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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법원 앞에는 '부정한 판사 000는 물러나라'라는 피켓을 들고 뙤약볕에 굵은 땀을 흘리면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재판을 위해 법원을 오르내리면서 항상 접하는 모습이지만 볼 때마다 내 일인냥 답답하다.

사람들은 서로 악을 쓰며 싸우다가 갈 데까지 다 간 상황이 되면 '그럼 법대로 해보자'라고 내뱉는다. 누가 정당한지를 법해석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해명하자는 뜻도 있지만 실제로는 법정에 가서 욕이나 보란 뜻이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욕 중에서도 상욕에 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법정에 가봤더니 정작 상식과는 거리가 멀고, 전혀 터무니없는 판결이 나왔다면 당사자들은 상대방보다 오히려 법원을 더욱 불신하게 되고, 혐오하다 못해 증오하게 된다. 법원의 판단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합리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판결을 보면서 나도 법원 앞에 피켓을 걸고 항의를 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두 기관은 며칠 사이 간격을 두고 마치 기획이라도 한 것처럼 국가보안법에 대해 극히 이례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의 안보위협은 여전하고, 상황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며 국가보안법 제7조 합법 결정을 하였고, 이를 보도하면서 일개 재판연구관까지 나서서 ‘국보법은 합법이니까 국회는 입법에 참고하라’고 했다.

대법원 역시 북한의 남침위험을 강조하면서 나아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인데 이를 부추기는 북한 동조세력이 늘어가고 있다’며 은근히 케케묵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자극하기까지 하고 있다.

법원은 누구를 두고 북한 동조세력이라고 한 걸까? 북과의 화해를 주장하면 동조세력인가? 법원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일련의 판결과 이런 판결을 과대홍보하는 일부 언론의 의도는 분명하다. 최근 과거사 청산의 대표적 상징으로 벼랑끝에 내 몰린 국가보안법의 폐지논의에 찬물을 끼얹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런 판결과 발버둥은 사법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고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자살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사법부는 이번 판결에 있어서도 과거 3,40년 전의 판결문을 글자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인용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남북상황에 변화는 없다며 앵무새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세상이 다 바뀐 현재를 아직도 구시대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법부의 판단은 역설적이게도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자의적인 법적용의 대명사가 된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이제 더 이상 사법부에 의해 제한되고 남용이 없어지기를 기대할 수가 없어진 것이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으로 법의 남용을 막을 수 없으므로 국가보안법 자체가 없어지는 것 이외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

사법부의 퇴행적이고, 구시대적인 판결을 접하면서 이제 국회는 현실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사법부나 일부 언론의 발언이 국민의 뜻은 아니다. 국민의 뜻은 부끄러운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고, 이를 가로막는 세력은 그 과거사로부터 온갖 해택을 누린 세력이다. 최근의 판결들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할 실질적인 이유를 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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