 덕분에 나는 그 충격으로 목이 마비되어 3개월간 원고지 한 장 쓰지 못하는 고생을 했다."

"친구 사이에 그같은 배신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

▲ 유재순씨의 <하품의 일본인> 표지.
ⓒ 구영식
유씨는 "왜 당신이 쓰고 있는 책의 내용과 원고·자료들을 보여주었냐. 당신에게도 50%의 책임이 있다"는 한 일본인의 지적에 대해선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한국인의 정서를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한국인은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 나 자신도 이같은 이유에서 나의 모든 것을 오픈했었다(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온 기자 친구들에게도 그러했으나 그녀처럼 내 허락없이 비밀리에 도용한 적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믿었던 것이다). 설마 친구 사이에 그같은 배신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유씨는 이어 "한국에서는 아직 일본처럼 저작권법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아마도 그녀는 이같은 한국의 저작권법을 이용한 것이겠지만 덕분에 나는 올 한 해는 정말 도(道)를 닦는 마음으로 참고 참으며 살았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자신의 심정을 "분노와 억울함과 배반감"이라고 간추렸다.

그런데 전 대변인의 도용의혹을 제기한 유씨의 <하품의 일본인>은 초판이 매진된 이후 서점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와 관련 유씨는 지난 6월 <오마이뉴스>와의 일본 현지 인터뷰에서 "내가 출판사에 판매중지를 요구했기 때문"이라며 "글쟁이로서 자존심 때문이지 그녀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해명했다.

"초판이 다 나가고 재판을 찍을 무렵 서문에 나온 표절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프레스센터에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전날밤 출판사 여사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내가 수용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준비'를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기자들에게 촌지를 줘가며 책을 팔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은 유재순씨가 <하품의 일본인> 서문에서 전여옥 대변인의 도용의혹을 제기한 부분을 간추린 것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통이 있었다. 원래는 이 책이 아닌 르포집을 출판할 예정으로 이미 완성된 원고를 가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순전히 나의 개인의사에 의해 전격적으로 책의 출판순서가 바뀌었다.

그 사이 나는 8년 동안의 일본생활을 묶어 '일본인, 당신은 누구인가'란 제목으로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신문이나 잡지의 인터뷰에서 이 책을 준비하고 있음을 늘 밝혀 왔기 때문에 나를 기억하고 있는 일본 독자들은 이미 책 제목을 다 알고 있어 개인적으로 만나면 언제 책이 나오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던 것이 작년 연말 한국에서 출판된 한권의 책 때문에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최대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내가 그동안 발로 뛰며 취재했던 내용과 자료들이 그 책에 반 이상이 그대로 복사판처럼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저자가 취재하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 그 책에 나오는 그 현장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취재를 한 사람은 바로 나였으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그 저자와 나는 친구 사이였다. 그 저자는 현장보다는 사무실에서 텔레비전을 모니터하는 시간이 많은 방송국 기자였고 나는 현장을 뛰어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르포라이터였기 때문에 나는 이를 믿고 나의 자료와 원고·취재기를 들려 주었다.

또한 우리집도 그녀에게는 언제든지 열려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내가 어떤 테마, 어떤 내용, 어떤 취재를 했는지를 누구보다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끔은 내게 책의 진행이 잘 되어 가느냐고 물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독특한 취재와 내용의 원고를 읽어보고는 "역시 유재순답다"고 칭찬을 곁들인 격려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한치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1백 퍼센트 인용되었는가 하면, 어떤 내용은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취재한 이야기(특히 역사문제에 대하여)를 그녀에게 들려준 것이 역으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취재한 것처럼 그 책에 둔갑되어 있었다. 취재현장에는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던 그 저자가. 대개 이런 식으로 나의 취재내용이 그에 의해 도용되었다. 덕분에 나는 그 충격으로 목이 마비되어 3개월간 원고지 한 장 쓰지 못하는 고생을 했다. …

▲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씨와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
ⓒ 오마이뉴스

겁모르고 마구 써대던 초기와는 달리 나는 일본에 대해 '나무'보다는 내면적 세계인 일본이라는 '숲'을 더 정확히 캐고 싶었다. 따라서 취재도 전과 달리 몇차례에 끝나던 것이 수십 번 현장을 다시 찾아갈 때도 있었다. 섣불리 겉모습만을 보고 쓰고 싶지 않은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결국은 이런 나의 신중함과 욕심 때문에 출판이 늦어져 고스란히 친구에게 도둑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

어떤 일본인은 나에게도 50%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쓰고 있는 책의 내용과 원고·자료들을 왜 보여주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인의 정서를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한국인은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

나 자신도 이같은 이유에서 나의 모든 것을 오픈했었다(비난 그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온 기자 친구들에게도 그러했으나 그녀처럼 내 허락없이 비밀리에 도용한 적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믿었던 것이다). 설마 친구 사이에 그같은 배신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한국에서는 아직 일본처럼 저작권법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이같은 한국의 저작권법을 이용한 것이겠지만, 덕분에 나는 올 한해는 정말 도(道)를 닦는 마음으로 참고 참으며 살았다. 분노와 억울함과 배반감으로. …

그녀의 도용문제가 언론계의 가십거리로 오르게 되면서 그녀와 그 책을 낸 출판사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와 출판사가, 진위를 묻는 신문사 기자들을 향해 내놓은 대안이란 것이 내가 '정신이 이상한 여자'라는 것이었다. 즉 정신이상자라는 것이다. …

그러면서도 나도 인간인지라, 그녀에게 도용당한 내 오리지널 원고에 대한 애착과 미련 때문에 단 한줄도 쓰지 못한 밤도 수없이 많았다. … 책의 표절문제로 한국이 신문사에서 국제전화가 계속 걸려 와, 마음이 안정될 만하면 또다시 분노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하루를 넘기고, 게다가 나의 몸은 비정상의 극치를 달리고 있어서 불안감은 더욱 심했다. …

바로 이때 한약까지 보내주며 정신적으로 많은 위로를 해준 이가 바로 이 책의 일본판 번역자인 가미야씨였다. 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 호소할 때마다 그녀는 "당신은 당신만의 특성이 있다. 오리지널 원고는 생각하지 마라. 책 도용문제에 대해서도 되도록 잊어라. … 지금의 내용으로도 도용당한 부분을 전부 빼더라도 좋은 책이 될 수 있다. …"고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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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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