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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없다> 출간 직후 벌어진 표절시비의 진상을 추적한 94년 9월 23일자 <여성신문> 기사.
ⓒ 구영식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의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가 출판된 지 약 10년 만에 다시 표절 혹은 도용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4년 '표절시비'의 진상을 추적한 <여성신문> 기사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은 없다>는 지난 93년 11월 출간된 직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현재까지 팔린 부수만 해도 100만부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본은 없다>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직후부터 '표절시비'에 휘말렸지만 당시 언론매체들은 이를 '가십성기사' 정도로만 생각해 상세하게 보도하지는 않았다.

출판사간부-유씨 대화 녹음테이프 "71꼭지 중 29꼭지 도용당했다"

<여성신문>은 94년 9월 23일자 '35만부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 표절 시비 진상은 이렇다'는 기사에서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씨와 책을 출판한 지식공작소의 주장을 나란히 실었다. 특히 <일본은 없다> 표절시비 와중에 출판사 고위간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유씨와 나눈 대화를 녹음한 내용을 공개해 흥미를 끌고 있다.

유씨는 당시 일본의 도쿄 시부야에서 출판사 간부를 만나 자신이 도용당한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유씨는 지난 6월 <오마이뉴스>와의 일본 현지 인터뷰에서 "나는 그에게 그 책의 어떤 부분이 내가 쓴 것인지를 하나하나 목차를 불러줘 가며 짚어줬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유씨가 당시 출판사 간부에게 밝힌 '도용꼭지' 목록이다.

몰개성 패션주의/식어버린 도시락/그녀들이 흑인병사를 좋아한 이유/여자의 복수가 시작됐다/결혼 삼십년의 청구서/졸부에게 과거는 없다/내가 울던 날/2천통의 편지/그녀들은 즐거워 하며 군인손님을 맞이했답니다/그토록 대단한 돈/제노사이드/일본식 사과법/과거를 묻지 마세요/김영삼 대통령은 옳았나/오선화라는 한국여자/객관적인, 너무나 객관적인/또하나의 종군위안부/가이코쿠징과 가이코쿠징/애야, 흑인으로 해라/일과 술 그리고 가라오케/이지메라는 일본 오락/부도도 따로 자나?/오이시이 스트레스/일탈자/미조라 히바리와 패티김/45초마다 공급되는 살인/만져보아도 좋아요/마음없는 서비스/여자이지 않습니까?

이는 <일본은 없다> 71꼭지 중 29꼭지에 해당한다. <일본은 없다> 전체 내용 중 약 40.1% 정도를 도용했다는 얘기다.

유씨는 당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런 것들을 취재해 책으로 엮으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전씨는 잘 알고 있었고 내 글을 읽어보고 칭찬과 소감을 말했을 만큼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며 "내가 취재기를 전씨에게 모두 들려주었던 것은 방송기자가 무슨 글을 쓰겠느냐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씨가 이런 부분에 대해 전혀 취재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증인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93년 11월 출간된 전여옥 대변인의 <일본은 없다>.
ⓒ 구영식
또 유씨는 전 대변인의 동경특파원 시절 "내가 이러이러한 책을 내려고 준비중인데 오늘은 이러이러한 곳에 가서 이러이러한 사람들을 취재했고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나눴으며 취재과정에서 이러이러한 느낌을 받았다"는 식으로 그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하지만 유씨의 '도용' 주장에 대해 출판사 쪽은 "그런 대화 부분까지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전씨가 유씨의 글을 표절했다는 객관적인 증거(2인 이상이 볼 수 있는 인쇄물)만 제시한다면 마땅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유씨에게 증거제시를 요구했다. 당시 출판사 쪽은 "유씨가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전 대변인은 당시 표절 시비에 대해 "그런 소문을 듣고 유씨와 통화를 했다"며 "유씨가 자신이 퍼뜨린 소문이 아니라며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고 일이 이렇게 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써 일단락된 일"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기사를 작성한 김명순 전 <여성신문> 기자는 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언론들은 가십거리라고 생각해 제대로 표절시비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다"며 "기사가 나간 뒤 전씨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욕설이 섞인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94년 9월 23일자 <여성신문> 기사 전문이다.

지난해 11월 출판된 이후 9월 현재까지 총 35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에 대한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없다>는 전씨가 91년 1월부터 93년 8월까지 한국방송공사 동경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경함한 것을 토대로 한 '일본 체험기'. 그러나 소문은 "전씨가 일본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일동포의 글을 그대로 베껴 마치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썼다"는 것을 골자로 여의도 일대를 중심으로 해 퍼져 나갔다.

이 소문은 전씨의 책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진입한 올 1월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해 9월 현재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35만명 이상의 독자가 전씨에게 우롱당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취재에 나선 것은 8월말이었다. 취재결과 소문 속의 재일동포는 81년 <신동아>의 논픽션 공모에 당선한 후 르포라이터로 이름이 알려진 유재순(35)씨로 밝혀졌다.

현재 동경에 살고 있는 유재순씨에게 국제전화로 진위를 묻자 "소문대로"라고 간단히 답했다. 유씨는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표절이라고 볼 수 없는 미묘함이 있어 현재 집필하고 있는 책을 완성하는 대로 내 억울한 사정을 밝힐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이 말과 함께 출판사측과 자신이 대화한 2시간 30분 분량의 녹음테이프를 들어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표절시비를 접한 출판사가 동경으로 관계자를 보내 유씨와 만났고 그 대화내용이 모두 녹음된 테이프가 있다는 것이었다.

출판사도 이 테이프를 듣고 나면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이 녹음 내용에 따르면 유씨는 2, 3년 전부터 <일본인,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할 예정으로 취재와 자료수집을 해왔다.

한창 작업을 해나가던 91년 1월 10년지기인 친구로부터 전씨가 동경특파원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과 함께 "같은 한국사람들이니까 여옥씨를 도와주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계기로 인해 유씨와 전씨는 막역한 사이가 됐다.

유씨는 당시 전씨에게 "내가 이러이러한 책을 내려고 준비중인데 오늘은 이러이러한 곳에 가서 이러이러한 사람들을 취재를 했고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나눴다. 취재과정에 이러이러한 느낌을 받았다"는 식으로 대부분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대화의 자리에는 NHK 국제국 직원들이 동석했기 때문에 전씨가 취재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충분히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이렇게 나누었던 얘기(자신의 취재내용)들이 거의 모두 전씨의 <일본은 없다>의 소재가 됐고 이로 인해 자신이 쓰고자 했던 책 내용 중 상당부분을 '도난'당했다고 주장했다.

유씨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글 소재는 <일본은 없다> 중 '몰개성 패션주의' '식어버린 도시락' '그녀들이 흑인병사를 좋아한 이유' '여자의 복수가 시작됐다' '결혼 삼십년의 청구서' '졸부에게 과거는 없다' '내가 울던 날' '2천통의 편지' '그녀들은 즐거워 하며 군인손님을 맞이했답니다' '그토록 대단한 돈' '제노사이드' '일본식 사과법' '과거를 묻지 마세요' '김영삼 대통령은 옳았나' '오선화라는 한국여자' '객관적인, 너무나 객관적인' '또하나의 종군위안부' '가이코쿠징과 가이코쿠징' '애야, 흑인으로 해라' '일과 술 그리고 가라오케' '이지메라는 일본 오락' '부도도 따로 자나?' '오이시이 스트레스' '일탈자' '미조라 히바리와 패티김' '45초마다 공급되는 살인' '만져보아도 좋아요' '마음없는 서비스' '여자이지 않습니까?' 등이다.

유씨는 "내가 이런 것들을 취재해 책으로 엮으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전씨는 잘 알고 있었고 내 글을 읽어보고 칭찬과 소감을 말했을 만큼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며 "내가 취재기를 전씨에게 모두 들려주었던 것은 방송기자가 무슨 글을 쓰겠느냐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또 "전씨가 이런 부분에 대해 전혀 취재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증인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유씨 주장에 대해 출판사측은 "그런 대화 부분까지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전씨가 유씨의 글을 표절했다는 객관적인 증거(2인 이상이 볼 수 있는 인쇄물)만 제시한다면 마땅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유씨에게 증거제시를 요구했지만 유씨가 이를 입증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유씨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유씨의 주장이 설령 사실이라면 그것은 친구 사이에 풀어야 할 문제이지 출판사 차원에서 공론화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며 "잘 나가는 여자를 아니꼽게 본 옹졸한 남자들 때문에 일이 생각 이상으로 과장돼 알려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의아심을 표하기도 했다.

전씨는 유씨의 주장에 대해 "그런 소문을 듣고 유씨와 통화를 했다"며 "유씨가 자신이 퍼뜨린 소문이 아니라며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고 일이 이렇게 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써 일단락된 일"이라고 전했다.

이로써 후반기 베스트셀러 1위로 기록되고 있는 <일본은 없다>와 관련된 '표절 소문'의 진상은 대략 밝혀진 셈이다. 그러나 유재순씨가 자신의 책이 출판되는 것과 때를 같이 해 '모종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표절시비의 여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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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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